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정의선의 레이싱 정복기... 모델 'N'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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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정의선의 레이싱 정복기... 모델 'N'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 한정우 인턴기자
  • 승인 2023.05.1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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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의 험난했던 모터스포츠 도전사
90년대 레이싱팀 출범... 주요 대회서 입상 실패
2003년 월드 랠리(WRC) 시즌 도중 참여 중단
2011년 정의선 회장 "모터스포츠 재도전" 선언
전담 법인, 전용 랠리카 제작... 랠리팀 재구성
19년 'WRC 챔피언' 등극... 세계 레이싱 새 역사
레이싱팀 운영 데이터 축적... 고성능 모델 'N' 개발 밑거름
사진=현대자동차 그룹
사진=현대자동차 그룹

[편집자주] 인간이 가진 속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수세기 동안 이어져왔다. 1860년 에티엔 르누아르가 내연기관을 발명한 이래, 자동차는 인간의 질주본능을 충족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자동차의 역사에서 포뮬러 원(F1), 르망24시, 월드랠리챔피언십(WRC), 투어링카레이스(TCR) 월드투어 등 레이싱 대회는 사람들의 본능을 넘어 완성차 브랜드의 경쟁력을 공인받은 중요한 관문으로 받아들여졌다.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와 수소차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현대차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차는 향후 20여년 안에 전동화를 완료, 내연기관 신차 출시를 중단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수소전기차와 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현대차지만 모터스포츠에 대한 투자와 관심은 여전히 각별하다. 현대차가 내연기관 중심의 모터스포츠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모습은 다소 의외이기도 하다.

모터스포츠에 대한 현대차의 유별난 애정을 이해하려면 회사의 브랜드 도전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현대차는 자사 브랜드 경쟁력을 널리 알리는데 있어 모터스포츠를 적극 활용했다. 1990년대까지 주변부에 머물러있던 현대차 브랜드가 글로벌 명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데 있어 모터스포츠는 결정적 기회를 제공했다. 

현대차는 레이싱 대회 출전을 통해 차량 품질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엔진 출력과 내구성, 제동력과 코너링 안정성 등 주요 지표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장경제는 현대차의 마케팅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레이싱 대회 출전 역사를 되집는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험난했던 현대의 모터스포츠 도전... '월드 랠리' 시즌 중 철수 아픔

“현대차 브랜드 위상을 높이기 위해 WRC를 비롯 국내외 모터스포츠에 대한 투자 강화를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이 201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오토쇼에서 모터스포츠 출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지 12년이 지났다. 

정 회장의 언급대로 이듬해 현대차는 파리모터쇼를 통해 '2014 WRC' 출전 사실을 공표했다. 독일 알체나우에 ‘현대자동차 모터스포츠 법인(HMSG)’을 설립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정 회장의 지시에 따라 회사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곧이어 모터스포츠 전담 부서와 ‘현대-쉘 월드랠리’ 팀을 구성하고, 고성능 ‘i20 WRC’ 랠리카도 제작했다. 

현대차의 모터스포츠 출전 역사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호주 레이싱팀은 경주차량으로 엘란트라(현 아반떼)를 사용했다. 이 차량으로 첫 출전부터 클래스 우승을 거머쥐었고, 현대차는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현대차는 WRC 진출로 목표를 올려잡았다. 영국 차량관리기업 모터스포츠디벨롭먼트(MSD), 호주 레이싱팀 등과 손잡고 자사 최초 모터스포츠팀을 만들었다. 현대차 모터스포츠팀은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WRC 무대에 올랐다. 2L WRC(WRC 2부리그) 클래스 4위, 아시아태평양랠리챔피언십(ARPC) 2L 우승 등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아쉽게도 현대 모터스포츠팀의 의미있는 행보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시아권에선 나름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WRC 주요 대회에서 중하위권을 맴돈 성적이 발목을 잡았다. 스폰서들도 슬슬 발을 뺐다. 회사 안팎에서 "WRC 보다 월드컵 마케팅이 효과적"이라는 여론이 힘을 얻으면서 현대 모터스포츠팀은 '2003 WRC' 시즌 중반 무대에서 사라졌다.
 

‘현대-쉘 월드랠리’ 팀, 재도전 첫해 4위... 19년 마침내 우승 

재도전 첫해인 2014년, 현대팀은 레이서 누빌과 소르도의 중도 탈락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독일 랠리 1, 2위를 독식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해 현대팀은 포드, 시트로엥, 폭스바겐 등을 제치고 '제조사 부문 4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제조사 순위는 대회 종합 성적이 높은 팀내 상위 2명의 점수를 합산해 정한다.

WRC 타이틀 제패를 목표로 한 현대차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 2015 시즌 i20 랠리카 샤시·엔진 강화, 제조사 3위 ▲ 2016 시즌 2세대 i20 랠리카 출전, 제조사 2위 ▲ 2017 시즌 2세대 i20 쿠페 랠리카 출전, 제조사 2위 ▲ 2018 시즌 제조사 2위 등을 기록한데 이어 2019년 ‘사상 최초’로 WRC 우승 타이틀을 손에 쥐었다.

그해 현대차는 총 13회 랠리 중 4회 우승, 13회 포디움(3위 내 입상)을 달성하며 종합 점수 380점으로 도요타(362점), 시트로엥(284점), 포드(218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듬해인 2020년에는 2연속 WRC 챔피언에 등극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회 규모가 7경기로 축소됐지만 1위 3회, 2위 4회 등 압도적 성적으로 제조사 부문 1위 자리를 지켰다.

WRC는 매년 1~11월 여러 대륙(아시아, 유럽, 오세아니아, 북미, 남미 등)의 다양한 국가에서 대회를 연다. '2023 WRC' 5라운드는 이달 11일부터(현지시간) 4일간 포르투갈에서 개최된다. 
 

WRC 참여 경험이 만들어낸 'N'... 양산차 성능 업그레이드 

사진=현대자동차 그룹
사진=현대자동차 그룹

현대차의 내연기관 개발 역사는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1976년 독자 엔진이 없던 시절, 최초 고유 모델 ‘포니’의 엔진과 변속기는 일본 기업 미쓰비시에서 공급받았다.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독자 엔진을 가져야 해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곤 했다.

정 회장의 비원은 1991년 ‘알파엔진’ 개발 성공으로 풀렸다.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주며 차량 엔진·변속기 등을 생산해 온 현대차는 이 시점부터 미쓰비시와의 격차를 조금씩 좁혀나갔다. 2004년에는 출력성능을 높인 세타엔진을 개발, 엔진 독립의 꿈을 실현했다. 

레이싱팀 운영을 통해 축적된 경험은 양산차의 성능을 한 차원 높이는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 현대차가 새롭게 제작한 i20 WRC 랠리카는 '2014 WRC'에서 준수한 성능을 인정받으며, 회사가 고성능 차량에 붙이는 ‘N’ 시리즈 탄생 배경이 됐다.

회사 남양연구소는 극한 상태의 서킷에서도 주행이 가능한 고성능 양산차 개발을 위한 연구팀을 꾸렸고, 기준을 통과한 모델에 이니셜 'N'을 부여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모터스포츠는 브랜드 홍보는 물론이고 양산차 기술 내재화 효과가 커 지속적 투자를 하고 있다”며 “회사의 기술적 수준과 위상 등 상당 부분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현대차는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기업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종합 순위 35위에 올랐다. 한화 약 22조 9398억원(173억 달러) 상당의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았다.

사진=현대자동차 그룹
사진=현대자동차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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