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로 언론 쥐고 흔든 삼성?... 그 광고 받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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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로 언론 쥐고 흔든 삼성?... 그 광고 받은 한겨레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9.1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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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균형감 잃은 '언론 쥐고 흔든 삼성' 보도
합병 당시 '삼성 의견광고' 실은 언론사들 비난
의견광고를 '여론공작' 낙인... 근거 제시 없어
변호인단 "한겨레도 의견광고 지면에 실어" 반박
헤지펀드 엘리엇 주장과 유사, 해당 기사 '도마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삼성물산 주주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7월 17일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를 개최합니다....(중략)... 안타깝게도 엘리엇은 주주총회에서 합병을 무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주주님들의 주식 한주라도 저희에게 위임해 주시면 큰 힘이 되겠습니다.”

2015년 7월 13일자 <한겨레> 지면에 실린 '삼성물산 의견광고' 내용 중 일부다. 삼성물산은 이 광고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합병을 통해 바이오사업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 대표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며 주주들의 지지를 간곡히 호소했다. 

당시 합병을 앞두고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치열한 여론전을 벌였다. 합병 반대를 선언한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를 취득하며 노골적인 경영간섭에 나섰다. 주주들에게 합병 반대를 권유하면서 ‘삼성 흔들기’에 주력했다. 겉으로는 ‘주주이익 보호’를 내세웠지만, ‘단기 시세차익’을 챙기려는 속내가 물씬 풍겼다. 

헤지펀드는 무엇보다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특성을 지녔다. ‘도덕’ 내지는 ‘상도의’는 그들 사전에 없다. 그들에게 '이익'은 '도덕'의 다른 이름이나 다름이 없다. 누군가는 잃고 누군가는 얻는 자본시장의 ‘제로섬’ 게임에서 엘리엇의 합병 반대는, '단기 차익'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해지펀드의 본질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은 절박했다. 엘리엇의 전방위적 공세를 막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삼성의 입장에서 합병은 취약한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육성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었다. 비율은 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0.35주. 양 측의 신경전은 합병 당일까지 계속됐지만 국민 여론은 '주주 이익'만을 강조하는 엘리엇에 등을 돌렸다. 이런 분위기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주총에도 영향을 줬다. 양사 주주들은 삼성 측의 합병안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당시 합병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는 사실은 법원 판결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15년 7월 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합병비율 불공정 주장의 근거가 없다”며 엘리엇이 낸 ‘삼성물산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2017년 10월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도 삼성물산 주주였던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합병무효 소송' 1심에서, "합병 비율은 적법했다"고 판시했다.   

하급심이지만, 우리 법원은 ‘합병비율의 적법성’과 관련돼 일관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는 검찰 삼성 수사의 신뢰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검찰은 모직-물산 합병과정에 '시세조종 의혹'이 있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법원의 판단을 기준으로 할 때, 검찰의 시각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시장참여자들과 법원이 합병비율 산정의 정당성을 인정한 상황에서 나온 시세조종 의혹은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검찰發 '리크(흘리기)기사' 언제까지 

"의혹·정황만으로 '유죄추정' 대단히 위험"

‘삼성물산 합병 지지호소 의견광고’를 지면에 실었던 한겨레는 이달 11일 <합병 주총 직전 ‘36억원 광고’ 언론 쥐고 흔든 삼성의 민낯>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삼성이 거액의 광고를 언론사에 발주하고 전방위적인 여론 조성 작업을 벌였다는 내용이다. 검찰이 흘린 정보를 그대로 기사화 한 이른바 ’리크(leak) 기사‘였다. 

이 기사에서 한겨레는 검찰발(發) 정보를 인용해 “(삼성이) 엘리엇을 ‘시세차익만 노리는 투기 세력’으로 규정해 삼성과 엘리엇의 선악 대결로 몰아 합병의 문제점을 숨기고, 조작된 합병 시너지 효과를 조직적으로 기사화해 일반 대중은 물론 투자자가 합병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할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2년 10월 최지성 미전실 실장 지시로 설계된 이 부회장 승계 계획안 ‘프로젝트G’ 문건이 이듬해인 2013년 1~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 부회장에게 보고된 뒤 이 부회장 주도로 본격 실행에 들어갔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해당 보도는 삼성이 거대한 음모 아래 언론사를 포섭하고, 불법적인 경영승계 작업을 벌인 혐의가 명백한 것처럼 묘사했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심지어 위 기사는 헤지펀드 엘리엇을 '억울한 피해자'처럼 묘사하기까지 했다.

삼성과 엘리엇의 여론전은 모직, 물산 양사의 주주총회 결과를 예상하기 어려울만큼 팽팽하게 전개됐다. 엘리엇 역시 국내 홍보대행사를 선정해 언론사 대응에 열을 올렸다. 엘리엇의 언론 홍보는 조금도 문제삼지 않으면서, 삼성의 의견광고 게재를 '파렴치한 여론 공작'으로 비난하는 한겨레의 태도는 균형감을 잃었다.

무엇보다 한겨레는 자신들이 위 삼성의 의견광고를 게재한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삼성측 변호인단에 따르면, 해당 광고는 서울과 지방, 종합지, 경제지 등 구분없이 전국 130여개 신문에 게재됐다. 

회사가 외국계 헤지펀드에 대응해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주주에게 알리고 협력을 구하기 위해, 언론사에 광고를 낸 것도 자연스런 행위이다. 한겨레는 사안을 교묘하게 비틀고 꼬아서 ‘삼성의 음모’라는 프레임을 창조해 냈다. 한겨레 기사의 정치적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자본시장법 및 외부감사법 위반, 형법상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 부회장 사건심리는 내달 22일부터 시작된다. 죄의 유·무는 법정에서 가려질 터이지만, 검찰의 기소 논리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엘리엇의 그것과 닮아있다는 점은 심히 우려스럽다. 

엘리엇은 2018년 7월 우리 정부를 상대로 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손해액만 7억7000만 달러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약 9115억 원, 거의 1조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대한민국 검찰과 언론이 합세해 이 부회장과 삼성을 궁지로 모는 동안, 엘리엇은 1조원의 현금이 그들 품 안으로 들어오길 기대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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