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LH 해체 시킨다고 '부동산 失政' 덮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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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LH 해체 시킨다고 '부동산 失政' 덮어지나
  • 정규호 기자
  • 승인 2021.06.0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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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임명 김현준 사장, 고강도 내부혁신 추진
黨政은 사실상 '조직 해체' 가닥... 정책 엇박자
구속 수사 LH 2명 불과... 혐의 특정도 안 돼
정부·여당 'LH 해체론' 원점 재검토 필요
LH 구성원에게 '자율 혁신' 위한 시간 줘야
김현준 LH 신임 사장(전 국세청장). 사진=시장경제DB
김현준 LH 신임 사장(전 국세청장). 사진=시장경제DB

정부와 여당이 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을 놓고 엇박자 해법을 제시해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재가로 올해 초 임명된 김현준 LH 신임 사장(전 국세청장)은 부임 한 달 만에 내부 업무 프로세서를 개선하는 등 대대적인 내부 혁신을 꾀하고 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공사 해체'를 추진 중이다.

김현준 사장은 부임 한달여만에 ▲LH 혁신위원회 ▲LH 혁신추진단 ▲준법감시위원회 등을 출범시켰다. 지난달 31일 열린 제2회 LH 혁신위원회(위원장 김준기 서울대 교수)에서는 '부동산 취득 제한 위반'으로 기소되는 경우 즉시 직권면직하고, 국민 정서와 괴리된 사회적 물의를 유발하는 경우 직위해제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근거 조항을 신설하는 등 부정·비리행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다뤄졌다. LH는 위원회 회의 결과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부의 자발적 혁신과 별개로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LH 해체'를 추진 중이다. 정부 여당이 마련한 혁신안은 지주회사와 사업 자회사를 분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1개 지주회사에 2~3개 사업 자회사를 두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주사는 불미스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보·권한의 집중을 막고 자회사를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지주사 명칭은 '주거복지공단' 등이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이 내려보낸 신임 사장은 '혁신'을, 정부와 여당은 '해체'를 추진하는 모양새인데, 이같은 분열 양상을 바라보는 누리꾼들의 시각은 곱지 않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해체 시킬거면서 혁신은 무슨', 'X개 훈련시킨다', '이럴거면 국세청장을 왜 LH사장에 앉혔나', 'LH 김현준 신임 사장, 윤석열 총장처럼 식물 사장되겠네' 등의 조롱섞인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LH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해법을 놓고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근본 이유는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사상 초유의 집값 폭등을 '정책 실패'의 결과로 인정치 않고 있다. 현 정부가 생각하는 집값 폭등의 원인은 '투기 세력'이다. 이같은 시각에서 본다면 집값을 올린 투기 세력에 대한 응징은 불가피하며, LH가 그 중심에 있다. 소수의 공사 직원이 연루된 투기 의혹을 해소하겠다면서 '공공기관 해체'라는 극약처방에 매달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안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인식이 일반적인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LH라는 공적 기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소속 임직원들의 투기 가능성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의 혁신이다. 

어설픈 투기 세력 음모론을 배제하고 팩트에 집중하면 사실 관계를 보다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다.

지난달 열린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 따르면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LH 직원은 2명이다. 수사를 책임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밝힌 내사 인원은 고위공무원 8명, 국가공무원 86명, 지방자치단체장 14명, 지방공무원 176명, 국회의원 13명, 지방의원 55명, LH 전현직 직원 77명 등이다.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LH에 적을 두지 않은 고위공무원과 정치인들의 내사 명단이 더 많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LH 전현직 직원 중 실제 범죄를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원은 2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국가수사본부의 전방위 수사에도 불구하고 'LH 직원들이 빼냈다는 개발 정보'는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특정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조직 해체는 답이 아니다. 되레 조직의 해체는 더 큰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정부 여당의 혁신안은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 현 정부가 집값 폭등으로 악화된 민심을 LH에 덮어 씌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국민 모두가 감정을 배제하고 사안을 지켜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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