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맥주 한 잔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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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맥주 한 잔 하실래요?”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7.01.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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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수제 맥주전문점 ‘뉴타운’ 최원석 대표&맥주소믈리에

‘올드라스푸틴’은 ‘최순실 맥주’로도 불린다. 라스푸틴은 러시아 왕실을 유린한 괴승으로, 마지막 왕조였던 로마노프 시대를 파멸로 이끈 비선실세였다. 이런 점 때문에 최순실 맥주라는 별칭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맥주 소믈리에가 운영하는 '뉴타운'의 맥주는 여행지에 온 듯한 설레임을 선사한다. 사진=시장경제신문

서울 홍대에 위치한 수제 맥주전문점 ‘뉴타운’의 대표는 최원석(34)씨. 최 씨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월드라스푸틴’ 맥주를 찾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현재 뉴타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맥주이기도 하다. ‘순실이 주세요’라는 통칭이 더 익숙할 정도다.

라스푸틴은 기행과 물의로 역사에 악명을 떨쳤지만, 맥주 올드라스푸틴은 각종 맥주 대회에서 13번의 수상을 하며 명성을 얻었다. 

러시아 역사 이야기가 담겨 러시아산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실은 미국의 크래프트맥주 회사인 노스코스트브루잉컴퍼니가 제조한 임페리얼 스타우트(Imperial Stout) 계열의 맥주다.

에스프레소와 초콜릿 향미에 소박한 바닐라 향이 어우러진 게 라스푸틴만의 특징이다. 최 대표는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시원하게 목을 넘어갈 때 월드라스푸틴의 진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맥주전문점 사장이자 맥주 소믈리에다. 소믈리에답게 뉴타운에서는 20개의 생맥주와 30여종의 희귀한 맥주를 선보이고 있다.

뉴타운에서 두 번째로 인기 있는 맥주는 ‘가펠쾰쉬’다. 독일 쾰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맥주로 남녀 모두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이유가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여성들은 ‘잔’의 섹시함과 ‘색(色)’의 아름다움에 주문을 한단다. 잔의 이름은 ‘슈탕’이다. 남성들은 거칠지만 고급스러운 ‘소맥’의 맛에 가펠쾰쉬를 선호한다고.

최 대표는 “남녀 모두에게 인기 있기 때문에 수제 맥주를 입문할 때 추천하는 맥주”라고 설명했다.

최원석 대표는 회계사를 준비하다 장고 끝에 맥주 소믈리에의 길을 선택했다. 최 대표는 맛있는 맥주를 선보이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사진=시장경제신문

‘브루독’도 인기가 높다. 현재 영국에서 '핫'한 맥주로, 스코틀랜드산이다. 350~400ml의 한잔 가격은 1만원대로 일반 생맥주 보다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다. 50ml라는 적잖은 양 차이에 대해 최 소믈리에는 “맥주 헤드(거품)에 따라 양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브루독은 속칭 ‘또라이 맥주'로도 불린다. 브루독의 창업주 제임스 와트의 '튀는 행동'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와트는 브루독 마니아들과 함께 탱크를 타고 런던 시내를 활보했다. 기존 맥주업계를 부숴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작은 사이즈 맥주잔을 사용하게 해 달라고 '난장이 시위'도 했다.

이렇듯 기행에 가까운 행동에 대해 제임스 와트는 “돈을 벌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명감 때문이다”며 “맛있는 맥주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맥주에 대한 열정을 퍼트리는 게 나의 사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물넷 젊은 나이에 맥주를 만든 제임스 와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열정만큼은 최 소믈리에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 씨는 회계사를 준비해지만 안정적인 회계사의 길 대신 맥주 소믈리에를 선택했다. 맥주에 관심이 많기도 했거니와, 양질의 맥주를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꿈은 이후 그의 삶을 바꿨다. 

대기업만 맥주 사업을 할 수 있는 ‘맥주 규제’ 때문에 번번이 좌절도 했다. (과거 맥주 제조 시설기준이 매우 높아 대기업만이 맥주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랬던 것이 지난 2013년 맥주 규제가 완화되면서 수제 맥주를 만들고,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최 대표는 ‘세계의 맥주’를 파는데 그치지 않고 양조에도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현재 이름을 건 맥주를 양조 중입니다. 이르면 5월부터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 안에 버플리소믈리에(기존 소믈리에 보다 상위 등급의 자격)도 취득할 계획입니다.” 

최원석 대표는 '치맥'보다 각 맥주에 적합한 음식이 따로 있다고 설명한다. 사진=시장경제신문

맥주전문점의 역량 강화를 위해 ‘페어링’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페어링은 맥주와 곁들여 먹으면 어울리는 음식을 말한다. 가령 필스널 스타일의 맥주에는 후추를 얻은 크림치즈가, 스타우트 맥주 계열에는 초콜릿이 안주로 그만이다. 현재까지 다양한 맥주 페어링 개발이 진행 및 완료된 상태다.  

치킨에 길들여져 있는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한 번 맛을 보면 왜 ‘페어링’이라고 불리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최 대표는 잔 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맥주의 맛과 색깔에 따라 잔도 달라진다. 섹시하거나 거칠고 아기자기함 등에서 ‘보는 맛’도 맥주를 즐기는 큰 재미이기 때문이다. 맥주잔을 전용으로 씻는 기구와 닦는 모습에서는 깨끗한 ‘신뢰의 맛’을 한 번 더 보여준다.

최 대표는 뉴타운을 '관리 받는' 맥주전문점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뉴타운에 오면 손님들이 그냥 맥주가 아니라 관리 받는 맥주를 먹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싶어요. 세계의 여러 맥주를 마시면서 그 나라를 추억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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