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송금 대책' 쏟아낸 은행권... "권한·역량 한계, 효과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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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송금 대책' 쏟아낸 은행권... "권한·역량 한계, 효과 미지수"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2.08.2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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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우리은행 잇따라 고강도 방지 대책
송금 전후 증빙서류·실사확인 강화방침
업계, "코인시장 급성장... 새로운 질서 필요"
법조계, "은행권 기강해이부터 잡아야"
최근 하나은행은 업체가 업력과 자본금에 비해 거액의 해외송금을 시도할 경우 수출입 계약서와 수입 신고필증 등 추가 확인서류를 제출하도록 했다. 페이퍼컴퍼니(유령업체) 여부 판별을 위해 업체 현장방문을 통한 실사 검증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시장경제DB
최근 하나은행은 업체가 업력과 자본금에 비해 거액의 해외송금을 시도할 경우 수출입 계약서와 수입 신고필증 등 추가 확인서류를 제출하도록 했다. 페이퍼컴퍼니(유령업체) 여부 판별을 위해 업체 현장방문을 통한 실사 검증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시장경제DB

총 9조원에 달하는 이상 해외송금으로 은행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은행들이 저마다 강도높은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회성·면피성 대책이 아닌 외화관련 업무 전반에 걸쳐 실효적인 '룰'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이 이상 외화송금으로 수사를 받는 와중에 저마다 강도 높은 이상송금 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7월 1일 조직 개편에서 영업점 외환업무 모니터링 강화를 위해 외환업무센터에 '외환모니터링팀' 신설하고 이후 7월 29일 외환영업시 유의사항을 전 영업점에 전달했다.

우선 우리은행은 특정 업체가 최초로 수출입 거래를 요청해올 경우 업체의 자본금 규모와 무관하게 여신거래처와 함께 반드시 현장방문을 하도록 권고했다. 또한 지급신청서와 영수확인서 등 필요한 증빙서류들을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보관해 수시로 검증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현재 관련 서류들을 정확히 존안하기 위해 스캔 방식의 전산화를 진행중이며 올해 하반기 내 관련 인프라 구축이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금 이후 모니터링도 강화할 방침이다. 해외투자 신고, 송금 취결 후 6개월 안에 외화증권(채권) 취득보고서 징구여부를 확인토록 했다. 투자금액 납입 또는 대여자금 송금 시점에서 6개월 이내 외화증권(채권)취득이 보고되지 않을 경우 독촉장을 발송한다는 방침이다. 

이 외에도 우리은행은 향후 출입대금 지급 또는 영수 시 증빙서류에 기재된 금액을 초과한 송금을 불허하고, 거래 당사자 일치여부도 확인하도록 했다.

하나은행 역시 업체가 업력과 자본금에 비해 거액의 해외송금을 시도할 경우 수출입 계약서와 수입 신고필증 등 추가 확인서류를 제출하도록 했다. 페이퍼컴퍼니(유령업체) 여부 판별을 위해 업체 현장방문을 통한 실사 검증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앞서 10일 "최근 타행에서 무역송금대금을 가장한 거액의 해외송금이 발견돼 외국환은행의 확인의무가 이슈가 되고 있다"면서 "전국 영업점에 재발방지 대책을 '외국환업무 시 유의사항' 책자로 만들어 배포했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은 외환부문 거래 당사자들의 검증절차를 강화해 유령업체를 통한 대량 해외송금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외국환은행의 확인의무 준수를 위해 계약서(인보이스) 상의 거래 당사자와 송금의 최종 수취인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고, 최종 수취인이 거래 상대방이 아닐 경우 제3자 지급 등 신고대상을 반드시 확인하도록 했다. 

동일자‧동일 수취인 거래라 할지라도 앞서 반복된 송금이 있거나 2~3일 내 빈번하게 동일한 송금요청이 들어올 경우 송금사유와 계약서 등 증빙서류를 다시 한번 확인하도록 했다. 

업력과 자본금 대비 거액의 송금이나 업종과 관계없는 물품대금을 해외로 보는 경우는 은행직원이 업체를 방문해 실사 확인하고, 수입신고필증 등 서류를 추가 확인하고 중계무역일 경우에도 수출입계약서 확인 등을 통해 거래 전반의 이상유무를 확인하도록 했다.

이 외에도 하나은행은 △계약서상 기재된 송금액을 초과해 보낼 수 없도록 하고 △제출된 증빙서류 세부적 검수 △수출입계약서상 물품의 국내 통관여부 확인 △미통관시 거래의 전체적 흐름 재점검 △수입계약 취소에 따른 반송자금 등 수령 시 타행 송금내역 확인 △같은 송금에 다수 목적이 있을 경우 최대 3건까지 송금사유(코드) 기재 등 강도 높은 재발방지 대책을 내놨다.

현재 이상 송금 규모 1위 오명을 얻은 우리은행은 지난 7월 1일 조직 개편에서 영업점 외환업무 모니터링 강화를 위해 외환업무센터에 '외환모니터링팀' 신설하고 이후 7월 29일 외환영업시 유의사항을 전 영업점에 전달했다. 사진=시장경제DB
우리은행은 지난 7월 1일 조직 개편에서 영업점 외환업무 모니터링 강화를 위해 외환업무센터에 '외환모니터링팀' 신설하고 이후 7월 29일 외환영업시 유의사항을 전 영업점에 전달했다. 사진=시장경제DB

 

"은행 권한·역량 한계있어" vs "기강 확립부터"

복수의 금융권 전문가들은 최근 은행권이 이상 외화송금 방지를 위해 내놓은 대책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관계자들은 최근 수년간 가상자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음에도 적기에 관련 규제방안을 내놓지 않은 금융 당국의 책임도 크다고 입을 모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은행의 역량이나 권한으로 볼때 해외 설립법인일 경우 자산 규모, 실적 등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업체가 제출한 서류를 잘 확인하고 관련 서류와 '크로스체킹'을 하면 도움은 되겠지만 (업체가) 작정하고 서류를 위조해오면 은행으로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해외주식 투자가 급증하면서 외화 송금에 대한 수요는 대폭 늘었지만 현행법은 1999년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서 "이후 문제가 생길때마다 기존 법에 속칭 '땜질식' 처방을 하다보니 창구 직원도 관련 서류나 절차를 다 알지 못해 의도치 않게 과태료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외환관리 업무를 하고 있는 은행 관계자는 "코인 시장이 수년 전부터 급성장했음에도 당국이 제대로 관리 방안을 내놓지 않은 것도 문제"라면서 "'김치 프리미엄'이 나타났을 시점에 당국이 코인 관련 '룰'을 만들지 않아 은행권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 어떤 재화 가격이 국내외 시세차이가 있어도 물류비나 관세 등이 일종의 완충 역할을 해서 쉽게 시세차익을 내기 어려웠지만 가상자산은 클릭 한 두번으로 아무런 비용없이 국경을 오고간다"면서 "가상자산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시대에 맞는 규제방안을 당국이 속히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반면 법조계 관계자는 은행권 도덕적 해이가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중은행 지점장이 수천억원대 해외 송금을 한 페이퍼 컴퍼니에 수사상황을 알려준 정황이 나오고 몇년 사이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 직원의 수백억원대 횡령 등 은행권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이상송금 방지 대책에 앞서 기강확립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이번 규제 강화로 정상적인 해외 송금까지 막히거나 지연되면 많은 기업들이 해외 영업에서 경쟁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면서 "해외 송금 관련한 직원 일탈은 엄벌하되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을 구분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형 금융사 관계자 역시 "해외직접투자 시 매년 연간 사업실적 보고서에 철저히 기입하도록 하는 등 정상적인 송금은 잘 관리되고 있다"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고려할때 이번 사태로 해외송금이 더 어렵고 복잡한 방향으로 가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복현 금감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감원장. 사진=연합뉴스

한편 22일 금감원은 8조원대 이상 외환송금 거래와 관련해 우리·신한은행에 이어 KB국민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 등 주요은행에 대한 검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금감원은 다수 검사역을 현장에 투입해 약 2주간 현장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KB국민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에 대한 이번 검사 역시 추가적인 이상 외화송금 여부와 규모를 밝히는데 주력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6월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서 비정상적인 외환거래에 대한 보고를 받은 금감원은 검사를 통해 4조4,000억원 규모의 이상 거래를 확인했다. 이후 당국은 우리·신한은행 외에 다른 은행에서도 약 4조1,000억원대의 이상 외환거래가 이뤄진 정황을 파악했다.

금융권에서는 현재까지 8조5,000억원 상당의 이상 외화송금이 드러난 이상 은행권 전체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향후 금감원은 상대적으로 이상 거래 규모가 크지 않은 지방은행에 대해서는 우선 사전 서면조사 후 추후 필요 시 현장 검사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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