대리점 뒤에 숨은 CJ대한통운... '택배 갈등' 악순환 [시경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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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 뒤에 숨은 CJ대한통운... '택배 갈등' 악순환 [시경pick]
  • 김호정 기자
  • 승인 2023.12.1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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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대리점 "대한통운, 일방적 갑질에 폐업"
"택배노조 소속 기사와 갈등... 회사, 재계약 거부"
회사 "파업하는 노조 편들었다? 비상식적 주장"
파업으로 인한 배송지연... 책임은 대리점 몫
대리점 부담 과도... 본사 '책임 분담' 고려돼야
CJ대한통운 택배 차량 사진=연합뉴스
CJ대한통운 택배 차량. 사진=연합뉴스.

CJ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소속 배달 기사와 자주 갈등을 빚은 대리점을 대상으로, 일방적인 계약 해지 등 부당한 갑질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CJ대한통운과 계약을 맺고 전북 전주시에서 택배대리점을 운영한 A는 최근 관련 내용을 제보하면서 회사 측의 책임 떠넘기기 행태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제보에 따르면 그는 2018년부터 택배노조 소속 기사들의 파업과 태업에 시달렸다. 택배노조 소속 기사들은 분류작업 도중 '고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송 물품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일삼았다. 이들 기사들은 기준보다 크기가 크거나 무거운 '이형 상품' 배송을 거부하기도 했다. 파업으로 배송 날짜를 맞추지 못하는 일도 잇따랐다고 한다. 택배노조 소속 기사들의 파업 혹은 태업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이후 발생했다.

A는 문제를 일으킨 배송기사와 계약을 해지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본사 직원이 내려와 합의를 종용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A는 올해 7월, CJ대한통운 측으로부터 기간 만료를 이유로 대리점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공문을 받았다. 결국 그는 올해 9월 대리점을 폐업했다.

A는 "(본사와) 계약을 맺으면 거의 무기 계약처럼 자동 연장되는 방식이었는데, 노조와 갈등이 있는 지점(대리점)들에 대해 (본사가) 언젠가부터 계약기간을 따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신과 비슷한 (일을 당한) 대리점이 몇 군데 (더) 있다"며 "계약 해지를 당한 대리점들은 노조원과 소송 관계에 있는 곳이 많다"고 귀띔했다.
 

CJ대한통운 "회사가 택배 노조편? 말이 안 되는 얘기"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정상적인 택배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건 오히려 회사"라며, "회사가 택배노조와 같은 편이라는 얘기인데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회사 관계자는 “A가 대표로 있던 대리점은 택배기사 해고 과정에서 정해진 계약 해지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고, 기사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는 "대리점주와 택배기사 간 분쟁이 발생해도, 표준계약서 위반 행위가 있어야 조정이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주목할 대목은 대리점주와 택배기사 간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본사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표준계약서에 반하는 행위’가 벌어질 때 ‘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부분이다.

이는 분쟁 상황에서 회사가 개입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생각보다 좁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빈번하게 초래되는 대리점주-택배 기사 간 갈등의 실효적 해결을 위해서는 표준계약서 개정 등 해당 법제의 손질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A 사례에 대한 진위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대한통운이 대리점에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는 목소리는 택배 업계 내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파업에 따른 배송 지연, 책임은 대리점"... 부담 지나쳐  

업계 관계자에 대한 취재를 종합하면, 회사는 대리점의 매출과 서비스 지표 등을 토대로 전국 대리점을 S, A, B, C, D의 5단계 척도로 평가한다. S, A, B 등급 대리점에 대해서는 2년, C등급에 대해서는 1년의 계약기간을 적용한다. D등급을 받은 대리점은 지역 지사장이 계약 기간을 정한다. 기간은 3개월, 6개월, 1년 등 대리점별로 다르다.

서비스 지표는 물품 당일 배송률과 당일 회수율로 측정된다. 파업으로 배송 차질이 발생하면 서비스 지표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대리점주는 추가 비용을 들여 임시 기사를 채용하거나 가족 등을 동원해 공백을 메운다.

업계 관계자는 "택배사들은 직접 고용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대리점과 택배기사 간 갈등에 관여할 수 없다고 변명하면서, 택배기사 관리 책임은 대리점에 떠넘기는 경향이 있다" 지적했다.

대한통운이 서비스 지표 하락을 이유로 대리점 계약을 임의 해지했다거나, 수수료 지급을 지연하는 방식으로 대리점 폐업이나 계약 해지를 유인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분쟁 발생 시 택배사 역할 법제화 필요"  

포항에서 CJ대한통운과 계약을 맺고 대리점을 운영했다는 B는 업계 경력만 20년이 넘으며 이 가운데 13년을 대한통운과 일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일부 노조원이 불법 파업을 벌이면서 사흘간 배송을 거부한 적이 있는데, 대한통운은 서비스 지표가 10% 하락했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 달 평균 서비스 지표는 B등급이었으며 당월 전체 평균은 포항의 다른 대리점보다 높았는데도 단 3일 지표가 하락한 걸 꼬투리 잡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B는 대한통운을 상대로 계약 해지 무효 소송을 진행 중이다

택배기사 과로사 사건을 계기로 급조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 발전법'이 되레 업계 현실을 왜곡, 대리점주와 택배기사, 대리점주와 본사, 택배기사와 본사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역기능이 불거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택배노조 측이 대리점을 배제하고 직접 본사를 찾아가 위력을 행사하는 상황은 익숙한 풍경 중 하나가 됐다.

2021년 제정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 발전법'은 택배기사 건강권 보호에 초점을 맞춘 특별법이다. 이 법은 대리점이 택배기사에게 최소 6년의 계약기간을 보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원청이라 할 수 있는 택배사 본사와 대리점 사이 권리의무, 분쟁 발생 시 조정권한과 절차 등에 대해서는 보완할 부분이 많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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