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한국은 유턴 기업 무덤"... 리쇼어링 막는 '노답 3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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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한국은 유턴 기업 무덤"... 리쇼어링 막는 '노답 3형제'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3.08.08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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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쇼어링 실태 분석] 열에 아홉 국내 유턴 "NO"
해외 진출 한국 기업들, 국내 복귀 부정적
10년간 유턴 기업 126개 불과... 美·日과 대조
미국, 일본, 대만 등 리쇼어링 활발... 경제 선순환
유턴 기업 보조금 지원, 세제 등 혜택 파격적
"고율 세금, 反기업 정서, 강성노조... 개선돼야"
@그림 고나백 gonnaback73@gmail.com

미국과 독일 등 서방 주요 선진국은 물론이고 일본, 대만 등이 경기 불황 해법 중 하나로 자국 기업의 국내 유턴(리쇼어링)을 장려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한국 기업은 리쇼어링을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범정부 차원의 정책적 배려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뜻하는 '리쇼어링'은 기본적으로 외국자본의 국내 투자와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자연스레 설비 투자 확대와 고용 창출,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을 기대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리쇼어링은 원가를 낮추는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해외 진출을 접고 국내로 돌아온 리쇼어링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막대한 보조금 혜택과 부지 및 세제 지원 등을 앞세워 자국 대표 기업의 국내 복귀를 돕고 있다.  

반면 눈길을 국내로 돌리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국내 복귀를 결정한 기업 자체가 손에 꼽을 만큼 적은데다가 리쇼어링을 적극 검토 중인 기업도 소수에 불과하다. 

중국과 동남아 각지에 생산시설을 구축한 국내 기업 가운데는 생산시설 이전이나 매각을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지 인건비 상승과 물류비용 증가, 공급망 불안 등 악재가 겹치면서 경영 여건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중 국내 복귀를 그 해법으로 생각하는 곳은 드물다. 

한국은 2013년 12월부터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무엇보다 지원을 위한 전제 조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조에 광범위한 파업권을 보장한 현행 노동법제의 경직성,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반기업 정서, 정부의 규제 중심 경제정책 등도 우리 기업이 국내 복귀를 꺼리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도... 한국 기업들 "돌아갈 생각 없다"

‘리쇼어링’이 경제계 주요 화두로 떠오른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자리한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이다. 1990년대를 전후해 상당수 국내외 기업이 자국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다. 이른바 ‘글로벌 밸류체인(GVC)’의 등장이다. 제품 설계, 원재료 조달, 생산, 유통·판매 등에서 '국가 간 분업화'가 이뤄진 것이다.  

글로벌 벨류체인은 최근들어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인건비를 비롯한 셍산비용의 증가이다. 글로벌 제조 기업들은 대부분 생산거점으로 동남아나 남미의 개발도상국가를 선택했다. 교통, 에너지, 통신 등 산업 인프라는 취약하지만 무엇보다 저렴한 생산비용이 선택의 주된 이유였다. 문제는 이들 국가의 인건비가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때맞춰 주요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국내 복귀를 지원하는 입법에 나서면서 해외 생산시설 운영에 대한 기업들의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국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오프쇼어링과 달리, ‘리쇼어링’은 정책적 성격이 짙다. 생산설비를 이전하려면 대규모 자금 지출이 불가피하다. 기업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유인책’은 필수적이다. 

미국은 2009년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파격적인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 재미를 톡톡히 봤다. 지난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리쇼어링 기업은 2010년 95개에서 2020년 들어 1484개로 급증했다. 지난 10년간 창출된 고용 증대 효과만 160만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110대 국정과제로 ‘리쇼어링’을 선정하고, 세제지원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법인세 감면 기간을 현행 7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현 정부가 리쇼어링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선정한 사실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지만 한계 역시 뚜렷하다.  

지난해 9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해외 진출 기업 306개사를 대상으로 '리쇼어링 촉진을 위한 과제 조사'를 실시한 결과, 10개사 중 무려 9개사가 국내 복귀를 희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줬다.

응답기업의 93.5%는 리쇼어링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국내 복귀 의사가 있었던 기업은 3.6%에 불과했다. 리쇼어링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설문에서 기업들이 첫 순위로 꼽은 것은 ‘노동규제(29.4%)’였다.

지난해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나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일부 개정 법률안) 등은 기업의 리쇼어링을 가로막는 대표적 노동규제로 언급된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장 인명사고 책임 범위를 기업총수와 최고경영자까지 확대했다. 노란봉투법은 노조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기업들은 리쇼어링을 꺼리는 이유로 노동규제 외에도 ▲법인세 등 세제(24.5%) ▲환경규제(16.7%) ▲수도권 등 입지규제(13.1%)를 지목했다. 법인세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 재임시절인 2018년, 최고세율(지방세 포함)을 27.5%로 인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국가 중 9번째로 세율이 높다. OECD 평균은 23.2%이다. 

사진=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홈페이지 캡처
사진=금속노조 비정규직지회 홈페이지 캡처

 

리쇼어링 가로막는 '노답 3형제'... 높은 세금·反기업 규제·강성노조

지난달 정부는 ‘2023년 세법개정안’ 실무 당정협의회를 열고, 국내 복귀 기업에 대한 소득세·법인세 감면 혜택을 확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세법 개정안은 국내 복귀 기업의 소득이 발생하는 과세연도부터 총 7년이었던 기존 소득·법인세 감면 기간을 10년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 바람과 달리, 리쇼어링 정책 성과는 신통치 않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2년 해외진출기업 국내 복귀 동향’을 보면, 지난 10년간 리쇼어링 제도를 통해 국내에 복귀한 기업은 총 126곳에 불과했다.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미국은 2010~2020년 6676개의 기업이, 일본은 2006~2018년 7633개 기업이 각각 복귀했다. 국가경제규모가 한국의 절반 수준인 대만도 2010년에서 2015년까지 5년간 364개 기업이 본국행을 택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리쇼어링 활성화를 위한 대안으로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 확보를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기업의 성장에 있어 여러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환경으로, 리쇼어링을 하더라도 세금 및 지원 정책 등이 언제 다시 바뀔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높은 인건비와 강성노조 문제도 리쇼어링을 가로막는 중대한 요소 중 하나."

최 교수는 "리쇼어링은 기본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지원정책은 구색 맞추기식으로 인색한 면이 없지 않다"며 "다른 국가들은 파격적인 지원 정책을 펴고 있는데, 가령 아일랜드의 법인세는 12.5%로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고, EU 등 큰 시장도 개방돼 있는 등 높은 메리트를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적은 세금 혜택과 경직된 노동시장 등이 기업의 리쇼어링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노사문제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정책적 도움을 주고, 규제도 대폭 풀어야 한다"고 했다. 

권 교수는 "리쇼어링 기업은 한번 돌아오면 다시 나가기 어려운데, 우리나라의 법인세 감면 혜택은 일정 기간만 유효하고 상속세는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다른 나라에 비해 법인세와 상속세를 대폭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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