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逆行' 사외이사 연임제한은 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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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逆行' 사외이사 연임제한은 위헌"
  • 오창균 기자
  • 승인 2020.03.10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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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토론] '사외이사 연임제한' 시장경제신문-자유경제포럼 세미나
학계 "사외이사 임기 길수록 성과 높은데 두서 없이 상법 시행령 개정"
법조계 "母法 위임 범위 일탈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 위헌 소지 다분"
'사외이사 연임 제한이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 경제정책토론회가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시장경제신문과 자유경제포럼이 공동주최했다. 사진=이기륭 기자
'사외이사 연임 제한이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 경제정책토론회가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시장경제신문과 자유경제포럼이 공동주최했다. 사진=이기륭 기자

정부가 올해 1월 기업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을 유예기간 없이 강행하면서 주주총회를 앞둔 재계는 대혼란에 빠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다. 기업들은 눈앞으로 다가온 정기 주주총회 전까지 임기 6년이 넘은 사외이사를 내보내고 새로운 인사를 찾아야 한다.

당장 수백명에 달하는 사외이사를 교체해야 한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코스피와 코스닥을 포함한 556개 기업은 718명에 달하는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 이들 대부분은 중견·중소기업으로 494개사가 615명의 뉴페이스를 찾는데 혈안이 된 모습이다.

상법에서 상장사는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어 교체를 차일피일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자산총액 2조원이 넘는 기업은 이사 총수의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역병 확산에 법령 개정까지 악재(樂才)가 겹친 기업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토론하는 최병규 교수(왼쪽)와 강래형 변호사
토론하는 최병규 교수(왼쪽)와 강래형 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해외 주요 국가의 기업정책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경제강국으로 꼽히는 선진국들이 사외이사 연임에 일률적 제한을 두지 않는 것과 달리 문재인 정부는 민간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행정적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위헌 논란까지 이어질 수 있다. 개정된 상법 시행령 제34조 제5항 제7호는 대법원이 판시한 예측 가능성 범위를 벗어나 모법(母法)을 위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외이사 연임 제한이 직업 선택의 자유, 법률유보원칙, 헌법에서 규정하는 경제질서를 해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시장경제신문과 자유경제포럼은 이러한 문제들이 기업환경에 미칠 파장을 살펴보기 위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정책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사외이사 연임 제한이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6일 열린 토론회에는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이효경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병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천재민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강래형 IBS법률사무소 변호사가 참석했다.

권재열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권재열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두서 없고 앞뒤 안 맞는 상법 시행령 개정"

사회 겸 발제를 맡은 권재열 교수가 먼저 마이크를 들었다.

권재열 교수는 "사외이사의 임기를 제한한다는 것은 주식회사의 최대 이해관계자인 주주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사외이사의 임기를 제한하는 것은 적법성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금융회사 사외이사의 임기제한을 법률단계에서 정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는 것이다.

특히 권재열 교수는 "재임 연한이 긴 것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회의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외이사의 재임 연한이 6년 혹은 9년이라고 해서 반드시 독립성을 훼손한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예단이며 이를 바탕으로 임기를 제한을 하는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올해 1월 개정된 상법 시행령은 두서가 없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권재열 교수는 국가의 법(法) 질서를 단계적 체계로 보는 법단계설(Stufentheorie des Rechts)을 인용하며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사외이사 연임 제한의 경우 자본시장법보다 하위 법규인 상법시행령을 통해 제도를 수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법단계설 시각에서 법률 위반의 소지가 농후하다"고 언급했다.

신현한 교수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기륭 기자
신현한 교수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기륭 기자

◆해외 저널 "사외이사 임기 길수록 성과 높아"

신현한 교수는 해외 유력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들을 제시하며 사외이사 임기 제한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Journal of Accounting and Economics', 'Journanl of Management', 'ORGANIZATION SCIENCE', 'International Journal of Disclosure and Governance', 'Research in International Business and Finance'

해외 선행 연구 결과는 사외이사의 재직 기간이 길수록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고 구술하고 있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보해 얻을 수 있는 사회 전체적 이익이 더욱 크다"는 문재인 정부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견해다.  

신현한 교수는 사외이사의 임기가 길수록 나타나는 긍정적인 효과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기업의 인수·투자 등 의사결정, 두 번째는 기업 최고경영자에 대한 회사 측의 보상 감독, 세 번째는 기업 전반의 경영성과 부문이다.

그는 "해외 저널에 따르면 사외이사의 재직 기간이 7년에서 18년 사이일 때 그 가치가 가장 높았으며 S&P 1,500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재직 기간이 긴 사외이사 비율이 높을수록 대표이사 성과·보상 연동이 잘됐고 주주와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데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신현한 교수의 해외 저널 분석은 5분여 동안 쉴틈 없이 계속됐다. 

"사외이사의 재직 기간이 길수록 특정 기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쌓인다. 사내이사 대비 정보 불균형 문제가 줄어 업무수행 능력이 좋아진다. 재직기간이 길수록 전문성이 쌓여서 경영진에 대한 감시·감독·평가와 함께 조언을 할 수 있다. 재직 기간의 순기능은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높을 때 더 잘 발휘된다."

금융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현한 교수는 "재직 기간이 길었던 사외이사가 있는 금융기관은 상대적으로 주가수익률이 높았으며 위험에 노출된 사례는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 주가수익률이나 영업성과도 사외이사 재직 기간이 긴 금융기관이 더욱 양호했다"고 강조했다.

이효경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이효경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이효경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관련 법령을 비교하며 "우리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상당히 기계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은 지난해 12월 회사법을 개정해 기업의 사외이사 선임을 의무화했지만 법률 어디에도 임기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고 역설했다.

이효경 교수에 따르면 일본의 기업지배구조 관련 제한은 법령이 아니라 자율규범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사외이사 제한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판 스튜어드쉽코드(SSC)와 기업지배구조코드(CGC)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대표적 자율규범이다. 이들 규범은 사외이사의 재임 상한선을 일률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다.

이효경 교수는 "우리와 같이 법령으로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하는 사례는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이크를 건네 받은 최병규 교수는 "일본처럼 독일도 법령에서 사외이사의 임기를 제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최병규 교수는 독일 상사법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러면서 "독일 역시 법령이 아닌 자율규범으로 사외이사 연임 관련 규정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천재민 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천재민 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母法 위임범위 일탈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

토론에 나선 변호사들은 상법 시행령 개정안의 위헌(違憲)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천재민 변호사는 상법 시행령 개정의 배경으로 사외이사 독립성 문제를 내세운 정부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그는 "사외이사 선임 방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사람을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독립성이 확보될 수 없다"고 했다. 상식적이면서도 실증적인 의견이었다. 기업들이 부랴부랴 신규 사외이사를 선임해도 최대주주·특수관계인·경영진에 의해 추천된 인사일텐데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르겠느냐는 것이다.

천재민 변호사는 사외이사 제도가 가진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며 "결국 정부가 연임을 제한하더라도 독립성 제고 효과는 없고 오히려 기업을 괴롭히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위헌과 관련해서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은 상위법 예측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에 무효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의 판례를 꺼내들었다.

"어느 시행령의 규정이 모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예측 가능성인 바, 이는 당해 시행령의 내용이 이미 모법에서 구체적으로 위임되어 있는 사항을 규정한 것으로서 누구라도 모법 자체로부터 그 위임된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속한 것이어야 함을 의미하고, 이러한 예측 가능성의 유무는 당해 특정 조항 하나만을 가지고 판단할 것은 아니고 법률의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하여 관련 법조항 전체를 유기적·체계적으로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3년 5월 23일 선고, 2013두1829 판결)

천재민 변호사는 "개정된 상법 시행령 제34조 제5항 제7호는 대법원이 판시한 예측가능성 범위 내에 속하지 않은 것으로서 모법의 위임 범위를 일탈했다"고 강조했다.

강래형 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강래형 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강래형 변호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개정안은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를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그 과정을 보면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다.

사외이사 임기 제한이 합헌이 되기 위해서는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필수적이지만 시행령은 이를 인정할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강래형 변호사는 "개정 시행령의 모법인 상법은 사외이사 결격 사유를 회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자 등으로만 규정하지만 개정안은 임기 제한까지 규정하고 있어 법률유보원칙 위배 소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질서 위배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우리 헌법은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는데 이는 사기업의 사적 자치를 유지해줘야 한다는 뜻으로, 사외이사 임기제한은 사기업의 주주권을 침해하고 불필요한 절차를 강요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끝으로 강래형 변호사는 사외이사 임기 제한에 대해 "외국에서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과잉규제이자 위헌적인 제도"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 무관객 온라인으로 시장경제신문 유튜브 채널에서 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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