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T 도입' 너무 빨랐나... 反OECD 득세에 삼성·현대차 등 초긴장
상태바
'GMT 도입' 너무 빨랐나... 反OECD 득세에 삼성·현대차 등 초긴장
  • 최종희
  • 승인 2024.01.25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경pick] '글로벌 세금 大戰' 판세 분석과 전망
'다국적 기업 과세 기준', UN vs OECD 대립각
OECD '글로벌 최저한세'(GMT) 도입국 21곳
UN 중심 '디지털서비스세'(DST) 도입국 29곳
정부, OECD 진영 합류... "섣부른 결정" 비판
시나리오별 대응책 고심... '민관 원팀'으로 해법 모색해야
사진=미국 워싱턴의 정책연구소인 초당정책센터(Bipartisan Policy Center)가 지난해 말 발표한 디지털서비스세 도입국 현황 지도.
사진=미국 워싱턴의 정책연구소인 초당정책센터(Bipartisan Policy Center)가 지난해 말 발표한 디지털서비스세 도입국 현황 지도.

글로벌 다국적기업을 겨냥한 나라별 세수 확보 전쟁이 혼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국제 조세 개편에 칼자루를 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국제연합(UN)을 중심으로 한 ‘반(反) OECD’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지지 국가 수로 보면, 이미 '反 OECD' 진영의 세가 더 커졌다.

변화하는 판세를 예의주시하며 예상 시나리오별 대응책 마련이 중요해진 셈이다.

 

‘디지털서비스세(DST)’ 진영 세 불리기…OECD 추월

23일 본지 취재 결과, UN이 주도하는 DST 도입국 수가, OECD의 ‘글로벌 최저한세(GMT)’ 도입국 수를 1.5배 가량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기준 DST 도입국 수는 29곳이다. 자국법을 개정해 DST를 입법화한 나라들이다.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을 비롯해 베트남, 대만,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대거 포함됐다. 인도와 멕시코,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케냐 등도 이름을 올렸다. DTS 도입을 검토 중인 캐나다와 덴마크, 브라질 등이 합류할 경우, 도입국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반면 GMT를 자국법에 받아들인 나라 수는 21곳이다. 독일, 벨기에, 핀란드, 스웨덴,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과 한국, 일본이 속해 있다.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헝가리, 베트남 등 5개 나라는 DST와 GMT를 동시에 도입하며, 양쪽 진영 모두에 등록돼 있다.

이 같은 결과가 얼마 만큼의 파급효과를 거둘지 관심이 모아진다. OECD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OECD가 추진하는 국제 조세 개편 작업은 두 가지 축으로 이뤄졌다. GMT와 '디지털세'이다. 하지만 지지세 확장에 애를 먹고 있다. OECD 전선에 헤게모니를 쥔 미국조차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혀 자국 내 법안 통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DST 도입국 수가 계속 늘어난다면, 주도권이 DST 진영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충분하다.

G7 재무장관. 사진=AFP/연합뉴스
G7 재무장관. 사진=AFP/연합뉴스

 

글로벌 세금 전쟁 예상 시나리오 네 가지

결국 변화하는 판세에 따른 대응책 마련이 중요해졌다. 예상 시나리오는 크게 네 가지다.

먼저 OECD 뜻대로 GMT와 디지털세가 새 국제 조세 제도로 안착하는 것이다.

GMT는 직전 4개 사업연도 중 2개 연도 이상의 연결재무제표상 매출이 7억500만 유로 이상인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 어느 나라에 법인을 세우든 최소 15%의 세율을 적용,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실효세율이 8%일 경우, 15%에 미치지 못하는 7% 상당 세금을 추가로 계산해 해당 법인의 모회사가 속한 국가가 걷어가는 식이다. 실효세율은 납세자의 실제 부담세율을 말한다. 세액공제나 각종 감면 혜택을 많이 받을수록 법인세율보다 실효세율이 낮아진다.

디지털세는 실제 소득이 발생한 지역의 국가가 과세권을 갖는다는 점에서 DST 논리와 동일하다. 다만 세금 계산 방식이 다르다. DST가 부가가치세처럼 다국적기업의 현지 매출에 일정 세율을 곱해 세액을 산정한다면, 디지털세는 연결재무제표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법인세와 유사하다.

OECD 바람이 현실화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동안 OECD 논의를 주도한 미국조차 법안 통과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동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사진=글로벌 컨설팅기업 PwC가 지난해 말 발표한 최저한세 도입국 현황 지도.
사진=글로벌 컨설팅기업 PwC가 지난해 말 발표한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국 현황 지도.

실무적 어려움도 있다. 세금 계산 방식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지적이다. GMT만 놓고 봐도, 실효세율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수많은 공제항목과 법인의 유보 소득 등을 나라별 세법에 맞춰 세무조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OECD 논의 초기 단계부터 이러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UN이 DST 카드를 꺼내든 빌미가 되기도 했다.

형평성 논란도 거세다. 투자·연금펀드, 화물·운송업, 부동산업 등 일부 업종이 뚜렷한 명분 없이 GMT 적용 범위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회계업계 일각에서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지금처럼 DST와 GMT가 공존한 채로 유지될 수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다. 문제는 이중과세다. 같은 세목을 두고 GMT와 DST를 차례로 과세하는 방식이어서 이중과세 문제를 피하긴 어렵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DST가 대세로 자리잡는 것이다. 단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OECD의 국제 조세 개편 작업이 지금처럼 계속 지지부진한 가운데, DST 진영의 세가 지속 불어나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국가별 단독 과세를 금지하는 OECD 원칙과 기존 합의들이 무색해질 수 있다.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이미 도입국 수 기준으로 DST가 GMT를 넘어섰다.

나라별로 디지털기업에 대한 과세방안을 각자 수립하는, 이른바 각자도생의 시대가 펼쳐질 수도 있다. 국가 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끝내 좁혀지지 않는다면 개별 국가가 자국 상황에 맞는 디지털세를 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 보호·세수 확보’ 민관 원팀으로 돌파

우리나라는 이미 GMT 열차에 탑승했다. 삼성과 SK, 현대자동차, LG 등 국내 대기업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GMT 때문에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 해외 현지법인에서 받은 세제 혜택 등도 모두 사라질 위기다. 우리 기업에 미치는 정확한 영향은 올해 재무제표가 확정되는 내년 상반기쯤 나올 전망이다.

GMT를 도입하지 않은 중국 등과 보복관세와 같은 국가 간 분쟁이 생길 여지도 있다.

열차 탑승 시기가 지나치게 빨랐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GMT 도입 논의를 주도하는 미국조차 자국 기업 보호와 세수 확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유불리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섣부른 결정이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납세 당사자인 기업들 의견이 배제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 2020년 초 국제 조세 개편 관련 OECD 합의안 윤곽이 나오기 직전까지 해당 논의를 정부가 이끌었다. 대응 전반이 미숙했다는 평가다.

합의안 도출을 위한 논의가 한참 무르익던 2019년 말에는 디지털세 납부 대상에 제조업을 포함시키는 내용의 OECD와 G20 회원국 간 협의체(IF) 회의가 열렸는데, 당시 누구도 우리 정부와 기업 입장을 설명하지 않았다. 반도체, 배터리를 비롯한 제조업 중심 국가로서, 해당 합의안 통과 시 직격탄을 맞을 상황이 분명함에도 입을 닫은 것이다.

국제조사 분야 한 전문가는 “GMT, DST, 디지털세 중 어느 제도가 살아남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민관 원팀으로 변화하는 상황을 예의 주시, 우리나라와 기업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저세율 국가로부터 장기 면세 혜택을 받고 진출한 기업 등의 피해가 예상되다 보니, 우리 정부가 이들 국가, 지방정부와 관련 협의를 벌이는 것으로 안다”며 “국제 동향에 맞춰 대응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는 "GMT 시행으로 법인세 감면을 받던 해외 일부 국가에서 추가 세액 납부가 예상된다"며 "관련 부서에서 여러 시나리오에 따른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