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 개정 꼼수로 '주총 3법' 무력화... 官治경영 불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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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령 개정 꼼수로 '주총 3법' 무력화... 官治경영 불보듯"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3.0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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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정책토론회... 법학자들, '시행령 개정 위헌성' 異口同聲 성토
"시행령, 상위법인 상법·자본시장법·국민연금법에 우선할 수 없어"
국민연금의 상장기업 '경영 참여' 요건 완화... 전문가들 "기업경영 개입'"
법률은 그대로 두고 시행령만 개정... 정부 스스로 법체계 훼손
(왼쪽부터)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전삼현 바른사회 시민회의 사무총장,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정호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왼쪽부터)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전삼현 바른사회 시민회의 사무총장,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정부가 '시행령 개정'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상법, 자본시장법, 국민연금법 등 이른바 '주총 3법'을 무력화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이 쟁점을 분석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바른사회시민회의와 지배구조포럼, 바른금융재정포럼은 '경제법률 시행령 입법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화실에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우한코로나(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감염위험 최소화를 위해 비공개·유튜브 중계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조발제는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맡았다. 최 명예교수는 '주총 3법' 시행령 개정의 문제점은 물론이고 정부 시행령 개정이 안고 있는 위헌성을 조목조목 따졌다. 이어진 부분발제에서는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 교수(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 ,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상법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의견),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 명예교수(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 ‘국민연금의 민간기업 지배 강화’ 사전정지 작업)가 각각 원고를 발표했다. 

최 명예교수는 최근 정부가 국회 입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행령만을 개정하는 편법을 써, 민간기업의 경영에 사실상 개입하는 '관치(官治)경영' 행태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법률체계상 시행령은 모법인 법률로부터 구체적 위임을 받은 사안만을 규율해야 한다. 법률의 하위법으로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만으로 재개정이 가능하다. '대통령령'에는 긴급명령과 시행령이 있으나 후자의 사례가 훨씬 많다.

최 명예교수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법률이 법률을 위반하는 사태 즉, ‘상위법 우선의 원칙’이 무너지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시행령이 모법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빈번하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위법은 상위법에 제정 근거가 있어야 하며, 모법의 위임은 구체적이라야 한다. 이른바 '포괄 위임'은 금지된다. 시행령은 법률의 하위법이므로 상위법인 상법, 자본시장법, 국민연금법에 우선할 수 없다. 만약 하위법의 내용이 상위법과 충돌한다면, 당해 조항은 효력을 상실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최 교수는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대표적 사례로, 정부가 지난달 말 개정한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꼽았다.  

‘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 자율규범’(스튜어드십코드) 근거 조항 중 하나인 자본시장법 147조는 상장사 발행 주식 총수의 ‘100분의 5’ 이상을 보유한 기관투자자에게 △보유 지분 비율 △보유 목적 △보유 주식 관련 주요 계약 내용 등을 금융위원회 및 증권거래소에 보고토록 의무화하고 있다(같은 조 1항 전단).

위 기관투자자 보유 주식 합계가, 당해 상장법인 발행 주식 총수의 100분의 1 이상 변동된 경우에도 그 사실을 금융위와 거래소에 보고해야 한다. 다만 기관투자자의 주식 보유 목적이 '단순 투자'에 있다면 위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즉 발행 주식 총수의 5% 이상을 보유한 기관투자자 가운데 그 보유 목적이 ‘경영 참여’에 있는 경우에만 자본시장법이 정한 보고의무를 부담한다.

자본시장법은 법문상 ‘경영 참여’를 [발행인의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같은 조 1항 후단).

법률이 예시한 ‘경영 참여’ 방식에는 임원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 정지, 이사회 등 회사의 기관과 관련된 정관 변경 등이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관 변경’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상장기업 발행 주식 총수 100분의 5 이상을 보유한 기관투자자가 정관 변경을 회사 측에 요구하려면, 그 전에 보유 주식의 수 및 비율, 변동 사실, 보유 목적 등을 사전 공시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등을 사전에 공개했다면 위와 같은 제약 없이 회사 측에 정관 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동 시행령 154조 1항 2호).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가 상장기업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그만큼 넓힌 것이다. 이는 당해 기업 입장에서 본다면 새로운 부담이 추가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기업 경영에 대한 규제를 풀어도 모자란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기업을 옥죄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54조(대량보유 등의 보고에 대한 특례)①

[개정 전] 
2. 이사회 등 「상법」에 따른 회사의 기관과 관련된 정관의 변경.

[개정 후]
2. 이사회 등 「상법」에 따른 회사의 기관과 관련된 정관의 변경. 다만, 제2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 또는 그 밖에 금융위원회가 정하여 고시하는 자가 투자대상기업 전체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사전에 공개한 원칙에 따르는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최 명예교수는 “정부의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은 상위법(법률)에 정면으로 반하므로 무효”라고 지적했다.

'상법 시행령'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최 교수는 "시행령에서 상장회사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계열회사 사외이사 재직기간 포함 9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했는데, 헌법이 보장한 직업선택의 자유 및 영업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자 사적 자치 원칙에 대한 침해"라고 강조했다. 

국민연금법 시행령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시행령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시행할 경우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설치'를 규정하고 있지만, 해당 기구는 법률에 근거가 없다. 

최 교수는 "국회 입법이 어렵다고 해서 시행령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법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여야의 협치가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김원식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시행령 통한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 치명적 부작용으로 돌아올 것"

부분발제 발표에서 김원식 교수는 '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이 기업의 글로벌화 기회를 위축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고용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시행령도 아닌, 지침에서 규정한 스튜어드십코드는 수익률 극대화를 보장하지 못한다"며 "민간기업에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요구하는 것도 사실상 기업활동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는 기업 수익률을 낮추는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국민연금의 제1 목표인 수익률 극대화는 커녕 적자에 허덕이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김정호 겸임교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국민 기본권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것으로 회사 지배주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달 개정한 상법 시행령은 논란이 되고 있는 사외이사 연임 제한 이외에 주주총회 소집 시 사외이사 세부경력 사항 기재, 직무수행계획서 제출 등 고지 의무를 포함하고 있다. 

김 교수는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법령은 국회의 신중한 논의를 거쳐 결정돼야 한다"며 "본 시행령은 국회를 통한 공론화 절차 없이 국무회의의 결정만으로 이뤄져 헌법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는 자신들의 틀에 사회를 맞추려 무리하게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회사의 존재가치를 잘 실현하는 기업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조동근 명예교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의 실제 목적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강화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고 정의내렸다.  

그는 "공적 연·기금으로서의 국민연금 뒤에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 행동주의 펀드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국민연금은 여전히 기금운용위원회에 현직 장관이 위원장으로 참여하는 등 독립성 없는 구조로, 산하 위원회 구성도 비중립적"이라고 부연했다. 

조 교수는 "국민연금에 날개를 달아주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은 그 자체가 독선적"이라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중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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