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봉화에 뜬 K-제련... 석포제련소, 친환경 꿈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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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봉화에 뜬 K-제련... 석포제련소, 친환경 꿈은 시작됐다
  • 정규호 기자
  • 승인 2022.10.0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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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까지 환경 오염 방지에 7천억 투자
고난이도 'TSL' 기술 적용... 아연정광 100% 활용
'ZLD' 통해 폐수 무한 재사용... 외부 유출 원천 차단
ESG '열등생→우등생'으로... 환경과 개발 공존 추진
지난해 '조업정지 10일' 아직도 영향, 수율 정상화 안돼
조업정지 처분 앞서, '실체적 정당성' 여부 따져야
ZLD(Zero Liquid Discharge, 무방류 시스템)의 핵심 기술인 (왼쪽)'증발농축기'(Evaporator)의 모습. 상층부에 장착된 창문으로 끓이고, 졸이면서 발생한 수증기가 비처럼 내리고 있다. 석포제련소는 이 빗물을 모아 식혀 제련소에 재사용 중이다. 사진=시장경제DB
ZLD(Zero Liquid Discharge, 무방류 시스템) 핵심 장비 (왼쪽)'증발농축기'(Evaporator). 상층부 창을 통해 오폐수 정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석포제련소는 제련과정에 사용된 용수를 한곳으로 모아 고온으로 증발시킨 뒤 고형물인 슬러지와 수증기를 분리, 수증기만 따로 포집·정화해 재사용하는 ZLD 시스템을 국내 제조기업 최초로 도입했다. 2021년 12월 동 시스템 가동 후 제련소 측은 오폐수 외부 유출을 원천 차단할 수 있게 됐다. 사진=시장경제DB

경북 내륙 최북단, 태백산 줄기 아래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 지난달 29일 찾은 이곳은 55만3683만㎡(16만7489평)에 달하는 부지 곳곳에서 아연 제련이 한창이었다. 가장 눈길을 끈 시설물은 30~40m 높이의 증발농축기(Evaporator)였다. 이 장치는 석포제련소가 지난해 도입 한 ZLD(Zero Liquid Discharge, 무방류 시스템) 핵심 설비 중 하나다. 증발농축기는 제련소에서 사용한 폐수를 정화, 재사용 가능한 '공업용수'를 생산하는 장치이다.

오폐수를 고온에서 끓이는 과정을 반복하면 수분은 증기로 바뀌어 위로 올라가고 고형 슬러지만 남는다. 분리된 슬러지는 수거해 폐기하고, 포집된 수증기는 정화과정을 거쳐 다시 공업용수로 사용한다. 

생산과정에서 사용된 오폐수를 100% 재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 유출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첨단 장비이나 국내에선 사용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설비와 유지보수에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영풍은 ZLD 시스템 도입에 350억원이 넘는 투자비용을 집행했다. 장비 증설분까지 합치면 설치에만 약 500억원 가량의 비용이 쓰였다. 연간 유지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고온 증류 방식으로 폐수를 정화하기 때문에 운영비용으로만 연간 100억원 정도의 지출이 발생한다.  

영풍은 “하루에 1만톤이 넘는 물을 사용하는데, 이 물을 ZLD를 통해 전량 재사용한다. (오폐수가)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해 준다”며 “현재 3대의 증발농축기와 1대의 결정화기를 가동 중인데, 운용 안정성을 위해 현재 1대씩 추가 설치 중”이라고 말했다.

영풍그룹 석포제련소는 종합비철금속 기업으로, 아연을 생산하는 단일 사업장 중에선 세계 4위의 생산력을 갖추고 있다. 관계사인 고려아연과 합치면 생산량은 세계 1위이다. 아연의 질을 구분하는 순도는 99.995%로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자랑한다.

석포제련소의 또 다른 강점은 TSL(Top Submerged Lance, 상부 침전식 랜스)로 명명된 고난이도 장비를 운용, 제련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상용 제품으로 판매한다는 것이다. TSL을 이용해 부산물까지 상품화한 기업은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특히 이 방식을 적용하면 화학 폐기물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기후변화에 대비한 탄소저감기술로도 주목받고 있다.

통상적으로 아연 정광(광석을 정제해 만든 제련 원료)에서 아연을 뽑아내면 40~50% 가량의 기타 물질이 남는다. 황산, 금, 은, 동 등이 대표적이다. 부산물 중 황산은 순도 97% 이상으로 각종 정밀기기 세척에 두루 쓰인다. TSL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기업들은 아연 정광에서 아연을 추출하고 남은 부산물을 모두 폐기물로 버린다는 점에서 석포제련소의 기술 경쟁력을 엿볼 수 있다.

블랜딩 공법도 석포제련소의 강점이다. 영풍은 남미, 호주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광을 수입하는데, 아연 함량 비율은 나라마다 다르다. 아연 순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그 비율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영풍은 맛집의 비밀 레시피처럼 각 나라의 정광을 최적 비율로 배합해 순도 99.995% 이상의 아연을 생산한다. 

영풍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입한 정광의 모습. 나라 마다 아연 함량이 다르기 때문에 정광 색깔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시장경제DB
영풍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입한 정광의 모습. 나라마다 아연 함량이 다르다. 사진=시장경제DB

석포제련소는 우리나라가 보유한 몇 안 되는 '글로벌 탑 티어' 기업이다. 그러나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바로 환경 오염 논란이다.

석포제련소는 20여년 전부터 지역 환경단체들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아연 제련 과정에서 기준치의 수백배에 달하는 카드뮴 중금속이 섞인 폐수가 유출돼 낙동강 상수원을 오염시킨다는 것이 이들 주장의 요지이다. 글로벌 ESG 트렌드가 맞물리면서 환경 논란의 체급은 매우 커진 상태다. 일부 급진적 환경단체들은 ‘제련소 이전‧폐지’까지 주장하고 있다. 제련소 측은 이같은 잡음 불식을 위해 미국에서 ZLD를 도입하고, 공장 담장을 기준으로 차수막과 차수공, 이중 옹벽 등 오폐수 유출 방지 시설을 잇따라 도입했다. 지난해 말 ZLD 본격 가동으로 제련공정에 사용된 용수가 공장 밖으로 유출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석포제련소가 풀어야 할 숙제는 또 있다. 정부의 조업정치 처분이 그것이다. 석포제련소는 물환경보전법 위반을 이유로 지난해 11월 경북도로부터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받았고, 지금은 별건의 물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조업정지 60일’ 처분의 당부를 다투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환경부는 2019년 4월 석포제련소를 불시에 방문해 특별 지도점검을 실시했다. 이때 전해 공정에서 극판 세척수 5㎥가 설비 밖으로 넘쳤 흘렀고, 폐수 처리 공정에서 2단계 정화를 마친 용수 1~2㎥가 비상배관을 통해 이중옹벽조로 이동한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설비 밖으로 넘친 소량의 폐수는 공장 밖으로는 유출되지 않았다. 경북도는 청문을 통해 위 폐수가 배수로 배관을 타고 이중옹벽조로 모인 뒤 우수저장소를 거쳐 공정에 재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를 물환경보전법상 조업정지의 대상이 되는 '유출'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환경부는 물환경보전법 제38조 위반을 이유로 처분권자인 경상북도에 조업정지 120일(4개월) 처분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경북도의 청문과 행정안전부 행정협의조정위원회의 협의조정을 거쳐 조업정지 처분은 60일(2개월)로 줄어들었다.

업계에서는 조업정지 60일 처분이 확정될 경우, 심각한 아연 공급 부족 사태가 초래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핵심 소재의 글로벌 공급망 불안에 더해 국내 제조업계의 부담은 심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련 산업의 특성상 조업정지기간 전후 길게는 6개월 가까이 생산 차질을 빚는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공정 자체가 워낙 정밀해 설비를 멈추고 재가동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며, 재가동 후에도 전해액의 농도와 비율 등을 맞추려면 수주에 걸친 조정이 필요하다. 조업정지로 영풍이 입게 될 손실은 연간 매출액의 절반인 6,000억~7,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영풍 관계자는 “석포제련소는 초대형 공장이기 때문에 단순히 스위치를 내리는 방식으로 조업을 중단할 수 없다. 수많은 배관이 있고, 이 배관으로 각종 물질이 이동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일일이 내용물을 빼고, 조업을 정지해야 한다. 아연을 만들 때 사용하는 수조에 담긴 전해액도 다 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 11월 조업정지 10일 이행 당시 수율이 정상화되는 데까지 상당 시일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2021년 11월 조업정지 10일 처분 이행을 마친 영풍 석포제련소 전해 1공장에서 직원들이 조업 재개를 위해 전해극판을 전해조에 넣고 있다. 사진=영풍
지난해 11월 조업정지 10일 처분 이행을 마친 영풍 석포제련소 전해 1공장에서 직원들이 조업 재개를 위해 전해극판을 전해조에 넣고 있다. 사진=영풍

석포제련소는 2025년까지 ZLD(무방류 시스템)을 포함해 수질, 대기, 토양, 산림 등 오염 방지를 위해 7200여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현재까지 실제 집행금액은 1700여억원으로 알려졌다. 영풍그룹의 한 해 영업이익이 500억~1000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의 운명을 건 투자라 할 수 있다.

석포제련소 관계자는 “우리가 환경에 투자하는 건 단순히 모양새만 갖추는 게 아니다. 최대한 예방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오염 ZERO’”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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