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굳이 삼바 옆에 공장을?... '불편한 이웃' 롯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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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굳이 삼바 옆에 공장을?... '불편한 이웃' 롯바
  • 유경표, 최유진 기자
  • 승인 2023.06.2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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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빼가기'로 불거진 바이오 업계 '상도덕' 논란
롯데바이오, 송도 11공구에 3개 공장 건설 계획
삼성바이오 송도캠퍼스와 거리, 약 250~300m
업계 "불필요한 경쟁, 국가 경제적으로 도움 안 돼"
그림=고나백
그림=고나백

“큰 장사에는 마땅히 걸어야 할 상인의 도(道)가 있다. 이를 깨닫는 것은 저마다 절차탁마하기에 달렸다. 부닥치는 시비와 크고 작은 흥망성쇠는 상도에 따라 천변만화한다. 그 길을 올바로 파악하면 사업은 순조로울 것이고, 상도를 잃으면 그 사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조선 후기 거상 임상옥은 '큰 장사'의 도리를 '상도(商道)'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작은 장사, 큰 장사를 가리는 것은 '규모'가 아닌, 상인의 그릇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도'를 지키는 상인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더라도 점차 큰 사업으로 나아갈 것이고, 반대의 경우는 비록 오늘날의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작은 장사'를 하는 셈이지요.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갈등을 지켜보면, 아무리 무한경쟁 사회라고는 하지만 장사의 근본인 '상도'가 잊혀진 것만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삼성바이오의 핵심 인력을 롯데바이오가 빼내려 시도했다는 정황이 나오면서 두 기업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든 것인데요. 상생과 선의를 통한 경쟁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시장경제DB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시장경제DB

 

'인력유출' 놓고 삼성-롯데 갈등... 법적다툼 예고

삼성바이오는 국내 바이오시밀러 산업을 초창기부터 개척해 반석에 올린 명실상부한 퍼스트무버입니다. 2011년 첫 사업 진출 당시만 해도, 컨테이너 두 채로 시작했다고 하죠. 바이오시밀러 사업 특성상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탓에, 사활을 걸고 기술 확보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이재용 삼성 회장은 바이오 사업을 5대 신수종 사업에 포함시키고, 전사적 육성을 추진했습니다.  

10여년이 지난 현재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통해 쌓은 R&D 역량을 바탕으로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바이오 의약품 불모지로 불리던 한국이었지만, 멀리 내다보고 뿌린 씨앗이 결실을 맺은 것이죠. 2020년에는 연간 기준 매출 1조원을 넘겼고, 지난해에는 2년만에 그 두 배를 웃도는 3조원을 돌파했습니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중에선 처음 있는 일입니다. 

'승승장구'하는 삼성바이오를 보면서 롯데그룹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는지, 지난해 6월 롯데바이오가 출범합니다. 롯데가 삼성의 성공을 의식하고 자극받았다는 점은 이원직 현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의 영입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대표는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에서 근무하며 삼성바이오 출범을 같이한 '삼성맨' 출신입니다. 롯데는 40대에 불과한 그를 영입해 롯데바이오 대표이사로 세울 만큼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후발주자인 롯데바이오가 빠르게 안착하기 위해선 사업 초반 삼성바이오의 성공 DNA를 흡수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문제는 이후 롯데바이오가 삼성바이오의 인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롯데는 롯데바이오 설립을 앞둔 2021년말부터 바이오 경력직 영입에 나섭니다. 

가뜩이나 바이오 분야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어렵사리 키워 놓은 인재들을 빼가는 행위를 지켜만 볼 기업은 없겠죠. 지난해 삼성바이오는 롯데바이오로 이직한 3명에 대해 '영업비밀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으로부터 일부 인용 결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삼성바이오는 같은 해 8월 롯데바이오로 이직한 직원 4명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사건을 수사한 인천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손정현)는 이 중 3명에 대해선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지만, 나머지 1명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상 영업비밀누설·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기소된 직원은 삼성바이오를 퇴사하는 과정에서 회사 영업비밀로 분류된 품질보증 작업 표준서(SOP)와 IT 관련 문건들을 몰래 가지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불기소된 3명도 '몸'만 롯데바이오로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은 퇴사 전 삼성바이오에서 대량의 문서를 출력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참다 못한 삼성바이오는 올해 초 롯데바이오를 상대로 '인력 유인 활동을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증명을 3차례나 보내기에 이릅니다. 이는 향후 두 기업 간 법적 다툼까지 예고하는 대목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인천 송도 11공구 롯데바이오로직스 신규 공장 조감도(사진 오른쪽), 왼쪽은 기존 삼성바이오 공장시설. 사진=시장경제DB.
인천 송도 11공구 롯데바이오로직스 신규 공장 조감도(사진 오른쪽), 왼쪽은 기존 삼성바이오 공장시설. 사진=시장경제DB.

 

송도에 둥지 튼 롯데바이오... 삼성바이오와 '불편한 동거'

삼성바이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롯데바이오의 공장 입지 선정입니다. 삼성바이오와 동일하게 롯데바이오도 인천 송도를 공장부지로 낙점했습니다. 그런데 그 위치가 조금 묘합니다. 삼성바이오의 바로 앞마당에 줄줄이 사탕처럼 롯데바이오의 공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지요.

롯데바이오는 송도 경제자유구역청(IFEZ) 11-1 공구 부지를 최종 선정하고, 3조7000억 원의 대규모 투자를 쏟아부을 계획입니다. 11공구는 삼성바이오 5공장이 들어서는 부지입니다. 삼성바이오 6공장도 이 곳에 들어설 예정입니다.  

같은 11공구에 들어서는 두 회사의 공장간 거리는 채 300미터도 안 됩니다. 도로 하나를 마주보고 있는 정도여서, 사실상 '불편한 동거'나 다름없습니다. 삼성바이오 입장에서는 어제의 동료가 바로 옆 경쟁사로 출근하는 달갑지 않은 상황을 맞게 된 셈입니다.

업계에선 롯데바이오의 입지 선정을 두고 "바이오가 규제산업이다보니 영업 비밀 침해 가능성이 있다"면서 "공장 복잡성 등을 고려했을 때나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을 고려했을 때도 잃는게 많을 것으로 우려된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끼리 불필요한 경쟁을 이어간다면 국가경제에도 손해로 작용할 것이란 진단입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롯데바이오 공장부지는) 지리적인 측면에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전 영역에서 인력분쟁이 발생하는 만큼, 삼성이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상황이 변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종합하면, 롯데바이오의 등장이 삼성바이오에게 매우 성가신 일이 된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인력 유출에 영업기밀 유출 갈등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서는데, 공장까지 마주보고 있어야 하니까요.  

서두에 '상도' 얘기를 꺼냈습니다만, 롯데 창업주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큰 장사꾼'이라 할만 했습니다. 과거 중공업이나 자동차 사업을 해야 한다는 주변의 건의를 물리치며 '전공 분야 최고'를 고집했던 신격호 회장은 다음과 같은 어록을 남겼습니다. 

"잘하지도 못하는 분야에 빚을 얻어 사업을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미래 사업 계획을 강구해 신규 사업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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