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형문화재에 샤넬 입점?... 신세계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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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유형문화재에 샤넬 입점?... 신세계의 고민
  • 이준영 기자
  • 승인 2023.02.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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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제일은행 본점, 유형문화재 71호 지정
상업사박물관 연다더니, 다시 명품 매장 선회
공사중인 옛 SC제일은행 본점 전경. 사진= 시장경제신문DB
공사중인 옛 SC제일은행 본점 전경. 사진= 시장경제신문DB

신세계백화점이 2015년 매입한 옛 SC제일은행 본점 건물을 샤넬의 'VIC(Very Important Customer, 최고 중요 고객)'전용 건물로 리모델링 중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최근 명품이 백화점의 실적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한 만큼 명품의 중요성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 유산에 해외 명품 브랜드를 구축할 필요성이 있는지 시민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신세계가 매입한 제일은행 본점 건물은 1935년 준공 이후 서울시 유형문화재 71호로 지정됐다.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네오바로크 양식 건물로 일본인 건축가 히라바야시 긴코(平林金吾)가 설계했다. 국내 건물 중 최초로 국제 현상설계를 거쳤고, 철골·철근 구조를 사용한 첫 은행 건물이라는 점에서 건축사적 의미도 크다. 역사성도 중요하지만 서울시 내에 보존된 몇 안되는 근대 건물이란 점에서 가치가 적지 않다.

신세계는 2018년 용도 변경을 추진해 2020년 업무시설에서 판매시설로 승인받았다. 2019년부터 내부 공사를 진행했고, 지난해부터 외관 공사를 진행 중이다.

신세계가 제일은행 본점 건물에 명품을 들이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매입 이후 명품관으로 활용하고, 건물 앞 분수 광장을 대대적으로 손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맞은편 한국은행 본관(사적 제280호)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분수가 지닌 문화재 의미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자 계획 자체를 백지화했다. 

신세계는 이후 2019년 한때 상업사 박물관 개장을 검토 중이라고 공개하며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근대 상업의 중심지인 제일은행 자리에 상업사박물관을 개장한다면 역사적 의미가 깊을 것이다. 인근에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도 위치해 '금융·상업 박물관' 벨트를 형성한다는 기대감도 컸다. 

신세계의 명품브랜드 입점 추진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또다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더군다나 입점할 것으로 알려진 샤넬 VIC 매장은 VIP중에서도 1%를 위한 곳이다. 즉, 일반인들은 물론 VIP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매장이다. 샤넬 매장이 형성되면 우리 문화재 건물에 극소수의 사람만 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신세계가 매입한 건물이고, 용도변경도 완료된 상황에서 샤넬 입점이 무슨 문제가 되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요구되는 시대에 재벌기업의 사회적 책무가 가볍지 않다는 점은 신세계 스스로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신세계가 명품 덕에 수년간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승승장구하고 있고, 명품을 더 키우는 것이 기업의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맞다. 그럼에도 근대 상업의 중심에 위치한 문화재에 명품 매장을 들이는 것에는 깊은 숙고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해당 내용에 대해 신세계 측은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도 명확한 부정은 안하고 있다. 여론을 의식한 것인지 실제 진행 중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선택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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