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화 교수 "회사법 바꿔 ESG 경영 판단엔 '배임죄' 묻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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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화 교수 "회사법 바꿔 ESG 경영 판단엔 '배임죄' 묻지 말아야"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8.2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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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입법정책적 과제' 27일 시장경제 심포지엄
[제3세션] 손영화 인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美·英·日·유럽 등 ESG에 주목... 新투자지표 부각
"ESG 안 하는 기업, 투자자·소비자 선택받기 어려워"
손영화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박사). 사진=정상윤 기자
손영화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박사). 사진=정상윤 기자

“ESG 경영은 세계적 추세인 만큼, 회사의 이사는 기관투자자와 이해관계자 그리고 지역사회 등을 인식하며, 주주 이익과 더불어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한 ESG 경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손영화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7일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A에서 열린 ‘ESG 활성화를 위한 입법정책적 과제’ 세미나에서 “ESG 요소를 반영한 경영 판단 원칙에 따라 회사업무를 결정하고 집행한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날 세미나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손 교수는 ‘ESG 활성화에 따른 회사법의 쟁점과 관계’를 주제로 발표했다. 사회는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토론은 강택신 상장회사협의회 과장, 임정하 서울시립대 교수가 각각 맡았다. 

손 교수는 발제에서 국제사회의 ESG 활성화 흐름과 더불어 우리 회사법에서 문제되는 쟁점사항을 진단하는 한편, 기업과 회사법의 과제에 대해 제언했다. ESG 경영으로 회사에 손해가 초래될 경우, 경영자에게 형사상 배임죄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는 ESG 경영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주주 우선주의'와 임직원, 채권자,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해관계자 우선주의'가 서로 상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해법으로 손 교수는 영국이 제정한 '2006년 회사법'을 언급했다. 이 법 제172조 제1항은 '이사가 직무수행에 있어서 주주의 이익뿐만 아니라 주주 이외 이해관계자의 이익이나 사업활동에 의한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손 교수는 "ESG 경영을 한 경우,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우선했다는 사실만으로 법상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라며 “합리적인 ESG 경영 판단이라면 업무상 배임의 미필적 고의를 배제함으로써 업무상 배임죄 처벌범위 확대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왼쪽부터)전우현 한양대 교수와 손영화 인하대 교수, 강택신 상당회사협의회 과장, 임정아 서울시립대 교수. 사진=정상윤 기자

 

주요 선진국·국제기구, ESG 경영 강화 '박차' 

손 교수에 따르면,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거버넌스(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ESG는 최근 투자처 선택에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재료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투자대상을 선택할 때, 이익률 등의 수치를 나타내는 재무제표를 판단기준으로 삼았지만 최근에는 기업의 지배구조 체제나 사회적 책임 등 비재무정보가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손 교수는 “ESG가 주목받는 흐름 속에서 국제기구와 주요 선진국들이 ESG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해외 입법례를 소개했다.  

먼저, 손 교수는 유엔(UN)이 처음 ESG의 개념을 제시한 사실에 주목했다. 유엔은 2006년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에 의해 ‘유엔 책임투자원칙(PRI)’을 제정했다. PRI에는 투자 판단에 ESG를 포함하거나 투자처 기업에 ESG에 관한 공개를 요구하는 등의 6가지 원칙이 담겼다. 이 원칙은 2008년 세계경제를 뒤흔든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지나면서 더욱 확고히 자리 잡았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9월 전미이사협회(NACD)가 ‘이사회에 의한 ESG에의 전략적 감독’ 지침을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이 지침에는 ESG에 대한 ▲정의 ▲기업전략에의 통합 ▲적극적인 감독 수행 ▲외부로부터의 기대 고조 대응 등 네 가지 과제가 담겼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올해 3월부터 ESG 대책에 관한 공시기준 재검토 의견을 모집키로 하면서 글로벌 ESG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SEC는 기후변화나 ESG 관련 부정행위를 특정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 설립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EU는 2018년 7월 기술전문가 그룹을 통해 독자적인 녹색산업 분류체계인 ‘텍소노미(Taxnomy)’를 만들었다. 분류라는 의미를 지닌 ‘텍소노미’는 기후변화 대책과 경제성장의 양립을 목표로 하는 ‘유럽 그린딜’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EU 회원국의 국내법보다 우선된다. 

택소노미 규칙을 살펴보면, ▲기후 변동의 완화 ▲기후 변화 적응 ▲물과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및 보전 ▲순환경제로의 이행 ▲환경오염·공해의 방지 및 억제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 보호 및 회복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손 교수는 영국을 비롯해 한국과 경제구조가 비슷한 일본에서도 ESG 활성화 움직임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에서는 영란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 등이 올해 주주총회부터 자사의 온실가스 배출 억제책을 참고결의하기로 했다. 액티비스트로 알려진 칠드런즈 인베스트먼트 펀드(TCI) 창업자 크리스 혼(Chris Horn)의 도움이 주효했다. 

일본은 올해 6월 발표한 CG코드 재개정판에서 ESG를 비롯한 지속가능성에 관한 내용을 대폭 보강했다. 지배구조체제에 있어서도 ▲이사회의 실효적 다양성 확보 ▲이사회의 감독과 집행에 관한 체제 정비 ▲임원 보수제도에 대한 ESG 지표 도입 ▲폭넓은 이해관계자를 위한 민원처리 제도 정비 등 ESG 관점을 담은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했다. 
 

(왼쪽부터)강택신 상장회사협의회 과장, 임정하 서울시립대 교수. 사진=정상윤 기자
(왼쪽부터)강택신 상장회사협의회 과장, 임정하 서울시립대 교수. 사진=정상윤 기자

 

"ESG 경영은 곧 생존"... 글로벌 투자기관도 '친환경·지속가능' 주목

우리나라도 ESG 경영의 세계적 확산 추세에 발맞추는 모양새다. 손 교수는 “ESG를 경영에 도입하는 것은 기업의 브랜딩으로도 연결된다”며 “지금까지 ESG와는 무관했던 기업이 적극적으로 임하면 다른 각도에서 자사의 비즈니스를 어필하게 돼, 자사의 제품·서비스의 인지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손 교수는 “반대로 말하면 ESG 경영에 몰두하지 않을 경우, 투자자금 마련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ESG 경영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상식이 되고 있다. 경영자가 올바르게 인식하지 않으면 비즈니스 조류에서 자기 회사만 뒤처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투자펀드들은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에만 투자하고 있다. 일례로 대표적인 금융투자기관인 JP모건은 "탄광과 석탄화력 발전소에는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수 백 개의 투자기관들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 교수는 “유럽에서는 ESG를 비관세 장벽으로 쓰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하면서 “기업이나 국가·사회가 ESG에 동참하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발제가 끝난 후 이어진 토론에서 강택신 과장은 "최근 국내에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ESG 경영을 선포하고 전담조직 신설에 나서고 있다"면서 "많은 회사들이 지배구조보고서나 지속가능보고서 등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ESG 추진 현황을 자율적으로 공시하는 사레가 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ESG는 당위성과 컨센서스가 구축되고 시대적 요구인 것은 맞다"면서도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고 평가규정이 상이해 기업에서 따라잡기 힘든 경우도 있다"고 부연했다. 

임정하 교수는 "ESG를 기업의 자율규제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기준이나 규제가 따라붙는 규범으로 정할 것인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임 교수는 "ESG 공시가 법 규정이 아니라 자율규제라 하더라도, 투자자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사항일 경우 부실하면 처벌을 받게 돼 있다"며 "만일 ESG가 자율규제를 넘어 형사책임을 묻는 단계로 나아간다면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세미나는 시장경제신문이 창간 10주년을 맞아 한국상사판례학회, 한국기업법학회,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공동 주최했다. 후원사로는 금융위원회, 대신경제연구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거래소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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