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인 ‘중견기업’은 中企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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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인 ‘중견기업’은 中企로 돌아가고 싶다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7.07.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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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명문장수기업센터에서 개최한 '2017년 제3회 명문장수기업 만들기 전략포럼'에서 권종호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은 "기업기배구조 개편은 '기업의 자율성 존중'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 해당 국가의 경제 환경에 적합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중견기업협회

중견기업은 중소기업으로 돌아가고 싶다.

대기업 규제와 중소기업 장려 정책의 사이에 끼이면서 이도저도 아닌 기업이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를 추진하면서 자신들의 성장까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우려하는 상황이다.

중견기업은 법적으로 매출 400억~1500억원 이상(업종별), 자산규모 10조원 미만인 기업이다.

김정관 무역협회 부회장이 지난 6월17일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식에서 “정부는 대기업 중심 정책 대신 ‘한국콜마’ 같은 중견기업을 육성해 한국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 것도 중견기업들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콜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견기업 중 하나다. 화장품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기업이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유명 화장품 업체들도 한국콜마가 개발한 상품을 공급받는다. 콜마는 지난 2015년 매출 1조원 벽을 넘었다.

중견기업들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상생법)이 중견기업의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식품과 제과 등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중견기업들이 상생법이 통과되면 성장에 부진을 겪을 것이라는 것이다.

샘표식품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샘표식품은 지난 70여년간 간장, 고추장, 된장 사업에만 주력해 왔다. 그러나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도입되면서 장류 3종이 모두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자 판매에 많은 제약이 따르게 됐다.

또, 중견기업 F사 관계자는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공장 증설이나 인수합병(M&A)을 못 하게 되는데 기업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나. 법제화까지 되면 정말 큰일이다”고 걱정했다.

중견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승격하지 않으려는 이유에는 외국기업과의 역차별 문제도 있다.

국내 대기업은 점포 확정에 큰 제한을 받는다. 반대로 외국 기업은 급속도로 확산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오스람과 필립스를 들 수 있다.

발광다이오드(LED)를 중기 적합업종을 지정한 후 오스람과 필립스의 비중은 2011년 4.5%에서 2013년 10%로 상승한 바 있다.

중견기업들은 가업승계의 어려움도 성장에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중견기업들은 가업을 잇게 하고 싶어도 상속증여세 부담, 복잡한 지분구조, 엄격한 가업승계 요건 등을 뚫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또 한국의 경우 가업승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강하다. 재벌 대기업의 경영권이 경영 능력과 관계없이 2·3세로 세습되고, 상속받은 후계자들의 불법·탈법 경영이 반복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이나 롯데그룹의 최고경영자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경영권 승계 다툼이 대표적이다.

이동기 중견기업연구원장은 지난달 29일 열린 ‘명문장수 기업 만들기 전략포럼’에서 “미국처럼 경영과 소유가 분리된 체계가 일반화하는 만큼 가업승계라는 용어 대신 ‘기업승계’라는 표현을 사용해 부정적인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적합업종 법제화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한국경제 발전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는 중견기업계의 발목을 잡아 산업전반에 걸쳐 ‘하향평준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의 중견기업은 국가 전체 기업 수의 0.1%(3558개)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매출액은 620조4,000억원으로 국내 기업 총매출액의 17.3%를 차지한다. 고용 인력은 115만3,000명으로 전체 고용 인력의 5.5%(2015년 기준)를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중견기업이 한국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은 상당하다. 그러나 규제와 장려의 중간 단계에 끼이면서 정책 사각지대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에 100년 이상 된 장수 기업이 7개에 불과한 것과 중견기업들이 중소기업으로 회귀를 검토하는 것도 이 같은 통계와 무관치 않다. 중견기업의 중소기업 회귀 검토 비중은 2013년 14.7%에서 2014년 8.9%, 2015년 6.9%, 2016년 6.9%를 기록했다.

중견기업연합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으로 회귀를 검토하는 요인은 조세 혜택(50.0%), 금융 지원(24.8%), 판로 규제(15.0%), 기술 개발 지원(5.6%)순으로 나타났다.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정부, 국회와 수없이 만나 중견기업 육성과 발전 필요성을 피력했고 많은 공무원과 국회의원이 공감했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구체적인 데이터와 기존의 성장 전략을 재검토해 중견기업의 가치와 비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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