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소진땐 없던 일로?... 기업 약올리는 '황당 리쇼어링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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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소진땐 없던 일로?... 기업 약올리는 '황당 리쇼어링 정책'
  • 최유진 기자, 한정우 기자
  • 승인 2023.08.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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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국내 유턴 외면'하는 진짜 이유는?
첫째, 지원 절차와 조건 지나치게 엄격
투자·고용계획 요구 획일적... 기업 부담 가중
둘째, 고율 법인세율... 해외, 앞다퉈 인하
한국 24%... 미국 21%, 베트남 20%, 헝가리 9%
셋째, 경직된 노동법제와 만연한 반기업 정서
"대기업 보조금 확대, 비판적 시각 존재"
현대모비스 지원 거절... '상시 고용 미충족'
LG화학 심의 중... "서산시 예산 지원 어려울 수도"
여수 산업단지 전경. 사진=연합뉴스
전남 여수산업단지 전경. 사진=연합뉴스.

[투자보조금 추가조건] 

*보조금 심의위원회 의결
*타당성 평가점수 60점 이상(투자사업장이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 등인 경우, 타당성 평가점수 50점 이상)
*지방자치단체-기업 간 투자협약(MOU 등 협약 이전 투자 소급 지원 불가)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예산, 기업의 신청상황에 따라 연 단위 예산이 조기 소진될 수 있습니다.

위 내용은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리쇼어링)를 장려하기 위한 정부 정책 중 지원 금액 규모가 가장 큰 ‘투자보조금’을 받기 위해 기업이 갖춰야 할 '추가조건'입니다.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 조건이 상당히 엄격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조건 충족 여부는 관할 기초 지자체-광역 지자체-중앙정부(산업자원부) 심의위원회 등 ‘3중 절차’를 거친 뒤 비로소 결정됩니다. 지원인지 규제인지 헷갈릴 정도로 절차가 까다롭습니다.

정부가 정한 투자보조금 '최대 한도'는 국비 기준 기업 당 600억원, 사업장별 300억원. 수도권은 각각 300억원, 150억원으로 감액됩니다. 문제는 이들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위 금액을 전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른바 ‘유턴 기업’이 받을 수 있는 투자보조금 '지원 비율'은 복귀 지역에 따라 11~44%로 제한돼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턴 기업이 선택하는 ‘일반지역’의 경우 투자보조금 지원 비율은 24%. 교통과 전력 등 인프라가 열악해 정부가 ‘산업 위기 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한 곳을 입지로 선택해도 최대 지원 비율은 44%입니다.

기가 막힌 것은 추가조건 마지막에 붙어 있는 ‘예산 조기 소진’ 안내 문구입니다. 
쉽게 말해 리쇼어링 예산 소진 가능성까지 따져서 복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진출 기업이 돌아오길 바란다는 것은 난센스나 다름 없습니다.

투조보조금과 함께 리쇼어링 지원책으로 자주 언급되는 ‘세제 지원’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법인세와 관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선 ▲(국내)사업을 개시한 날부터 4년 이내에 해외구조조정을 완료할 것 ▲해외사업장을 양도·폐쇄한 날부터 3년 이내에 (국내)사업장을 신·증설할 것 ▲복귀 전·후 영위 업종이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른 세분류 기준까지 동일할 것 등의 3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한국의 리쇼어링 정책 시행 성과는 미국과 독일,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대만과 비교해도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절차와 구비 조건이 이처럼 난해한데 어느 기업이 쉽게 복귀를 결정하겠습니까? 
 

尹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채택... '지원조건' 개선 안 돼 

현 정부가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리쇼어링)를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유턴 기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산업자원부와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등은 ‘기업 친화적’ 정책 수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기업 친화적’이라는 문구는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지원 내용은 전에 비해 대폭 개선됐지만, 기업이 충족해야 할 ‘조건’은 여전히 기업 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리쇼어링 정책의 최종 퍼즐은 경제적 파급효과가 상대적으로 큰 '대기업의 유턴'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재계와 산업계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정부가 관련 정책 손질에 적극 나서고 있음에도 현장 반응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근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리쇼어링 지원 절차와 과정이 현장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 경영을 힘들게 하는 경직된 노동법제입니다.

@그림 고나백 gonnaback73@gmail.com
@그림 고나백 gonnaback73@gmail.com

 

겉도는 리쇼어링 정책... '기업 적대적' 환경 여전 

2019년 리쇼어링 기업으로 선정된 현대모비스는 정부와 MOU(업무협약)를 맺고, 중국 부품공장 2곳의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이어 회사는 울산 이화산업단지에 새 공장을 건설했습니다. 약 100억원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산업자원부 심사에서 인센티브 지원이 거절됐습니다. '상시고용 20인 이상'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LG화학은 해외에 설립 예정이었던 플라스틱 바이오 공장을 충남 서산에 신설키로 하고, 지난해 리쇼어링기업으로 지정됐습니다. 내용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의 리쇼어링 인센티브 심사는 아직 진행 중인 상황으로 알고 있다"며 "서산시 예산 책정에 따라 지원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귀띔했습니다.

'해외진출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2013년 이후 리쇼어링기업으로 지정된 대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약 10년 간 대기업 복귀 사례가 이처럼 드문 사실은 국내 리쇼어링 정책이 현장과 겉돌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것입니다. 

중소기업의 경우 상황은 더 암울합니다. 2012년 '국내 1호' 리쇼어링기업으로 선정된 파워이앤지는 매출 500억원의 크레인 부품 제조기업이었으나, 국내 복귀 7년만인 2019년 폐업했습니다.

이 회사는 복귀 당시만 해도 정부의 원스톱 정책 지원을 기대했습니다. 공장건설과 예산집행도 정부 정책 지원을 염두에 두고 계획했으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회사는 복귀 시 약정한 투자 및 고용조건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국내외 경영환경은 급변하는데 지원의 전제가 된 투자·고융조건은 예외를 허용치 않았습니다. 정부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현금유동성이 악화된 회사는 공장 문을 닫았습니다.

에어컴프레셔 제조 기업 거성콤프레샤는 2015년 국내로 돌아왔으나 6년만에 공장이 경매로 넘어가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복잡한 신청 문서 작성에만 꼬박 6개월이 소요됐지만 회사는 정부가 요구한 추가 서류를 신청 기한 내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이 회사 전 대표는 '일용직 신분'으로 공사장을 떠돌고 있습니다.  

국내로 돌아온 기업들이 가장 먼저 손에 꼽는 정책 애로사항은 복잡한 절차와 촉박한 시한입니다. 유턴 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선 정해진 기간 안에 구체적인 투자·고용계획을 이행해야 합니다. 앞서 사례와 같이 서류 제출도 기간이 특정돼 있습니다. 기업이 그 기한을 하루라도 넘기면 지원은 무산됩니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에 따른 원부자재 납기 지연, 은행권의 대출 조건 변경, 화물연대 파업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기한을 지키지 못한 경우도 불이익은 당해 기업이 떠안아야 합니다.

정부는 '기업 친화'를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행정 편의'가 우선합니다. 경직된 절차와 지원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리쇼어링 정책 활성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리쇼어링 줄 잇는 해외... 문턱 높은 한국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직국은 리쇼어링을 통해 침체된 내수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보조금과 금융지원 규모는 한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고 조건도 유턴 기업에 유리하도록 설계됐습니다. 유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원부자재를 해외서 사들이는 경우,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추진 중입니다. 미국의 포드, GM, 일본의 샤프, 캐논, 파나소닉, 소니 등이 본국행을 결정했습니다.  

대만은 더 적극적입니다. 2년간 임대료 100% 면제·추가 2년간 40% 감면, 소득세율 17% 인하, 연구개발 투자 15% 세금 공제 등 '기업 친화적' 혜택을 마련했습니다. 2009년에는 '유턴 투자 금의환향계획'을 수립, 홍콩과 대만증시의 상호 상장을 허가했습니다. 2012년부터는 유턴 기업에 한해 외국인노동자 고용 비율 최대 40% 허용, 5년간 외국인노동자 고용세 면제 등 '노동 친화' 정책을 시행 중입니다. 자연미, 왕왕, 한종정기 등 대만 대표기업들이 리턴을 선택했습니다.

한국 정부도 세제 혜택과 투자보조금 지원에 방점이 찍힌 유턴 기업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다만 앞서 본 것처럼 그 절차와 요건 문턱이 높아 기업의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국내 복귀를 꺼리는 이유는 더 있습니다. 높은 법인세율과 경직된 노동법제가 그것입니다. 올해 기준 국내 영리법인에 적용되는 법인세율은 최대 24%입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해 기준 해외직접투자(FDI)를 통해 신규 설립된 한국 해외법인이 미국과 베트남에 집중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2017년 12월, 기업 리쇼어링 활성화를 위해 연방 법인세 최고세율을 35%(다단계 누진세율 15∼35%)에서 21%(단일세율·2018년부터 영구 적용)로 인하했습니다. 베트남의 법인세율도 20%로 기업의 조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헝가리는 최근 경제활성화를 목적으로 법인세율을 9%까지 낮췄습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 A는 "국내 시장은 협소한데 반해 대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법인세가 높은 편"이라며 "배터리 업계는 고객사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이 사업에 유리하기 때문에 (법인세 감면 외에) 물류비, 인건비 부담을 메울 수 있는 혜택 제시가 있다면 리턴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반기업 정서, 노동 규제 개선 절실

한국의 노동법제와 특유의 반기업 정서는 재계 관계자와 기업 임직원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리쇼어링 장애 요소입니다. 

경제단체 팀장급 직원 B는 "외국의 경우 보조금과 지원책을 대폭 마련 중이지만 국내는 대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에 부정적인 여론이 있다"며 "국내 리쇼어링 기업이 미국, 일본 대비 적은 이유는 노조문화, 노동친화적 정책, 근로시간 문제 등의 영향"이라고 했습니다.

기업 관계자 C는 "우리나라는 정부가 보조금 등 혜택을 늘리려고 해도 대기업 지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며 "리턴 기업이 인건비 등을 지원받는다면 국내에 있던 경쟁사 노동자들이 크게 반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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