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피해상인 위한 실질대책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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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피해상인 위한 실질대책 절실
  • 김양균 기자
  • 승인 2016.12.1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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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상인들, 유명무실 피해 보상책 개선 및 진상 조사 요구
대형 화재로 전쟁터처럼 폐허가 된 대구 서문시장. 열흘이 지났음에도 후속조치들이 미미해 상인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대구= 김양균 기자] “화재가 난 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달려와 이런 저런 약속 하고 갔지만, 당시 정치인들 대문짝만 하게 보도만 됐을 뿐 후속적으로 이뤄지는 조치들이 없어 상인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11일 서문시장 상인 A씨)  

지난달 30일 발생한 대형 화재로 인해 폐허로 변한 대구 서문시장 4지구 현장. 열흘이 지났지만 입주 상인들에 대한 보상책이 미비해 피해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화재 직후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차기 유력 대권후보들이 현장을 찾아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향후의 피해 보상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기자가 찾은 서문시장은 허탈감과 상실감으로 가득했다. 

이번 화재로 679개 점포가 전소돼 1000억 원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불이 난 4지구는 의류와 침구 등 불에 타기 쉬운 제품을 취급하는 상가가 밀집해 있어 피해가 더 컸다.  

이완복씨(64·가명)는 이번 화재로 전 재산을 잃었다. 이 씨는 상인들의 안전 불감증을 지적한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상인들이 ‘화재 트라우마’가 있었다”며 “애꿎은 상인들에게 책임을 돌린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평소 다림질도 조심할 정도로 상인들은 화재 예방이 몸에 배어 있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인도 기자에게 최근 “스프링클러와 전선도 새로 설치하는 등 화재 예방 노력이 철저했다”며 “만만한 게 우리 같은 서민들이 아닌가”라고 한탄했다. 

당초 경찰은 4지구의 CCTV를 전수 조사해 1층 상가 내부에서 불길이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관련 CCTV 영상도 공개됐다. 상인들은 이를 보도한 <MBC>뉴스에 분노하고 있었다. 발화지점에 따라 책임 소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예민한 문제를 경찰 발표만을 일방적으로 전해 여론을 몰아간 <MBC>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최초 발화 지점이 상가 외부의 노점상에서 시작됐고 불길이 맞은 편 화장품 매장으로 번졌다는 게 상인들의 주장이다. 사고 당시 폭발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한 상인은 기자를 최초 화재 장소라 추정되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는 “이곳(노점)만 폭격을 맞은 것 같다”며 “노점상의 프로판 가스통(LPG)이 폭발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기자가 만난 다수의 상인들은 노점상이 화재 위험에 취약했다고 입을 모았다. 노점에서 사용하는 LPG가스통 및 전열기구가 외부에 노출돼 있었지만, 지자체가 이를 사실상 묵인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중구청의 ‘보이지 않는 생색’이라며 비판하는 상인도 있었다. 노점상이 위험에 취약하다는 민원에도 지자체가 이른바 ‘표 관리’를 위해 모르는 체 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점에서 화재가 시작됐다면 이를 관리·감독해야하는 중구청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상가 안에서 화재가 시작됐다고 몰아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시장에 퍼져 있었다. 물론 이 같은 주장은 서문시장 4지구 피해상가 비상대책위의 입장과는 다르며 근거도 불명확하다. 그러나 경찰과 소방당국, 지자체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최초 목격자 4지구 경비원 수사는 왜 안 믿나”, “발화시간 지나고 신고한 1지구 경비원만 믿는가”, “목격자를 찾아주세요”, “중부경찰서장님께 호소 드립니다”. 이러한 내용의 현수막이 시장에 붙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4지구에서 대의원 의장을 지냈던 신희창(49)씨는 이 같은 상황을 보는 게 착잡하다. 신 씨도 화재로 전 재산을 잃었다. 그는 “상인들도 답답하니까 그런 것 아닌가”라며 “노점상들도 하루 벌어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지자체가 이들을 매몰차게 내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 똑같이 딱한 사정이라는 이야기다. 

대체상가 자리 잡는데 수 년 걸릴 듯

이성수(62·가명)씨는 4지구에서 이불과 한복 옷감을 팔았다. 불황이었지만 단골손님이 많았다. 매장도 서른 평 남짓. 그랬던 이 씨는 최근 1지구 2층 상가로 자리를 옮겼다. 

이씨는 “쫓겨 왔다”고 표현했다. 열흘전 1억 원 상당의 현물과 1000만원의 현금, 그리고 상가를 한순간에 잃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 평 반 크기의 점포를 볼 때마다 속이 탄다고 했다. 화재 이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첫 만남에서도 이 씨의 손에는 담배가 들려 있었다.  

운영하던 이불과 한복 가게를 잃은 이성수(62·가명)씨.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옷도 안 입고 달려왔다”는 이씨는 “점포가 불타는 걸 보고 기절할 뻔 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보상에 대해서 묻는 기자의 말에 이 씨는 한참 만에 “보상 같은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벌컥 화를 냈다. 

대구 소재 7개 기관 공동으로 운영하는 ‘화재피해자 통합지원센터’는 이 씨처럼 피해를 입은 상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됐다. 4인 기준 가구당 113만원의 생계지원비와 62만원 주거지원비, 연료비 9만2천원, 100만원 한도 재해구호기금 등이 지원될 예정이다.

기업은행은 피해 상인들의 대출 금리를 0.5퍼센트 낮추기로 했다. 미소금융도 2천만 원 이내의 대출을 해주겠다고 나섰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전기요금은 유예되며, 국민연금도 1년 동안 납부 예외 혜택을 주기로 했다. 대구 중구는 피해 상인들이 2년 안에 건축물과 차량의 재취득시 취득세 등을 면제해 준다는 내용의 세제혜택 지원 방안을 8일 발표했다. 

또한 지난 9일 서문시장 4지구 피해상가 비상대책위는 200여 미터 떨어진 상가건물 ‘베네시움’이 대체상가로 적합하다고 결론 내리고 이 같은 내용을 대구 중구청에 통보했다. 중구청은 현재 적합성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상인들 가운데는 이같은 대책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상인이 많다. 
4지구에서 대의원 의장을 지냈던 신희창(49)씨의 경우 최근 나오는 대책들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지난 2005년 2지구의 화재가 자꾸 연상돼서다. 

4지구에서 대의원 의장을 지냈던 신희창(49)는 피해 상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음은 신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

- 2지구 화재 당시에도 정부가 세제 지원 등을 해주지 않았습니까?
▷ 생활터전 뿐만 아니라 동산·부동산 전부 잃어버린 상태에서 재기하는 게 쉽지 않다. 방법이 없다. 대체상가로 옮겨가는 것도 생각처럼 간단한 게 아니다. 불타면 그대로 끝이다. 

- 피해상가가 679개, 피해액만 1000억 원에 달합니다만 모두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요?
▷ 4지구 상가 1층은 잡화, 2층은 한복, 3층에는 의류 매장이 몰려있었다. 불이 나면 끝장인 품목들이다. 새벽에 발생한 화재라 방법이 없었다. 돈만 잃은 게 아니다. 유무형의 피해가 막심하다. 충격을 받아 넋이 나간 사람도 적지 않다. 세입자 중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영세상인들의 수가 상당하다. 이들의 피해도 심각하다. 이들은 보상 명단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 기업은행과 미소금융 등도 이자율을 낮추고 추가 대출을 해준다고 합니다만.

▷ 가령 신용담보로 7000천만 원을 대출받았다 치자. 이자금리가 2.2% 정도다. 시일이 지나면 월 200만원을 갚아나가야 하는데, 그게 힘들다. 이자를 내기 위해 또 대출을 받고 돈을 빌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영세상인을 위한 대책이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 정작 신용보증기금 사용자들에게는 혜택이라고 볼 수 없다. 

- 4지구 상인들이 보험을 못 들어 피해가 막심하다는 건 사실인지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보험을 든 상가는 30퍼센트 남짓으로 추정된다. 물론 나머지는 보험을 들지 못한다. 나도 이곳에 옮겨온 후 화재보험부터 들려고 하니 거절당했다. 보험을 든 상가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보험사들은 정확한 피해 정도를 제출하라고 한다. 거래명세서나 영수증 등을 달라고 한다. 문제는 현금을 포함해 현물, 영수증이 불타 이를 증명할 자료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 노점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4지구 상인들이 노점상에 대한 반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점상이 없으면 시장이 활력을 잃는다. 그러면 장사에도 영향을 받는다. 노점상이 많아지면 화재 위험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전통시장의 딜레마다. 결국 공생의 문제인데 당장 상황이 안 좋으니 여러 말이 오가는 것 아니겠나. 

- 열흘 새 서문시장 점포 매물가가 올랐다는 게 사실입니까?
▷외부에서 보면 야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한정된 탓이다. 장사는 공백이 있으면 안 된다. 계속 굴러가야 한다. 대체상가를 비롯해 대안이 나오지 않으니까 4지구 상인들이 자리를 얻으려고 아우성이다. 소문에 따르면 화재가 난 순간부터 빈 가게가 없어지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수치상으로 딱 얼마가 올랐다고는 할 수 없다. 20~30% 올랐다는 말이 오간다.

- 현재로선 베네시움이 대체상가로 유력합니다만.
▷ 대체상가로의 이전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건물주와의 협상이 관건이다. 대체상가로 확정돼 이전이 이뤄져도 최소 2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내부 공사 등을 고려하면 설 대목에 개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장기적으로 대체상가는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 현재로선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 건물주와의 계약은 별개의 문제다. 만약 중구청이 건물 사용 계약을 한다 해도 입주하는 개별 점포와의 계약은 또 다른 문제다. 상인들의 사정이 딱해도 건물주가 입점 매장까지 전부 공짜로 내줄 리는 만무하다. 대체상가를 거쳐 불탄 4지구에 신축 상가가 들어서도 상인들 입장에서는 장사가 다시 과거처럼 될 거란 보장이 없다. 장사는 여러 요소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2지구만 해도 화재 이후 복구되는데 7년이 소요됐다. 

<현장 취재 후기> 
시장에서 머문 시간이 단 하루였음에도 두통과 기침, 재채기에 시달렸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서문시장에서 상인들은 마스크 한 장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기자가 만난 다수의 상인들은 “서문시장의 사정을 제대로 알려달라”고 하소연했다.

대책 마련과 동시에 화재 원인에 대한 진상 조사가 명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구청이 서문시장 화재 백서를 내기로 했다는 점이다. 재난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대책 마련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서문시장에서 잔치국수를 주문했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 뒤통수에 식당 주인인 최금숙(60·가명)씨와 마지막 말이 꽂혔다. 

“딴 거 없다. 장사만 할 수 있으면 된다.”  

불탄 4지구 상인들의 바램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들의 간절한 소망은 언제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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