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리망의(見利忘義)' 당국, 은행은 눈치만 봤다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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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리망의(見利忘義)' 당국, 은행은 눈치만 봤다 [기자수첩]
  • 정우교 기자
  • 승인 2023.12.30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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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뽑은 사자성어 "나라가 각자도생 싸움판"
정부, 고금리 생각않고 은행 호실적에 '눈흘김'
"'삼성전자 혁신' 요구가 아니라, 업계 환경 '조망'해야"
21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권 민생금융지원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조용병 전국은행연합회장, 김주현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20여 개 은행장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1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권 민생금융지원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조용병 전국은행연합회장, 김주현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20여 개 은행장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견리망의(見利忘義)'라고 한다. '이익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라는 뜻인데 눈앞의 이득만 좇다가 자신이 처한 상황, 위험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를 추천한 어느 교수는 "나라 전체가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며 현 세태를 꼬집기도 했다. 

이 교수는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만 생각하는 정치인, 분양사기, 전세사기를 예로 들었다. 수 년째 은행을 출입해온 입장에선 '은행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견리망의 현상의 하나로 꼽고 싶다. 은행이 낸 호실적의 원인에 주목하는게 아니라 '과실'의 가치에만 몰두하는 정부, 금융당국의 시각말이다. 

은행이 실적을 많이 낸 이유는 금리가 높아서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물가는 어느새 천정부지로 뛰었다.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고 유동성을 관리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3.50%까지 올리자 대출금리도 덩달아 뛰었다. 

금리가 높아진 상황에서 목돈이 필요한 고객 수요까지 겹치면서 은행은 호황을 누리게 됐다. 그러나 관심은 고물가, 경제 위기가 아니라 은행이 분기마다 낸 이익에 쏠렸다.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비판은 지난해 '이자장사'에 이어 업계를 또 흔들었다. 

여기에 금융당국 수장들의 발언과 행보가 부각되면서 어느새 은행은 서민의 고혈을 짜내는 집단이 돼 있었다. 대출금리가 뛴 배경을 살펴보지 않고 결과값(실적)으로만 논하니, 업계 이미지만 나빠진 꼴이다. 최근 은행들의 상생금융안 발표는 마치 밀린 숙제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은행을 둘러 싼 횡재세 논의도 견리망의 현상 중 하나라고 본다. 횡재세는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이익을 낸 회사에게 매기는 세금인데, 은행이 고금리로 막대한 이자수익을 거뒀으니 그 초과분은 환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이와 관련한 법안(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금융사들은 호황에도 사회공헌이 부족했다"는 진단과 함께 "과거 5년간 평균 순이자수익 대비 120%를 초과하는 순이자수익을 얻을 경우 해당 초과이익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상생금융 기여금'을 부과·징수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횡재세가 상생금융 기여금으로 이름이 바뀐 건데, 호실적에 꽂힌 금융당국의 시각을 견제하고 비판해야 할 야당마저도 고실적의 원인을 찾는게 아니라 세수(稅收)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법안의 통과 가능성이 낮아보이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취임사에서 BTS같은 금융사가 나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금융시장의 선진화를 우선으로 두겠다고도 했다. 모두 규제를 혁신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은행의 이익에 대해 이렇게나 눈을 흘긴다면 누가 BTS가 되겠다고 나서겠는가. 

은행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산업 중 하나다. '돈'이 오가기 때문에 어느 산업보다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왜 삼성전자만큼 혁신하지 못했냐고 다그칠게 아니라 은행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가계와 기업으로 돈이 흐르고 있는 거시적인 환경을 조망하는데도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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