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들 단기납종신 조기 판매 중단... 전산 지연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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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보사들 단기납종신 조기 판매 중단... 전산 지연 혼란
  • 문혜원 기자
  • 승인 2024.01.3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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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납 종신보험 환급률 경쟁에 금감원 '경고'
농협생명, 하나생명... 상품 판매 중단 등 긴급 조치
영업 현장 혼란... 설계사 전산시스템 일시 마비
금감원 "보장성 보험, 저축성 보험으로 둔갑... 현장 점검"
사진= 각 사 제공, 편집=시장경제DB
사진= 각 사 제공, 편집=시장경제DB

연초부터 '단기납 종신보험 유지 환급률' 경쟁을 벌인 농협생명과 하나생명이 관련 상품 판매를 갑자기 중단했다. 이로 인해 영업 현장에서는 설계사(FC) 전산 시스템이 일시 마비되는 등 혼란을 겪었다. 앞서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의 환급률 인상 경쟁에 강한 우려를 표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취재 결과 지난해 12월부터 환급률을 올린 농협생명과 하나생명이 당국의 기조에 맞춰 자체 감사를 시행하거나 상품 판매를 중단하는 등 긴급 조치를 취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 결과 일선 현장에서는 영업을 담당하는 설계사들의 불만이 급증하고 있다.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농협생명은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를 갑자기 중단했다. 회사는 29일 긴급공지를 통해 그 사실을 영업 현장에 안내했다. 

(왼쪽부터)하나생명 공지문과 농협생명 공지문. 자료=제보자 제공
(왼쪽부터)하나생명과 농협생명의 각 공지문. 자료=제보자 제공

<시장경제>가 입수한 농협생명 ‘단기납 종신보험 중단’관련 공지를 보면, 7년 단기납 종신보험 설계는 이달 29일까지, 수납은 같은 달 31일까지만 할 수 있다. 공지는 29일 당일 오전 12시 이뤄졌으며, 일선 현장의 설계사(FC) 전산시스템이 하루 동안 마비됐다. 

농협생명이 29일 오후 6시가 되기 2분전 설계사에게 보낸 공지내용. 자료=제보자 제공
농협생명이 29일 오후 설계사에게 보낸 공지. 자료=제보자 제공

GA법인 영업현장 내 설계사 사이에서는 종신보험 상품 판매가 중단됐다고 해서 전산시스템이 지연되는 경우는 드물다며 의문을 제기하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한 설계사는 "공지 후 시스템 복구를 기다렸는데 휴대폰 문자로 '조기 마감' 메시지가 왔다. 급하게 농협생명 종신보험 상품 청약을 닫고, 다른 보험사 종신보험 설계로 갈아타는 등 업무를 하느라 밤 늦게까지 야근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월말도 다가오면서 단기납 종신보험을 조기에 중지하니 과열현상이 빚어져 전산이 지연됐다"며 "본사 차원에서 1시간 마다 전산 지연 사실을 현장에 알렸는데 제대로 전달을 받지 못한 설계사들이 있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먼저 환급률을 올린 하나생명은 이달 25일 영업 현장에 “모든 상품을 중단하겠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하나생명은 자체 상품 점검을 통해 판매 중단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이달 22일 신한라이프, 교보생명 등 대형 생명보험사 중심으로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하나생명은 이달 28일 신계약 청약 중단, 29일 이후 청약 불가 사실을 영업점 등에 안내했다. 하나생명 역시 갑작스런 상품 취급 중단 소식에 영업 현장에서 전산이 지연되는 등 혼선을 빚었다. 

하나생명 관계자는 “아직 금감원 현장 점검은 없으며, 현재 상품 전반 검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산 먹통 사태는 자체 점검과는 관련이 없으며, 과열현상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단기납 종신보험 환급률을 둘러싼 과열 경쟁에 금융당국이 경고 시그널을 보내자, 부담을 느낀 두 보험사가 문제된 상품 판매 중단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NH농협생명은 올해 초 단기납 종신보험 7년납·10년 유지 환급률을 업계 최고인 133%로 확대했다. 하나생명도 주력상품인 ‘하나로 THE 연결된 종신보험’의 5년, 7년, 10년납 환급률을 인상했다. 7년납의 경우 환급률은 130.8%이다. 단기납 종신보험의 환급률 인상 경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금감원은 지난해 9월 단기납 종신보험 환급률이 10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경쟁이 과열되면 보장성 상품인 단기납 종신보험이 저축성 보험 상품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생보사들은 올해 초 환급 시점을 5·7년 대신 10년으로 연장하는 방법으로, 환급률을 130% 이상 높인 상품을 시장에 내놨다.

환급률은 보험을 해지하면 그동안 낸 보험료를 돌려받는 비율이다. 환급률이 100%보다 높으면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5년납·10년 유지' 환급률이 130%이고, 5년간 누적 납입한 보험료가 3000만원이라면 남은 5년간 보험계약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3900만원을 돌려받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급률이 높은 상품의 혜택이 커, 가입이 몰릴 수밖에 없다.

대형 생명보험사 중 교보생명·한화생명·신한라이프 등은 7년납·10년 만기 종신보험 상품을 중심으로 환급률을 높였다. ▲신한라이프 '모아더드림종신' 135.0% ▲한화생명 'The H3 종신보험' 130.5% ▲교보생명 '실속종신Plus' 131.0% 등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올해 들어 생명보험사들의 종신보험 판매과정에서 다시 불합리한 관행이 나타나고 있다”며 “다만 상품 자체에 대한 판매 유무는 회사 자율에 맡겨져 있어 특별한 제재를 내리거나 할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유지기간이 끝난 뒤 보험사들이 고객에 환급을 해 주면서 일시적으로 자금이 빠져나갈 경우 건전성이 흔들릴 우려는 없는지 들여다 볼 것"이라고 부연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종신보험 상품 자체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보험사들은 건전성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환급률만 조정하면 끝날 일"이라며 "단기납 종신보험이 저축성처럼 둔갑하는 게 문제이기 때문에 ‘사망 보장’ 이라는 단어가 빠진 단기납 판매 리플렛(전단지)도 살펴보고, 부적격한 표현이나 문구에 대한 규제 등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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