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까지 나섰다... 이상거래 7兆 '혼돈'의 은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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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까지 나섰다... 이상거래 7兆 '혼돈'의 은행권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2.08.0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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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은행권 7조원 해외송금 '의심'
금융권, 가상자산 시세 차익에 '무게'
국정원 개입... "다양한 가능성 열어 둬"
법조계, "자금추적 등 상당시간 소요될 듯"
금융감독원 전경. 사진=시장경제DB
금융감독원 전경. 사진=시장경제DB

비정상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약 7조원의 해외송금으로 은행권에 파장이 일고있다. 금융권에서는 가상화폐 환차익을 노린 것으로 보고 있지만 최근 국가정보원이 수사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일각에서 불법 대북송금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복수의 금융권·법조계 관계자들은 사안이 복잡해 당국의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사건의 내용이나 책임소재를 속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4일 금융권과 관계당국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을 통해 해외로 나간 7조원 규모의 해외 송금과 관련해 국가정보원이 조사에 동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에서는 향후 대대적인 수사가 불가피하며, 경우에 따라 사태가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지난달 27일 금감원은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서 해외송금된 총 4조1,000억원 상당을 이상거래로 판단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까지 포함하면 범죄 혐의가 보이는 외환거래 규모는 6조6,000억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상 해외송금 거래의 시작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일단 국내 가상화폐 시세가 해외 시세보다 높은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가상화폐 관련 자금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해외에서 싸게 구입한 코인을 국내 코인거래소에 되팔아 시세 차익을 가져간 것이라는 '가설'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나온 자금이 국내 무역법인들의 계좌로 옮겨졌다가 다시 거래소가 아닌 해외법인으로 송금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검찰도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을 통해 수조원이 중화권과 일본으로 송금된 내역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는 금감원의 자료를 토대로 이번 사안을 직접 수사할 것인지 여부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7월 2조원대 송금 관련 자료를 검찰에 넘기면서 수사로 전환됐다. 금감원은 이후 총 44개 업체에서 53억7,000만 달러(약 7조원) 규모의 이상 송금 정황을 포착하고 관련 자료를 추가로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4일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국내 자금이 해외로 나간 것이 사태의 핵심이므로 검찰은 국외 재산도피 여부를 살펴볼 것"이라면서 "무역거래 형식으로 돈이 나갔으므로 외국환 거래법 위반 여부도 따져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일각에서는 국정원까지 '등판'하면서 '대북 송금 의혹설'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번 이상 송금의 80% 가량이 중화권으로 갔고 사업주가 조선족인 업체가 연루된 정황이 나온데다가 지난달 국정원장과 법무부장관이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세계은행 등에 출장을 다녀온 것을 두고 안팎으로 무성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 사진=시장경제DB
한동훈 법무부장관. 사진=시장경제DB

익명을 요청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금감원이나 은행 차원에서 현지 자금흐름을 면밀히 조사하기는 어렵고, 이런 일을 하기 위해 국정원이 있는 것"이라면서 "일단 단순 돈세탁에서 대북송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책임소재는 어디에?... "수사결과 봐야"

현재까지 금융권에서는 거액의 외환송금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부실회사(일명 '페이퍼 컴퍼니')를 끼고 이뤄진 정황을 들어 이를 사전에 확인하지 않고 송금한 은행에 1차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달 27일 7조원대에 달하는 은행권의 수상한 외환 거래와 관련한 브리핑 당시 "은행 지점이 거액의 외환 송금을 승인한 업체 중 대다수가 제대로 된 무역 회사가 아닌 ‘페이퍼 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이어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2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여러 시중은행에서 불법성이 명확한 외환 해외 유출이 다발적으로 발생했다"면서 "우리·신한은행에 대한 검사가 진행 중이고, 전 은행으로 검사를 광범위하게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 역시 "은행이 송금 업무를 처리할 때 관련법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감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1차적으로 은행의 과실여부를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특히 금감원이 지난해부터 이상 외환거래 움직임을 포착하고 은행권에 외환거래법 상 확인의무를 강화하고 관련 거래 감시를 강화할 것을 여러 차례 경고했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당분간 은행의 소홀한 대처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실제로 3일 한 매체는 우리은행을 통해 약 4,000억원을 무역대금이라며 해외로 송금했던 한 귀금속 업체가 자본금 1억원 안팎의 페이퍼컴퍼니였다고 보도했다. 해당 매체는 간단한 법인 등기부등본 열람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면서 은행의 책임론에 힘을 실었다. 

이 외에도 서류상 해당 회사의 설립 목적이 귀금속 도소매업·수출업이었지만 양식업, 식품 제조업, 소프트웨어 개발업 등 11개 사업을 하는 것으로 돼있어 이를 은행이 의심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면 은행권에서는 외환거래의 '사각지대'를 은행이 사전에 파악해 대처하기는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외환거래를 요청한 법인에 대해 은행이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돼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 의하면 은행은 신규 고객의 경우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고객확인제도(CDD) 절차에 따라 △사업자등록증 △법인 등기부등본 △주주 명부 등을 요구해 확인하는 데 그치고 있다. 신규고객이 아닐 경우 업체정보와 거래 품목, 수량 등이 기록된 송장을 확인하는데, 중요 정보가 누락되지 않은 이상 영업점 등 현장에서 사전에 이상 거래 여부를 판단하기 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은행은 송장의 진위를 확인할 의무가 없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특금법상 은행에 자금 출처를 확인할 의무가 있지만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나온 돈이 타행 개인·법인 계좌로 여러 번 세탁된 이후 무역업체 계좌로 들어왔다면 은행이 이를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물리적으로도 민간 영역에서 오고간 무역 거래에 대해 은행이 거래의 실제성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국내 대형 시중은행 3곳에서 보낸 해외 송금 건수는 총 578만건에 달해 이를 사전에 은행이 들여다보고 이상유무를 판단해 선제 조치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사건의 본질이 돈 세탁인지 아니면 일각에서 주장하듯 어떤 정치적 사안인지 분명치 않은 상황이라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 "수 많은 업체와 현금흐름을 조사해야 하는 탓에 단기간에 수사결과가 나오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권 관계자는 "교통에 비유하자면 당국이 도로교통법과 신호체계를 잘 만들어줘야 차량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면서 "당국과 은행권이 책임전가에 앞서 실효적인 사고예방 장치를 만드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자금의 흐름을 추적해 위법성을 입증하고 처벌하는 것이 금융당국의 절대적 권한인데 블록체인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자금 추적이 점차 어려워질 전망"이라면서 "향후 변화하는 디지털 금융환경과 관리 당국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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