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兆 이상송금' 사정 태풍 몰아친다... 속타는 은행 "억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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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兆 이상송금' 사정 태풍 몰아친다... 속타는 은행 "억울"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2.08.2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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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추산 이상 송금 8조5000억원 '비상'
금융권 기강해이 도마... 업체 결탁 정황도
우리은행-신한은행, 중간발표 대비 2천만달러↑
은행권, "송장 진위 여부 확인할 방법 없어"
전문가들, "직원 일탈과 시스템상 문제 구분해서 봐야"
금감원이 하나은행을 상대로 독일 헤리티지 펀드 판매에 대한 조사를 단행한다. 사진=시장경제 DB
금융감독원은 19일까지 신한·우리은행에 대한 현장검사를 마친 후 법규 위반이 의심되는 송금업체는 검찰과 관세청으로 이관하고 의심 거래 규모가 큰 은행에 대해 본격적으로 검사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우리·신한은행은 물론 KB국민·하나·NH농협·IBK기업은행 국내 주요 은행이 모두 검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사진=시장경제 DB

금융감독원이 이상 외화송금과 관련해 은행권에 엄중 조치를 예고한 가운데, 금융권에서는 애매한 내부통제 규정으로 지난해 사모펀드 사태에 이어 또 한번 '철퇴'를 맞는게 아니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상한 외화거래와 관련해 현장 직원의 도덕적 해이·일탈과 외화거래 시스템 상의 맹점을 구분해 제재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19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시중은행 해외송금현황'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올 상반기 해외송금액은 총 6,317억3,000만 달러로, 이날 환율 기준 한화 83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상반기 4대은행의 해외송금 규모가 5,114억3,000만달러였음을 감안하면 급증세가 이어지고 있다. 가장 많은 해외송금액을 기록한 우리은행은 상반기 3,440억3,000만 달러로 전체의 54%를 육박한다. 이어 국민은행(1,228억3,000만달러), 신한은행(1,074억5,000만달러), 하나은행(574억2,000만달러)이 뒤를 이었다. 

전체 외화 송금 규모가 늘면서 시중은행을 통한 수상한 외화송금 규모도 늘고있다. 지난 12일 기준 금감원이 파악한 은행권 이상 외화송금 거래 규모는 65억4,000만달러로 한화 약 8조5,6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당초 금감원의 추정치는 23억7,000만달러(한화 약 7조300억원)였다.

이복현 금감원장. 사진=시장경제DB
이복현 금감원장. 사진=시장경제DB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이상 외화거래 규모도 지난달 27일 중간 발표 대비 2,000만달러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금감원은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외에도 외국환을 거래한 은행에 2021~2022년 사이 △신설·영세업체의 대규모 송금거래 △가상자산 관련 송금거래 △특정 영업점을 통한 집중적 송금거래 규모를 자체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금감원은 19일까지 신한·우리은행에 대한 현장검사를 마친 후 법규 위반이 의심되는 송금업체는 검찰과 관세청으로 이관하고 의심 거래 규모가 큰 은행에 대해 본격적으로 검사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우리·신한은행은 물론 KB국민·하나·NH농협·IBK기업은행 등 국내 주요 은행이 모두 검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상 외화송금 거래 규모는 검사가 완료되는 시점에는 더 증가할 수도 있다"면서 "검사 결과 확인된 위법·부당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와 절차에 따라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국, "은행-송금 업체간 유착도 검사대상"

금감원에 따르면 이상 외환거래 대부분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가 '진앙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에서 수시 이체된 자금이 법인을 거쳐 해외로 송금되는 방식이다.

사법당국은 가상자산 형태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유령기업(페이퍼컴퍼니)을 통해 해외로 송금한 행위를 일단 '불법 환치기'로 보고 여기에 가담한 업체와 직원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은 현재 이상 외화송금과 관련해 은행 영업점 직원과 업체 간의 유착 관계를 검사 대상으로 두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은행들이) 업체와 유착이 있었던 것인지, 특이한 거래가 있었는데 은행 본점이 왜 몰랐는지에 대해 검사를 통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다음주부터 서울시 구금고 입찰 경쟁에서 나선다. 사진=시장경제DB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구 소재 우리은행 지점장이 검찰 수사내용 일부를 불법 송금 혐의를 받고 있는 업체에 알려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있다. 업체와 은행이 결탁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힘이 실린다. 사진=시장경제DB

실제로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 우리은행 지점장이 불법 송금 혐의를 받고 있는 업체에 검찰 수사내용 일부를 알려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있다. 업체와 은행이 결탁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힘이 실린다.

문제가 된 인천 소재 모 업체는 지난해부터 수백회에 걸쳐 일본에서 온 가상 화폐를 당국 허가 없이 현금화해 총 4,000억원을 해외로 보내주고, 수십억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이상 외화송금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지난 5월 경 이상 징후를 파악한 검찰이 우리은행 측에 해당 업체에 대한 금융거래 정보 조회를 요청했는데 이를 지점장이 해당업체에 알려준 정황을 금감원이 적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도 검찰은 해당 업체가 가상화폐를 처분한 돈을 해외로 송금하기 위해 반도체나 금괴 수입대금인 것처럼 꾸민 허위 증빙서류를 수백회 넘게 제출했는데 우리은행이 왜 이를 걸러내지 못했는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렇다 할 실적도 없는 소규모 업체가 송장 한 장 들고와서 거액의 외화를 송금해달라고 하면 당연히 전후 상황을 따져봐야 하는게 아니냐"면서 "외국환거래법상 은행에게 입증 서류를 확인하도록 한 것은 거래 목적을 제대로 확인하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대구지검은 해당 업체 관계자 3명을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미 사정(査正)의 칼날이 금융권을 향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5월 금감원은 하나은행에 외국환거래법 위반을 이유로 과징금 5,000만원과 지점 일부 업무를 4개월 정지하는 제재를 내렸다. 현재 금융정보분석원(FIU)이 특금법 위반에 따른 추가 제재를 준비중이어서 제재수위는 더 높아질 전망이다.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영업정지 이상의 제재가 내려진 것은 최초의 사례다. 

금감원이 하나은행을 상대로 독일 헤리티지 펀드 판매에 대한 조사를 단행한다. 사진=시장경제 DB
사진=시장경제 DB

법조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한 업체가 하나은행 정릉지점을 통해 3,000억원 정도를 해외로 보낸 것에 대한 징계가 이 정도라면 앞으로 드러날 이상 외화송금 규모에 따른 징계수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면서 "외국환거래법과 특금법 등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날 경우 향후 임원 중징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행권도 속앓이... "모든 송금 확인 어려워"

금감원과 사법당국이 이번 이상 외화송금 문제를 은행권의 부실한 내부통제와 도덕적 해이에 방점을 두면서 은행권 관계자들은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현행법상 은행은 외환거래 취급 시 송장(INVOICE) 등 외환거래 입증 서류를 제출받아 확인하도록 돼있다. 특정금융정보법상 암호화폐 계좌는 고객의 신원에 관한 사항을 확인해야 하고, 자금세탁 행위가 의심될 경우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은행권 관계자들은 업체가 송금을 요청할때 제출하는 송장의 진위 여부 또는 자금 출처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상 송금을 근본적으로 사전 차단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송장은 수입업체와 수출업체 간 거래명세표를 의미한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송장에 수출·수입업체, 품목, 수량, 가격 등 거래 정보들이 들어가지만 그 진위 여부를 은행이 확인할 방편이 마땅치 않고 현행법상 은행에 송장에 대한 진위여부를 확인할 의무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가짜 송장이라도 수출업체와 돈을 받는 계좌주가 일치하는 등 기본적 요건이 확인되면 은행은 돈을 보내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업체가 금액에 해당하는 물건을 받았는지 여부까지 은행이 확인할 수도 없고 은행 입장에서 그게 중요한 부분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특금법상 은행이 자금 출처를 확인할 의무가 있지만 은행은 사실상 은행과 해당 업체의 거래 내역 정도만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뿐"이라면서 "자금출처를 확인하라는 의무만 있지 그 방법이나 권한은 없는 상태에서 결과적으로 문제가 된 송금사례를 은행 책임으로 돌리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은행은 외환거래 취급 시 송장(INVOICE) 등 외환거래 입증 서류를 제출받아 확인하도록 돼있다. 특정금융정보법상 암호화폐 계좌는 고객의 신원에 관한 사항을 확인해야 하고, 자금세탁 행위가 의심될 경우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해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현행법상 은행은 외환거래 취급 시 송장(INVOICE) 등 외환거래 입증 서류를 제출받아 확인하도록 돼있다. 특정금융정보법상 암호화폐 계좌는 고객의 신원에 관한 사항을 확인해야 하고, 자금세탁 행위가 의심될 경우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해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이어 "신생 업체가 은행에 와서 큰 돈을 해외로 보내달다고 하면 당연히 이런 저런 요건을 따져본다"면서도 "업체 관계자가 쉽지 않은 거래를 따냈으니 도와달라고 통사정을 하거나, 송금을 거절할 경우 추후 제 때 송금을 못한 데서 비롯된 피해를 보상하라고 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이상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결탁 등 부정한 이유로 송금해준 사례, 문제점을 모르고 송금해준 사례를 잘 구분해서 봐야한다"면서 "내부통제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은행 현장의 실적 압박 등도 같이 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상송금 관련 조사에 국정원이 참여한 것과 관련해 "자금이 해외로 나간 이후 흐름을 보기 위한 것으로 안다. 미국이 금지하는 국가와 거래했다가 회사가 파산할 수 있다는 점을 금융권이 모를리 없다"면서 대북송금 의혹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편 법조계 관계자들은 특금법상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조항이 금융당국의 '원님 재판'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특금법상 금융회사는 금융거래 상대방이 자금세탁행위 등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FIU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돼있다"면서 "문제는 그 합당함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 송금 후 문제가 발생하면 합당한 근거가 있는데 보고를 안한 금융사가 죄인이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애매한 <적절한 내부통제>를 하지 않았다며 당국이 CEO들에게 중징계를 권고했다가 재판에 의해 감경된 전례가 있다"면서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법 규정을 애매하게 해놔야 더 큰 권위와 힘을 갖기 마련인데 앞으로 관련 규정을 명확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가상자산의 알고리즘이나 거래방식 등은 앞으로 더욱 복잡해질 것이고, 점차 국가가 감독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진화해나갈 것"이라면서 "규제가 많은 나라의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는 글로벌 코인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당국과 시장이 바람직한 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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