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넘사벽' 세포라, 한국 시장 철수... "시장 적응 실패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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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넘사벽' 세포라, 한국 시장 철수... "시장 적응 실패 원인"
  • 최지흥 기자
  • 승인 2024.03.2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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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 직진출, 5년여 만에 철수 결정
백화점 중심 럭셔리 브랜드와 파워 게임 실패
올리브영 중심 로컬 매장과 가격 경쟁력 열세
국내 소비자 특수성 고려 마케팅 전략도 지적
글로벌 시장에서는 선전, 올해 매출 목표 29조
유럽의 넘사벽 뷰티 편집숍 세포라가 한국 진출 5년여 만에 철수를 결정하면서 국내 화장품 시장을 비롯해 아시아 시장의 특수성이 다시 한 번 수면 위에 오르고 있다. 사진=최지흥 기자
유럽의 넘사벽 뷰티 편집숍 세포라가 한국 진출 5년여 만에 철수를 결정하면서 국내 화장품 시장을 비롯해 아시아 시장의 특수성이 다시 한 번 수면 위에 오르고 있다. 사진=최지흥 기자

유럽 시장에서 이른바 '넘사벽'으로 불리는 뷰티 편집숍 세포라가 한국 진출 5년여 만에 철수를 결정했다. 국내 화장품 시장을 비롯해 아시아 시장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세포라는 19일 공식 SNS를 통해 5월 6일부터 단계적으로 온라인 몰, 모바일앱 스토어, 오프라인 매장 운영을 종료하며 철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9년 10월 서울 강남구 파르나스몰에 1호점을 오픈하며 한국 시장 공략을 선언했던 세포라는 본사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전폭적인 지원과 중심 상권의 대형 매장 오픈에도 불구, 한국 시장 공략에 실패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 화장품 업계는 전 세계적으로 소비심리를 크게 위축 시킨 코로나 상황과 함께 특수한 한국 및 아시아 시장과 소비자들에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세포라의 주요 취급 제품인 글로벌 브랜드의 럭셔리 화장품 대부분이 백화점과 면세점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주요 소비층 역시 온라인 보다는 백화점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백화점 중심의 다양한 기획전, 한정판 제품과 서비스 등과 비교할 때 로드숍인 세포라가 백화점 주요 고객층을 뺏어오기에 역부족이었다는 의견들도 나온다.

또한 국내 로컬 브랜드들 중심의 CJ올리브영 독주로 2030세대들의 세포라 유입이 많지 않고, 같은 가격대로 경쟁할 수 있는 브랜드가 적었던 것도 이유로 꼽힌다.

특히 유럽과 다른 아시아 시장의 특수성을 세포라가 적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중국에서도 고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 세포라와 글로벌 세포라의 매출만 비교해도 큰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국내에서 세포라 매출은 137억원으로 전년 대비 10% 가량 증가했지만 영업손실은 176억원으로 21%, 당기순손실은 202억원으로 36% 감소했다. 자본잠식에 대한 우려도 계속해 나온 상황이다. 중국 시장에서도 어려움을 격고 있다. 결국, 진입에 실패한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최대 시장인 중국과 한국 모두에서 고전한 셈이다.

반면 유럽을 중심으로 한 다른 시장에서는 계속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세포라의 전체 매출은 약 26조원로 전년대비 20% 급증했다. 수익도 약 2조 272억원로 76% 급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세포라는 29조를 매출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온라인에서도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화장품 매출은 백화점몰과 면세점을 제외하면 로컬 브랜드와 비교해 매출이 현저하게 적다”면서 “그 이유는 명품 화장품 주요 소비층은 직접 백화점에서 제품을 구매하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화장품 시장은 이미 고가와 저가, 연령별로 구매층이 확연하게 분리되면서 로드숍에서의 명품 판매가 확연한 가격 차이 없이는 힘든 상황”이라면서 “무엇보다 자체 PB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는 올리브영과 비교할 때 대중성에서도 세포라가 시장을 공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에서 화장품 사업을 하고 있는 유통업자는 더욱 냉정하게 분석했다. 그는 “유럽은 백화점 유통이 우리나라처럼 크게 발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명품 브랜드의 다양한 제품들이 세포라에 입점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유럽 세포라 매장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을 갖는 제품을 찾기 어렵다”면서 “세포라라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 홍보가 되는 유럽과 달리 국내 시장에서는 세포라의 인지도가 오랫동안 마케팅을 전개해 온 올리브영이나 다른 로드숍들과 비교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미 세포라의 한국 시장 진출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시도를 통해 검증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유럽과 다른 아시아 시장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업계에 따르면 CJ 등 다양한 대기업들이 오래전부터 계속해 세포라 유치를 추진한 바 있으며, 청량리 영플라자 지하에 시범 운영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수입사들의 강력한 파워를 통한 견제와 로컬 브랜드가 강세를 보이는 시장 특수성으로 세포라는 오랜 시간 한국 시장을 진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2019년 세포라의 한국 시장 직진출은 업계 전체가 관심을 가질 정도로 큰 기대를 모았기 때문에 이번 철수 결정에 아쉬움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국내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국내 화장품 시장은 시장이 고가와 저가로 극명하게 양분되면서 유명 럭셔리 브랜드의 파워는 더 써지고, 저가와 중가대는 올리브영 중심으로 시장이 성장하면서 중소기업들이 입점할 오프라인 유통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면서 “세포라가 진입 문턱을 낮추고 자체적으로 마케팅에 집중해 유연성을 가졌다면 국내 시장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유럽과 다른 아시아 시장의 특수성을 세포라가 적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중국에서도 고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최지흥 기자
유럽과 다른 아시아 시장의 특수성을 세포라가 적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중국에서도 고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최지흥 기자

한편 국내 화장품 업계는 때 아닌 눈치작전에 돌입했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강남을 비롯해 롯데월드타워점 등 세포라가 운영하는 대규모 오프라인 매장들의 입지가 나쁘지 않기 때문에 세포라 철수 후 해당 매장을 차지하기 위한 국내 화장품, 유통업계의 또 다른 경쟁이 예상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 상황의 완전 종식과 해외 관광객 유치가 한층 뜨거워지는 2024년 여름, 국내 화장품 업계와 유통업계의 세포라 매장 쟁탈전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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