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축소 압박이 명분 쥐어준 셈"... 망가진 씨티銀, 철수로 가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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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당축소 압박이 명분 쥐어준 셈"... 망가진 씨티銀, 철수로 가닥?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1.03.02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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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이후 세번째 철수설... 이번엔 내부發
씨티그룹 "아태지역 소매금융 처분 검토"
업계 "신사업·채용 없어... 철수 시간 문제"
"본사 중진이사 아닌 유명순 행장 협상력 한계"
씨티은행 "그룹 의견 전한 것, 드릴 말씀 없다"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 사진=한국씨티은행제공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 사진=한국씨티은행제공

씨티그룹이 한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소매금융(리테일) 사업 처분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또 한번 한국씨티은행 철수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씨티은행 철수설은 2015년 이후 세 번째다. 지금까지는 풍문으로 끝나거나 책임자가 선을 긋는 것으로 수습됐지만 이번 경우는 '진앙지'가 그룹 내부라는 점에서 이전과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아시아 시장에서 씨티은행의 소매금융 매출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씨티그룹의 실적 발표에 따르면 아시아 시장에서 작년 4분기 씨티그룹의 소매금융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5% 감소한 15억5,400만달러에 그쳤다. 

아시아 지역 내 소매금융 사업 축소가 검토되는 배경엔 이 같은 실적 이슈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블룸버그 통신은 이를 근거로 "씨티그룹이 한국을 포함한 아·태 지역 리테일 사업을 처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복수 매체에 따르면 씨티그룹은 "오랜 시간 충분히 생각해 결정할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지난 1월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신임 최고경영자(CEO)가 밝힌 대로 사업별 연계성과 상호적합성에 대해 냉정하고 철저하게 전략적 검토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최고경영자. 사진=블룸버그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최고경영자. 사진=블룸버그 2021.2.20

일각에선 씨티그룹이 구조조정 전문가로 유명한 CEO 제인 프레이저의 의중을 굳이 인용한 것을 두고 씨티은행 처분이 가시화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놨다. 제인 프레이저는 2015년 중남미 지역을 총괄할 당시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에서 소매금융과 신용카드 사업부문의 매각을 주도한 경력이 있다.

26일 한국 씨티은행 관계자는 "그것은 씨티그룹의 의견이며 은행으로선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2015, 2017년에 이은 세 번째 철수설

한국씨티은행의 철수설은 2015년부터 수시로 고개를 들었다가 수습되기를 되풀이했다. 2015년 한국 리테일 사업부문의 구조조정 차원에서 자회사인 씨티캐피탈을 매각할 무렵 철수설이 돌았다. 

2017년 133개였던 점포를 44개로 줄이는 은행권 초유의 구조조정이 단행될 무렵 또 한번의 철수설이 터져나왔다. 당시 대규모 점포통폐합이 사업 철수 수순이 아니냐는 관측이 업계에 파다했지만 당시 박진회 행장이 철수설을 일축하면서 수습됐다. 

2017년 6월 당시 박진회 행장은 임직원에게 "한국에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고 장담해 사실상 철수설을 일축한 바 있다. 2021년 현재 영업점포는 당시보다 5개가 더 줄어든 39개이다.

고강도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씨티은행의 근본적인 체질개선과 실적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씨티은행 철수설은 그간 금융업계에서 하나의 '상수'처럼 여겨졌다.

2017년 8,084억원이었던 판매관리비(판관비)는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2018년 잠시 7,032억원으로 13.0%(1,000억원) 가량 줄었지만, 2019년 다시 7,800억원을 넘었다. 

결국 2019년 씨티은행은 한미은행 시절부터 '둥지'였던 서울 중구 다동 사옥을 약 2,000억원에 처분했다. 박진회 당시 행장은 2020년 상반기 실적을 발표한 직후 임기를 남기고 스스로 사임했다. 뒤를 이은 유명순 현 행장은 씨티은행 최초의 여성 행장으로 주목 받았지만 현 경영진은 구조조정과 관련해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유명순 행장의 스펙도 미국 본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협의할 '급'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명순 행장과 달리 하영구 은행장의 경우 재직 당시 미국 씨티은행 본사 중진 이사회(보드미팅) 멤버였다.

업계 안팎에선 통산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이번 철수설은 외부가 아닌 씨티그룹 내부를 그 진앙지로 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거기에 한국씨티은행의 실적부진까지 예상되면서 철수설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한국씨티은행의 지난해 1∼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1,610억원으로, 전년 동기(2,600억원)보다 38.0% 줄었다. 업계에선 지난해 4분기 역시 기업금융과 자산관리(WM) 부문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이어지는 저금리 기조와 코로나 여파로 실적부진을 면키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업계, "올 것이 왔다" 분위기...금융당국 "사태파악중"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씨티은행은 최근 신사업 진출이나 신규 채용이 없었기 때문에 업계에서 이미 철수는 시간문제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기순이익보다 배당을 많이 해온 관례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었으니 이것으로 명분도 생긴 셈"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씨티은행의 철수 과정도 지난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씨티은행 영업점이 대폭 줄면서 여행원 상당수가 '아웃바운드 콜' 부서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안다. 사실상 콜센터 직원을 은행원 수준 연봉을 주며 고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씨티은행에는 40대 중반 직원이 막내인 부서가 있을 정도로 인사적체가 심각하다"면서 "향후 이러한 잘못된 인력운용이 매각 등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당국은 아직까지 사태를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씨티그룹이 아직 구체적으로 해명한 게 없고, 공식입장 아니라는 부분만 보고받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한국씨티은행은 1967년 한국에서 영업을 처음 시작한 이래 70년대 석유파동 당시 2억달러의 차관 제공으로 한국의 무역수지 개선에 일조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240억달러의 대외부채 상환연장을 도왔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화 8억달러를 증자해 외환시장 안정에 기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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