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기획①] "피해학생 한해 20만"... 누더기 '학폭예방법' 혼란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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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기획①] "피해학생 한해 20만"... 누더기 '학폭예방법' 혼란 키웠다
  • 박봉균 NGO저널 기자
  • 승인 2023.03.1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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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더 글로리하게 : 학폭법 현주소를 보다] ①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았다”
NGO저널-(사)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공동기획

초중고 언어·신체 학폭 늘었다
공간·시간도 없는 괴롭힘 '사이버폭력'도 심각
불신받는 학폭위…학폭 대응규정 확대해야

[편집자 註] 최근 학교폭력(학폭) 드라마 가운데 압권은 ‘더 글로리’. 극중 ‘고데기 폭력’이 실화였다는 후기는 더 충격이다. 선진국형 모델이라고 자평했던 ‘학교폭력예방법’이 시행된지 19년째를 맞았지만 ‘더 글로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학교가 끊임없이 공동체를 지향하지만,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는’ 냉혹한 조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셈이다. ‘학폭’이 사회문제로 다시 떠오른 가운데,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와 공동 기획으로 피해 학생이 소외되는 학폭의 현실과 미흡한 제도를 조명한다.

#장면1

고등학교 1학년 전모군(16)은 스마트폰 보기가 두렵다. 하루에도 수십개씩 울려대는 SNS 알람에 공부는 물론 밤잠까지 설친다. 같은 반 친구가 보내는 욕설 문자 때문이다. 학교에선 문자테러가 갈취로도 이어졌다. 전군의 SNS에는 음해성 댓글까지 달리면서 친구들의 눈초리까지 낯설어 지고 있다. 전군에 대한 폭력은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았다. 

#장면2

학교폭력을 당한 신모군(15)은 가해학생이 6개월의 출석 정지 조치를 받았다는 통보에 내심 안도했다. 하지만 한달도 안돼 또 악몽을 겪어야 했다. 가해학생 상담센터와 피해자인 신군의 상담센터가 겹치면서 다시 마주쳐야 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신군도 ‘처벌’을 받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가해학생의 그것보다 지독한 것이었다. 센터가 겹치는 데다 가해자 상담센터가 10곳이라면 피해학생 상담센터는 3곳에 불과했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신군의 상처는 언제 아물지 알 수가 없다.

새학기를 맞는 요즘 부모들의 마음은 한결같다는 말들이 나온다. ‘우리 아이가 새 친구들에 잘 적응할까’ ‘혹시 폭력이나 따돌림을 당하진 않을까’란 걱정이다. 하지만 정작 학교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의 입에선 가족은 물론 학교란 울타리 내에서의 소통부재를 호소한다. 김소열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 사무국장은 “교육 관계 부처와 일선 교사들은 학생들 사이에 일어나는 폭력적인 갈등에 대한 대책과 예방법에 대해 많은 노력을 들여 정책을 개정하고 시행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교사들은 “현장을 모르는 법과 제도가 현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현실이었다. 초중고 언어, 신체폭력이 증가 추세다. 사이버폭력같은 학폭도 진화하고 있다. 특히 학폭 가해자 상담센터가 10곳이라면 피해학생 상담센터는 3곳에 불과해 피해자가 설 곳이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드라마 '더 글로리'는 현실이었다. 초중고 언어, 신체폭력이 증가 추세다. 사이버폭력같은 학폭도 진화하고 있다. 특히 학폭 가해자 상담센터가 10곳이라면 피해학생 상담센터는 3곳에 불과해 피해자가 설 곳이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 심각한 언어·신체학폭… “피해 알려도 해법이 없다”

10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심의 건수는 2만 건에 달했다. 학폭위 심의 건수는 코로나19 이전 연 2만∼3만 건 수준이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실시된 2020년 8357건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가 대면수업이 재개되면서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다시 증가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학교폭력 신고가 늘어난 면도 있지만 다양한 유형의 폭력으로 피해가 확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학폭 유형 중에서는 언어폭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었다. 교육부의 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언어폭력 비중은 2021년에 41.7%, 2022년에는 41.8%로 높아졌다. 2013~2020년 조사에서 33∼35%대인 데 비해 급증한 모습이다. 신체폭력의 경우 10% 안팎에서 대면수업이 늘어난 지난해 14.6%로 높아졌다. 집단따돌림(13.3%)도 늘어났다. 지난 1차 조사 대비 집단따돌림은 1.2%p, 사이버폭력 0.2%p 비중으로 감소했지만, 신체 폭력은 2.2%p 증가했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느끼는 문제 해결 강도는 어떨까. 한국교육개발원이 연초 공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 중 언어폭력과 금품갈취의 미해결 비율은 35.3%, 33.0%에 달했다. 피해를 입은 3명 중 1명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고 느낀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피해를 알리는 것이 도움 안된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피해를 알린 후 도움 정도를 5점 만점 기준으로 조사했더니 초등학교 3.57점, 중학교 3.59점, 고등학교 3.35점으로 드러났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피해를 알린 비율은 가장 높았지만, 알려서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 정도는 가장 낮았다.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는 질문에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답변은 이같은 현실을 반영한다.

현장에서는 정부의 학폭 실태조사와 현실을 마주한 시민단체들의 통계와 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서(초 4~고 3) 피해 응답률은 1.7%(약 5만 4000명)에 그쳤다. 코로나19 확산 이전 실시된 2019년 1차 조사 대비 0.1% 포인트 증가한 수준이다. 하지만 푸른나무재단이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초·중·고교 학생들과 교사 등 602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학교폭력 피해 경험은 7.0%에 달했다. 이같은 수치는 교육부 표본에 단순 대입할 경우 매년 학폭을 당하는 학생이 20만여명에 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2021년∼2022년) 학교폭력 피해유형별 비중(%) . 그래픽=교육부
(2021년∼2022년) 학교폭력 피해유형별 비중(%) . 그래픽=교육부

△문제는 ‘폭력학교’… 진화하는 학폭

‘학교가 지금 아이들의 삶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 본다. 김소열 학가협 사무국장은 “한번 생각해 보자. 부모들은 학교가 아이들 사이의 폭력을 막아 주거나 폭력성을 제어해 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은 학교가 그런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폭력 학교가 되고 있다. 학교가 아이들의 일상을 이렇게 강력하게 묶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일선 학교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집단화하고 ’더 글로리‘의 그것처럼 잔인해지는 추세마저 보이며 학교 현장을 파괴하고 있다. 김학현 학교전담경찰관 경사(관악경찰서)는 “과거나 현재 아이들의 행동양식은 달라진 게 없다"라며 "달라진 점이란 현재의 아이들이 좀 더 계획적이고 잔인하게 자기보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은경 학가협 서울센터장은 ”학교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폭력의 양상은 사이버 공간에서 조차 점점 집단화하고 있고, 폭력을 일으키는 연령층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라며 ”학교와 교실은 안전해야 한다. 심리적, 물리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그 어떤 활동도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최근엔 학폭이 증거가 남지 않아 피해자들이 신고조차 하기 어려운 ‘사이버폭력’으로 진화하고 있어 관련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푸른나무재단 ‘2022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초등학교 2학년~고등학교 2학년 재학생 60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사이버폭력 경험률은 2020년 16.3%보다 2배 높아진 31.6%로 집계됐다. 2019년 5.3%와 비교해 6배 증가한 수치로, 언어폭력(19.2%), 신체폭력(11.9%), 따돌림(11.8%) 등의 응답을 웃돈다.

사이버폭력 피해 유형은 사이버 언어폭력 28.4%, 사이버 따돌림 15.4%, 사이버 명예훼손 14.3% 순이었다. 사이버폭력 경험 또는 목격 매체로는 카카오톡 27.2%, 페이스북 16.6%, 인스타그램 9.3%, 틱톡 7.9%, 에스크 5.2% 순으로 응답했다.

최선희 푸른나무재단 상담본부장은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을 필수매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코로나19가 비대면 학교폭력을 촉진한 것도 있지만, 해당 세대의 일상생활에서 온라인 영역을, 비율로 따지자면 오프라인 영역과 비슷하게 또는 더 많이 일상생활에서 차지(하게 된 이유가 크다)"라고 말했다.

학폭의 진화 속도에 비해 대응 체제 변화는 더디다. 사이버폭력은 가해자 특정, 피해 사실 입증 등이 까다로워 조사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현행은 처벌을 포함한 사안 처리가 완료된 후에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보호 및 처분을 결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학교 전담기구가 사안을 접수하고, 여러 기관 이관을 거쳐 처벌조치, 보호조치를 결정하기까지는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행정심판이나 소송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더 길어진다.

학교폭력 중 사이버폭력 비율. 그래픽=푸른나무재단 제공
학교폭력 중 사이버폭력 비율. 그래픽=푸른나무재단 제공

△신뢰받지 못하는 학폭위...“특별법으로 학폭 대응 확대해야”

학폭 사건이 학교 밖(법원 등)으로 갔을 땐 이미 ‘늦은 상태’라고 한다. 학폭이 예방, 초동대응, 학교 자체 해결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학폭 사건이 바깥으로 나가는 걸 막는 최소한의 장치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다. 사건발생 직후 대응을 위해 마련한 교내 기구로, 사건 해결의 핵심 허브라 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 한 관계자는 “민원 중 상당부분이 이 학폭위 문제로 나온다”며 “학폭위에서 어떻게 조치를 내리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폭력 제도를 살펴보면 학폭위의 뚜렷한 처벌 기준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 자료를 보면 가해자가 행한 학교폭력을 판단해서 점수를 매기는데, 이 판정 점수에 따라 가해자에게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존재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양형 기준이 없다는 게 문제다. 김소열 학가협 사무국장은 “지금은 단순히 가해의 지속성, 가해자의 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뿐이다”라며 “게다가 학폭위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학교폭력 관련된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많아서 학폭위의 결정 자체에 신뢰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런 헐거운 시스템에 19년간 2번이나 뜯어고친 학교폭력예방법까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조항에 학폭의 범위가 확대돼야 하고, 피해 학생에 대한 지속적인 보호 방안도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교폭력이 형법·성폭력범죄처벌법 등 다른 법률과 중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학교폭력예방법 내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특별법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피해학생의 보호’ 규정 강화도 검토대상이다. 김 사무국장은 “가해학생을 삼담치료하는 센터가 전국에 6000여개가 있는 반면, 피해학생을 배려한 센터는 200여개가 안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 마저 센터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이용하는 센터가 중복되다 보니 피해자는 아무런 보호 조치 없이 학교밖 상담자리에서 가해자를 계속해서 마주쳐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프로그램인 ‘우리 아이 행복 프로젝트 대힉생 멘토링' 캠프. 사진=학가협 제공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프로그램인 ‘우리 아이 행복 프로젝트 대힉생 멘토링' 캠프. 사진=학가협 제공

△“대학생 언니들과 액티비티, 학폭 스트레스 잊는다”

“암벽타기 모임에 갔던 정기모임이 기억에 남아요. 대학생 언니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어울리면서 학폭 스트레스도 날리고 상처까지 치유할 수 있었어요. 두렵다고 방에만 있었으면 자신을 바꿀 수 없을 거여요.” 학가협 프로그램인 우리아이행복프로젝트 대학생 멘토링에 참가했던 배힘찬(가명, 16)양은 “1년 정도 멘토링에 참여했다”며 “선생님이나 부모님보다 비슷한 생각을 공유해서 그런지 마음을 열게되고 고민을 잘 털어놓는다”고 말했다,

강솔지 학가협 서울센터 멘토(대학생)는 “스포츠 활동을 통한 청소년 힐링 프로그램에 대한 호응이 높다”며 “이 프로그램을 늘려 달라는 아이들의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수도권의 중·고교생 30여 명은 매월 2-3번씩 대학생 멘토들과 스포츠 캠프에 나선다. 이들은 서로 팀을 짜서 경쟁하고 땀방울을 흘리면서 소통하고, 운동을 하면서 각종 스트레스를 벗어던진다. 멘토 학생들은 재능기부 성격의 ‘일일 선생님’을 자처했다. 이들은 늘 SNS도 열어놓고 고민있는 청소년들의 멘토를 맡아 제대로 가족같은 역할도 하고 있다. “어른 중심의 문제해결 보단 형이나 언니같은 또래 대학생들의 진솔한 얘기가 아이들 치유에 더 효과적”이라고 김소열 사무국장은 귀띔했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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