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늪에 빠진 SK하이닉스... 중국통 최태원 '진퇴양난'
상태바
화웨이 늪에 빠진 SK하이닉스... 중국통 최태원 '진퇴양난'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06.12 1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적에서 중국 의존도 높은 SK하이닉스… 무역분쟁으로 '차이나 인사이드' 공든 탑 '위태'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에 '최대 고객' 화웨이 제재까지… 깊어지는 최태원 회장의 '고민'
최태원 SK 회장이 중국 장쑤성 우시에 위치한 SK하이닉스 D램 공장을 방문한 모습. 사진=SK하이닉스
최태원 SK 회장이 중국 장쑤성 우시에 위치한 SK하이닉스 D램 공장을 방문한 모습. 사진=SK하이닉스

미·중 무역분쟁으로 코너에 몰린 중국 정부가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의 대중 제재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무기로 내세우면서, 불똥이 우리 기업에까지 튀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SK하이닉스의 경우, 전체 매출액 중 절반에 가까운 비중이 중국에 몰려있어 발을 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대중 제재 요구를 묵살하기도 어려워 최태원 회장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당국이 최근 글로벌 IT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미국의 대중 제재에 협조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소집된 기업들은 마이크로소프트, 델, 암(ARM)을 비롯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포함됐다.  

이 자리에는 중국 국가개발개혁위원회와 상무부, 산업정보기술부 등 3개 부처 공무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 중국 거래금지 조치에 협조할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국 정부가 작성하고 있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기업 명단과 연계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앞서 자국 기업의 이익을 침해하는 외국 기업을 제재하는 명단을 만들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반면, 미국도 대중 제재 포위망 구축에 한국 기업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들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5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국내의 한 IT 관련 행사에서 “5G 장비는 보안 측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겨냥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화웨이는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에게 있어 포기하기 어려운 주요 매출처 중 하나로 꼽힌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 1·4분기 매출 6조 7700억원 중 47%에 해당하는 3조 1600억원을 중국에서 벌어들였다. 화웨이에 대한 의존도는 10~15%에 이를 정도다. 

따라서 SK하이닉스가 미국의 대중 제재전선에 동참할 시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SK하이닉스를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린다면, ‘사드 사태’와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며 중국 내 점유율을 빠르게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료사진)128GB 서버용 DDR4 모듈 ⓒSK하이닉스
(자료사진)128GB 서버용 DDR4 모듈 ⓒSK하이닉스

◆ SK하이닉스, 미국과 중국이라는 '고래'에 새우등 터지나

재계에서 ‘중국통’으로 유명한 최태원 SK 회장은 중국 정·재계와의 탄탄한 인맥을 바탕으로 중국 투자에 각별한 공을 들여왔다. 이는 최 회장의 ‘차이나 인사이드’ 경영 전략으로 요약된다. SK그룹 주요 핵심 계열사들은 중국에 속속 진출했고, 현지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도 이뤄졌다. 

여기에는 SK하이닉스 역시 포함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9500억원을 들여 중국 장쑤성 우시에 D램 확장 팹(C2F)을 준공했다. 이 공장은 기존 C2 공장과 비슷한 규모인 건축면적 5만8000㎡(길이 316m·폭 180m·높이 51m)의 단층 팹이다. 확장팹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우시 공장은 최대 월 18만장 규모의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D램 물량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점차 심화되고 있는 미·중 무역분쟁은 SK하이닉스를 난감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중국 당국이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 등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벌이고 있는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고래’ 사이에서 SK하이닉스라는 ‘새우’의 등이 터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올해 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D램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크게 추락하고 있는데다가,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인한 중국발(發) 반도체 수요 감소까지 예상되고 있는 것도 SK하이닉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장(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조심스럽게 접근하겠지만, 결국 미국이 요구하는 대중 제재에 직접적으로 동참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기업 입장에서 미국이 내세우는 명분만으로 중국 시장을 포기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박 소장은 이어 “일본에서 열리는 G20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이 만나더라도 별다른 소득은 없을 것”이라며 “무역분쟁 자체는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기술패권’ 만큼은 미국이 중국에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