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대출부실 위험에... "충당금 얼마나" 은행 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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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대출부실 위험에... "충당금 얼마나" 은행 골머리
  • 문혜원 기자
  • 승인 2022.02.0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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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대출 만기연장 눈앞
당국 "2020년 수준 충당금 관리" 주문
"직접적 수익 감소... 배당 축소 불가피"
고승범 금융위원장(왼쪽), 정은보 금융감독원장 사진=시장경제DB
고승범 금융위원장(왼쪽), 정은보 금융감독원장 사진=시장경제DB

금융당국의 대손충당금 확대 주문 압박에 은행권과 카드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국이 대손충당금 산정 시 활용되는 변수에 ‘코로나 장기화 영향’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충당금을 늘리게 되면 금융사들의 순이익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대손충당금(실현 손실)은 부실 대출 규모를 예상해 이익잉여금 중 미리 별도준비금으로 처리해 쌓아두는 돈을 말한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당국은 오는 3월 말 소상공인·중소기업 코로나 대출 만기연장을 앞두고 건전성 관리 강화를 위해 은행권에 이어 카드사 등에게 손실에 대비한 충당금을 추가 적립하라고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미크론 확산세·금리 폭등 등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따른 것이다.

먼저 금융감독원은 이달 초 주요 은행들이 제출한 지난해 3분기 대손충당급 적립 계획을 파악한 후 잠재 부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과거 수치인 부도율을 기반으로 쌓다 보니 오히려 미래의 잠재 부실이 축소됐다는 것이 그 이유다. 

통상적으로 은행들은 회계목적 충당금 적립을 위해 경기악화 시나리오를 짤 때 ‘PD(부도확률)×LGD(부도시 손실률)×EAD(여신잔액)’ 등을 고려하고 있다. 이 중 부도확률은 환율·금리·경제성장률(GDP)·주택가격지수·소비자물가지수 등 각종 경기전망 변수들을 반영해 산정한다.

부도확률 수치가 높아지게 되면 충당금 규모도 늘어나게 된다. 과거 부도율은 코로나 이후 기준금리 인하, 대출 만기 연장 등의 효과로 낮아진 측면이 있어 앞으로 더 높아질 수 있으니 충당금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금융당국 판단이다.

금감원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이 쌓은 충당금 잔액을 파악한 결과 지난해 3분기(7∼9월) 기준 총액은 5조716억원으로 적립 잔액 자체가 과거에 비해 모두 감소했다. 2020년 3분기(5조2968억원)나 2020년 말(5조4006억원)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20년 말 4대 은행은 충당금 잔액을 전년 동기 대비 5∼29.6%까지 높였다. 금융당국이 연중 내내 배당을 자제하고 충당금을 쌓으라고 압박한 탓이다.

하지만 이 기간 손실 위험이 높은 ‘고정 이하 여신’(고정, 회수 의문, 추정 손실)은 4조1555억원에서 3조1461억원으로 감소했다. 당국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3분기 은행 여신 건전성은 양호하지만 대손 충당금 적립액은 낮다는 점에서 ‘건전성 착시 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이후 금감원은 주요 시중은행들에게 대출 부실에 대비해 쌓는 대손충당금을 2020년 수준만큼 늘리라고 주문했다. 이에 은행들은 충당금 적립액을 많게는 1400억원 가까이 기존 계획보다 상향해 금감원에 다시 제출해야 한다. 

다만, 은행들은 충당금을 늘리게 되면 주주 배당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점 때문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고통받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상황을 감안해 충당금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본질적인 주주 가치 제고 측면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통상 연체율 등을 감안해 대손충당금을 적립해 놓는 상황이지만 4분기 회계 결산을 앞둔 시점에 (대손충당금을) 늘리게 되면 순이익이 줄어들게 돼 배당이익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 부담 요인이 크다”고 말했다.

당국은 지난해 1월 말 지주사와 은행의 배당을 순이익의 20% 이내로 제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당시 당국은 2021년 마이너스 성장 확대 후 2022년 제로 성장을 가정해 배당순이익을 제한했다. 

당국의 압박은 카드업계에도 이어졌다. 지난달 26일 금감원은 7개 카드사, 12개 캐피털사의 리스크 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화상 간담회를 열고 대손충당금 적립 등의 위기 관리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서 금감원은 여신전문금융사들에 대손 충당금 추가 적립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신전문금융사의 대출 규모는 은행만큼 크지 않다. 하지만 카드사의 경우 다중채무자, 캐피탈사의 경우 부동산 관련 대출이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이 큰 캐피탈업계는 금리 인상으로 인해 부동산 대출이 ‘잠재적 뇌관’으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카드사들은 2020년 4분기 코로나 확산에 따른 영향으로 충당금을 가장 많이 늘렸으나, 올해에는 경제지표가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충당금 축소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리 인상 여파 관련 코로나 리스크를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이 당국으로부터 나왔다. 코로나 발생에 따라 경기변수 등을 보수적으로 책정하면서 리스크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조정이 예상된다”면서 “오는 3월 코로나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대출 만기 연장, 원리금 상환유예 지원 제도가 종료될 때를 대비해 금융사들의 본격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카드업계는 2000년대 초반 카드 대란 이후 대손충당금 적립 기준이 강화돼 손실 흡수 능력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당국의 권고에 따라 대손충당금을 늘리면 당기순이익이 줄고 재무제표에 영향이 미쳐 수익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불확실성에 대비한 충당금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가맹점 수수료율 추가 인하에 이어 카드론 규제에 대한 이중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여기에 더해 충당금 적립 확대로 인해 제무제표상 이익 감소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수익 감소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충당금을 늘리면 당장 설 연휴 이후 영세·중소 카드 가맹점의 우대수수료율이 기존 0.8∼1.6%에서 0.5∼1.5%로 경감된다. 국고채 3년물이 연 2.2%대까지 급등하면서 카드사의 조달금리도 오를 전망이다.

한편,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새해 들어 은행 등 금융회사가 위기 가능성에 대비해 대손 충당금을 충분히 쌓는 등 손실 흡수 능력을 강화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도 금융권의 충당금 적립 확대를 강조했다. 정 원장은 지난 26일 금융플랫폼과의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금융회사 충당금이 오히려 전년보다 줄어드는 모습"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금융회사들이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당국은 특히 금리 상승과 금융 정상화를 앞두고 소상공인 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코로나 관련 지원 조치의 경우 오는 3월 말 종료한다는 원칙에 따라 연착륙 방안을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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