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기소" 長考 끝에 惡手... 여지없이 드러난 검찰의 '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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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기소" 長考 끝에 惡手... 여지없이 드러난 검찰의 '독선'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9.02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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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불법경영승계 혐의와 이재용 연관성 입증 '전무'
법조계 "檢기소, 시작부터 '삐걱'... 무죄 가능성 커"
이 부회장 공판 일정 묶여... '경영 공백' 불가피
삼성 '신사업' 추진 차질 전망... 글로벌 신인도에도 부정 영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결국 불구속 기소했다. 대검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중단 및 불기소’ 권고가 나온 이후 두 달여 간 장고(長考) 끝에 내린 결정이지만, 기존 검찰이 주장하던 내용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데다, 이 부회장과 공소사실 간 연결고리 입증도 전무한 ‘졸속기소’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제범죄형사부는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을 수사한 결과,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핵심 관련자 11명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이복현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2기)는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이 최소비용으로 삼성그룹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시점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합병 성사 이후에는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이었다는 불공정 논란을 회피하고 자본잠식을 모면하기 위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자산을 4조원 이상 부풀리는 분식회계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설명은 수사심의위 ‘불기소’ 권고를 정면으로 거스를 정도의 법리적 치밀함은 갖추지 못했다는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대부분의 혐의에 직접 증거가 아닌 정황증거를 적용한데다, 경영승계 작업과 이 부회장의 연관성도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 

검찰은 이 사건 수사를 4년 가까운 기간 동안 진행해왔다. 삼성 주요 계열사를 50여 차례 압수수색하고, 삼성 전현직 임직원 110여명을 상대로 430회에 이르는 소환조사를 통해 무려 20만 페이지가 넘는 수사기록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에 대한 결정적 혐의입증은 요원해 보인다는 것이 법조계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증거를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추측·예단을 먼저 깔고 증거를 보니까 편향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복현 부장검사 등 검찰 수사팀이 고집을 부려 관철시킨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어 “수사심의위에서도 불기소를 권고했기 때문에 검찰 기소는 시작부터 삐그덕대는 셈”이라며 “만신창이 상태로 이뤄진 기소에 대해 검찰도 내심 무죄선고가 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내 법학전문대학원 정교수로 재직 중인 A 교수도 “시세조종 등 혐의와 이 부회장 간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없어 개인적으로는 이 부회장이 무죄가 나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며 “이 부회장이 주가를 조작하라고 일일이 지시했다는 증거가 전무하기 때문에 재판에서 유죄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이 사건 공소사실인 자본시장법 위반, 회계분식, 업무상 배임죄는 증거와 법리에 기반하지 않은 수사팀의 일방적 주장일뿐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며 반박 입장문을 냈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설명한 내용과 증거들은 모두 구속 전 피의자심문이나 수사심의위 심의 과정에서 철저하게 검토된 것으로 새로운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며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는 수사팀의 태도는 증거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기보다는, 처음부터 삼성그룹과 이재용 기소를 목표로 정해 놓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 사진=YTN뉴스 캡쳐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 사진=YTN뉴스 캡쳐

◆이 부회장, '사법리스크'에 또 다시 발목잡혀... 삼성, 사업 전략 수정 불가피 

이날 검찰은 “수사심의위 불기소 권고 이후 법률·금융·경제·회계 등 외부 전문가들의 비판적 견해를 포함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수사내용과 법리, 사건처리방향 등을 전면 재검토했다”며 “이를 토대로 심도있는 논의를 거친 결과,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한 사안의 중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주요 책임자 기소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삼성 수사 및 기소의 당부와 관련돼 의견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지난달 말부터 이달 중순까지 외부전문가들을 불러 면담을 실시한 바 있다. 검찰의 ‘외부 전문가 조사’에 대해서는, 의견자문 차원을 넘어 이 사건 수사에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의견을 낸 학자들에게 사실상 입장을 바꿀 것을 종용했다는 증언이 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검찰 스스로 수사 신뢰도를 훼손하는 악수를 뒀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검찰이 ‘기소 강행’이란 결론을 미리 내놓고, 유리한 진술 확보를 위해 ‘구색 맞추기 의견 자문’에 나선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심위가 불기소를 의결하고 한 달이 지난 뒤, 검찰 수사팀이 별도의 외부전문가들에게 기소 당부 의견을 구했다는 사실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과잉 수사와 기소권 오남용을 막기 위해 출범한 수사심의위 의결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심위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복현 수사팀의 요청에 응해 면담을 진행했다고 밝힌 모 대학 B 교수는 “검찰이 보여준 자료를 살펴봤지만 이 부회장이 범행에 가담했다고 볼만한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고 전했다. 

검찰이 이 부회장 기소를 강행함에 따라, 삼성의 사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신사업 분야는 장기적인 안목과 대규모 투자를 관철시킬 수 있는 ‘총수 리더십’이 필수적인 만큼, 이 부회장이 기소되면 재판 일정에 발이 묶여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이 부회장은 2년 이상의 기간 동안 매주 2~3회씩 법정에 출석해 재판을 받아야 한다. 

실제로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구속 수감된 2017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1년여 기간 동안, 삼성전자의 M&A(인수합병)와 대규모 R&D 투자는 모두 ‘올스톱’ 됐다. 초유의 총수부재 상황에서 삼성은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이 부회장이 ‘옥중 경영’에 나섰지만 빈틈을 메우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A 교수는 “아주 어려운 시기에 처한 삼성으로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이 부회장이 매주 법정에 출석하게 되면 경영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지고 해외 출장도 올스톱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삼성 브랜드와 우리나라의 국가적 위신도 크게 추락하는 등 보이지 않는 상당한 손실도 따를 것”이라며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10대 3이라는 압도적 다수로 이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 결정을 내렸는데 검찰이 이를 무시한 것은 상당히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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