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탐방] "내 정체성은 한국인"... 독도에 울린 해외입양인들 애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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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 "내 정체성은 한국인"... 독도에 울린 해외입양인들 애국가
  • NGO저널 박주연 기자
  • 승인 2023.08.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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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입양인 울릉도·독도 3박4일 투어 동행기 (上)
사단법인 '둥지(Nest Korea)' 주관, 행정안전부 지원
해외 입양인들 스쿠버다이빙과 스노클링 즐기며 ‘이야기꽃’
“한국의 상징 독도에서 여행 즐거워요”

찜통더위가 이어진 8월 17일 목요일 오후 서울역 맥도날드 매장 앞. 울릉도·독도 탐방을 떠나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번 여행은 해외 입양인들을 돕는 사단법인 둥지(Nest Korea, 이사장 김홍진 신부)가 행안부 지원을 받아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모국을 찾은 해외 입양인들이 한국의 아름다운 정취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탐방지는 우리나라 최동단에 위치한 울릉도·독도. 해외 입양인들과 둥지를 돕는 후원자·봉사자들까지 모두 24명의 인원이 17일~20일까지 함께하는 여정에 기자도 동행했다.

흔히 정체성 혼란을 겪는 해외 입양인들에게 모국의 ‘뿌리’를 느끼기에 울릉도·독도만큼 좋은 장소는 없을 터였다. 여행 기간 내내 이 땅의 역사적 정체성을 더듬으며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정취를 만끽하는 동안 핏속 잠자던 한국인 특유의 DNA를 스스로 발견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첫날 오후 서울역에 모인 일행은 인원 점검 후 둥지가 저녁 식사로 마련한 맥도널드 햄버거를 나눠 받고 포항행 KTX 열차에 올라탔다. 입양인들은 초면인 사이에도 어색해하면서도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연령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생후 6개월에 스웨덴으로 입양됐다는 A씨는 “다른 입양인들과 만나 이야기도 하고 독도 여행도 같이 하고 싶었다”며 이번 울릉도·독도 투어에 합류한 이유를 소개했다. 둥지는 이번 투어 기획을 지난 4월 페이스북을 통해 알렸고 참여신청을 한 해외 입양인들을 면접을 통해 선정했다.

약 2시간 30분이 지난 저녁 8시 10분 즈음 포항역에 도착한 일행은 곧바로 포항 영일만 항구로 가 크루즈 유람선을 타고 울릉도로 향했다. 크루즈 유람선에서 7시간여를 보낸 다음 날 아침 7시 30분에 식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여행은 시작됐다.

17일 오후 포항 영일만 항구에 도착한 둥지의 봉사자들과 해외 입양인들은 크루즈 유람선을 타고 울릉도로 향했다. 배 안에서 약 7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들은 어떤 기대와 흥분으로 밤을 보냈을지 궁금했다.
17일 오후 포항 영일만 항구에 도착한 둥지의 봉사자들과 해외 입양인들은 크루즈 유람선을 타고 울릉도로 향했다. 배 안에서 약 7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들은 어떤 기대와 흥분으로 밤을 보냈을지 궁금했다.

투어 첫날 일행은 유명한 대풍감 전망대 등 일대를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대풍감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의 명소로 꼽힌다. 울릉군 서면 태하리의 대풍감은 섬의 북서쪽 꼭짓점에 위치한다. 울릉읍에서 버스를 타고 약 50분 거리로, 대풍감 절벽까지는 가장 일반적인 경로라는 태하 향목 관광 모노레일을 이용했다.

모노레일을 내려 전망대로 향하는 길에 파도와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해안 절벽 대풍감의 모습을 바라보니 절로 상념에 잠겼다. 고도 154m의 바위산인 대풍감은 ‘본토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마치 모국의 따뜻한 환영을 애타게 기다리며 꿋꿋하게 버티는 해외 입양인들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풍감 해안 절벽 아래 에메랄드의 바닷물빛은 절로 감탄을 자아냈다.
대풍감 해안 절벽 아래 에메랄드의 바닷물빛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대풍감 관광 일대는 대규모 향나무 자생지로도 유명하다. 주상절리와 암석 틈에 자생하는 향나무를 볼 수 있는 독특한 자연명소로 바람이 불면 향나무의 향을 맡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보단 울릉도 북쪽 해안 절경 쪽으로 감각이 온통 향했다.

울릉도·독도 일정 중 해외 입양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았던 프로그램은 이날 오후에 있었던 해양탐사였다. 스쿠버다이빙과 스노클링을 즐기며 독도의 짙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체험할 수 있었다. 1년 중 70여 일 정도만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울릉도의 바다는 마침 최상의 기상 조건이었고 스쿠버다이빙을 하기 위해 다이버 복장으로 산소통을 매고 순서를 기다리는 해외 입양인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밝았다.

다이빙 지점에서 다이버들의 도움을 받아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든 이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바닷속을 휘젓고 돌아와 “너무 재미있었다”며 활짝 웃었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간 이들은 그날 밤 꿈에 독도의 터줏대감 물고기들은 만났을까.

해외 입양인들과 봉사자들이 가장 즐거웠던 시간으로 꼽았던 체험 스쿠버다이빙과 스노쿨링. 생각보다 파도가 거셌지만 모두를 만족시켰던 강렬한 액티비티.출처 : NGO저널(https://www.ngojournal.co.kr)
해외 입양인들과 봉사자들이 가장 즐거웠던 시간으로 꼽았던 체험 스쿠버다이빙과 스노쿨링. 생각보다 파도가 거셌지만 모두를 만족시켰던 강렬한 액티비티.

 

한국 문화의 ‘상징’ 독도에서 흠뻑 느끼는 한국인 DNA

둘째 날 아침부터 습도와 온도가 뭉쳐 뿜어내는 울릉도의 끈적한 열기를 견디며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 박물관에 도착했다. 후덥지근한 더위에 다소 지쳐 보였던 해외 입양인들은 문화관광해설사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들려주는 독도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해설사의 설명을 따라 우리 땅 독도에 알아가는 해외 입양인들. 독도는 그들 가슴에 어떤 이미지로 남았을까 궁금하다.
해설사의 설명을 따라 우리 땅 독도에 알아가는 해외 입양인들. 독도는 그들 가슴에 어떤 이미지로 남았을까 궁금하다.

 

일행은 천연기념물 독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다양한 영상과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의 생활 터전인 울릉도·독도의 역사, 자연환경, 지질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512년 우산국이 신라의 영토가 된 후, 고대부터 현대까지 울릉도와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로 굳건히 이어왔다. 진지한 모습의 해외 입양인들은 가져온 카메라로 전시된 자료를 찍거나 전시관을 둘러보며 독도의 역사에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미국 뉴욕에서 왔다는 B씨는 “독도는 혼자 쉽게 올 수 없는 여행지로 단체여행이면 가능할 것 같았다”며 “이곳에 올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독도 방문이었다. 독도는 안개가 잦고 연중 흐린 날이 160일 이상이며 강우일수는 150일 정도로 연중 85%가 흐리거나 눈, 비가 내려 습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둥지의 이안순 사무총장은 “정말 운이 좋게도 독도 땅을 밟아볼 수 있게 됐다”며 반가워했다. 점심식사 후 울릉도 저동항에서 출발하는 페리를 타고 독도에 도착한 일행은 약 30분 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천혜의 풍광을 맘껏 즐겼다. 이곳저곳에서 “So beautiful” 등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둥지 봉사자들과 해외 입양인들은 태극기를 앞세운 단체 사진을 찍은 후 미리 연습해간 애국가를 불렀다. 발음은 서툴렀고 중간중간 가사도 잊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애국가를 부르는 이들의 표정에선 진지함이 묻어났다.

해외 입양인들은 독도 한 가운데서 미리 연습해간 애국가를 부르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해외 입양인들은 독도 한 가운데서 미리 연습해간 애국가를 부르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해외 입양인들은 독도 한 가운데서 미리 연습해간 애국가를 부르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울릉도.독도 탐방만큼 한국과 한국인으로서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이 또 있을까. 해외 입양인들은 한국의 상징적 장소에서 동병상련의 입양인들과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경험을 이번 여행의 최고 보람으로 꼽았다.

 

울릉도·독도 투어 마지막 날은 도동 해안선과 주변 탐방으로 마무리했다. 전날과 달리 흐리고 간간이 비가 뿌리는 날씨였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울릉도를 떠나기 전 가수 이장희 씨의 집 ‘울릉천국’에 들러 풍경을 감상하고 카페에서 차도 마시며 마지막 아쉬움을 달랬다.

해외 입양인들은 이번 여행을 어떻게 즐겼을까 궁금했다. 이들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빠져드는 자연환경에 매혹됐을까. 기자가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이들에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해외 입양인 C씨는 “여기 와서 자연도 너무 좋았지만 다른 입양인들을 만나서 좋았다”고 했다. 다른 해외 입양인 D씨도 “한국말 공부한 지 6개월 됐는데 여기서 다른 입양인들과 만나 이야기한 것이 정말 좋았다”라며 비슷한 답변을 했다.

또 다른 해외 입양인 E씨는 “투어 일정 중 스쿠버다이빙이 제일 재미있었다. 또 이곳에 와서 연령대가 다양한 세대의 입양인들과 한국 문화의 상징적인 장소인 독도에서 만나 이야기한 것이 좋았다”고 했다.

어쩌면 이들이 목말랐던 것은 모국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만나 교감하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낯설지만 친숙한’ 동병상련의 정(情)은 요란하기만 한 모국의 환대보다 더 진하게 다가왔을 법하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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