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민간 플랫폼' 막기 급급, 여전히 폐쇄적인 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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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민간 플랫폼' 막기 급급, 여전히 폐쇄적인 변협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3.02.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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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톡 퇴출나선 변협, 법률소비자는 안중에 없나
美·日선 '리걸테크' 활성화... 변협 인식 바꿔야
로톡 브랜드 캠페인 지하통로 옥외광고. 사진=연합뉴스
로톡 브랜드 캠페인 지하통로 옥외광고. 사진=연합뉴스

인류 역사에서 법을 기록하는 수단은 각 시대에 따라 진흙판에서 돌판으로, 종이로, 컴퓨터, 디지털 네트워크 등으로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그러나 사건을 의뢰하는 방식은 '변호사'라는 전문직이 처음 등장했던 고대 로마시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아날로그'적이다. 의뢰인이 변호사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사건을 상담하고 수임료를 지불하는 형태다. 법률시장 사정에 어두운 의뢰인 입장에선 유능한 변호사인지, 비용은 적절한지 불안하기만 하다. 변호사 사무실 문턱이 높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등장한 '리걸테크'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법률'과 '기술'의 융합을 의미하는 리걸테크는 유망한 신산업 중 하나로 꼽힌다. 발전 가능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해외 선진국에서는 이미 리걸테크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츠에 따르면 리걸테크 분야 글로벌 투자 규모는 2016년 2억 달러(약 2200억원)에서 2019년 11억 달러(약 1조2100억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연평균 81%에 달하는 성장세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각종 규제와 변호사단체의 견제 등으로 고사 직전에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국내 토종 법률플랫폼 '로톡'의 사례를 들 수 있다. 

로톡의 운영사 로앤컴퍼니는 국내 초창기 리걸테크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첫 선을 보인 로톡은 변호사와 의뢰인 간 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의뢰인이 법률사무소가 늘어선 골목을 배회하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을 통해 변호사 프로필과 각종 법률정보를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법률시장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로톡은 상대적으로 사건 수임을 맡을 기회가 적었던 젊은 변호사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았다. 서비스 출시 후 로톡의 변호사 회원 수는 85개월 동안 꾸준히 늘어, 한때 4000여명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변호사협회가 광고규정을 개정하고, 로톡 가입 변호사에 대한 징계에 나서면서 현재는 2000명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민간 법률플랫폼'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8월, 광고 규정 개악과 부당한 회원 징계를 반대하는 변호사 모임' 소속 윤성철 변호사(가운데) 등이 서울 종로구 서울시경찰청 민원실 앞에서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의 이용을 막아온 대한변호사협회의 이종엽 회장 등 간부들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강요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 전 입장문을 읽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8월, 광고 규정 개악과 부당한 회원 징계를 반대하는 변호사 모임' 소속 윤성철 변호사(가운데) 등이 서울 종로구 서울시경찰청 민원실 앞에서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의 이용을 막아온 대한변호사협회의 이종엽 회장 등 간부들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강요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 전 입장문을 읽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변협, '민간 플랫폼' 퇴출에 목숨거는 이유

변협은 2021년 5월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전면 개정했다. 의도는 명약관화했다. 변협 소속 변호사들의 로톡 가입을 저지하기 위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규정을 어긴 변호사 회원에 대해선 징계를 불사하겠다는 강경입장을 나타냈다. 민간 법률플랫폼을 완전히 '퇴출'시키겠다며 전면전을 선포한 것과 다름없다.

변협의 강경책은 당연하게도 강한 반작용을 낳았다. 지난해 5월 헌법재판소는 '변호사 광고규정' 헌법소원 사건에서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해당 소를 제기한 로앤컴퍼니와 변호사 60명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헌재는 해당 규정 제5조 2항 1호 ‘변호사 또는 소비자로부터 대가를 받고 법률상담 또는 사건 등을 소개·알선·유인하기 위하여 변호사 등을 광고·홍보·소개하는 행위’의 경우,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제4조 14호 '협회의 유권해석에 반하는 내용의 광고'와 제8조 2항 4호 '협회의 회규, 유권해석에 위반되는 행위를 목적 또는 수단으로 하여 행하는 경우' 등에 대해선 재판관 전원일치 '위헌' 판단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협 측은 헌재가 일부 규정을 제외한 대부분에 대해 '합헌' 판단을 내렸다며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일관하고 있다. 로톡 가입 변호사에 대한 징계 일변도 원칙도 그대로 고수했다. 문제는 이러한 기조가 올해 2월부터 시작되는 52대 변협 집행부 체제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변협은 '리걸테크'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 내지는 불신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기저를 살펴보면, ▲첫째. 법률시장은 공공재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 특정 자본에 종속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특정 플랫폼 시장을 독점할 수 있고, 이는 공정질서 훼손과 국민 피해로 이어질 것이란 견해다. ▲세 번째는 플랫폼이 해외자본에 매각되기라도 한다면 등록된 국내 변호사들의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변협이 내놓은 대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자칭 '공익'을 위한다며 자체 법률 플랫폼 '나의 변호사'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를 두고, 이미 2017년경 '변호사 중개센터'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가 실패한 서비스를 간판만 바꿔 달았다는 비판이 적잖다.

민간 플랫폼은 시장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면서, 자체 법률 플랫폼을 내세워 시장을 독점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도 있다. 결국 '밥그릇' 문제 아니냐는 것이다. 
 

日, 변호사 50%가 리걸테크 가입... 폐쇄적 국내 시장과 대조적 

로톡은 불법이라는 변협의 주장과는 달리, 합법적 '광고형 플랫폼'으로 분류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변호사와 의뢰인이 만나는 과정에 로톡은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로톡이 얻는 수익은 '광고비'에 국한된다. 어떠한 변호사를 택할지는 순전히 의뢰인에게 달려있다.  

특정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지어 수수료를 받는 '중개 행위'는 변호사법에 의해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단순 '광고'는 금지하지 않는다. 2021년 8월 법무부가 온라인 법률 플랫폼 관련 브리핑에서 "로톡은 중개형이 아닌 광고형 플랫폼"이라며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힌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해외에서는 '리걸테크' 유니콘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시장조사기관 트랙슨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지닌 리걸테크 분야 유니콘 기업은 총 9곳이나 된다. 미국의 리걸테크 플랫폼 시장 규모는 19.6억 달러(약 2조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비스 범위도 광고형 플랫폼에 국한되는 국내와 비교해 보다 포괄적이다. 미국의 경우, 전자증거개시 분야 리걸테크 기업으로는 로직컬(Logikcull)이 있다. 증거개시란 검사 및 피고인, 변호인 등이 소송 관련 증거를 공개, 상대방이 열람·등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법률자문 분야에선 리걸줌(Legalzoom)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로직컬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방대한 양의 소송 관련 데이터를 분류·정리해준다. 리걸줌은 개인과 중소기업 등을 대상으로 AI를 통한 법률문서 자동작성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운영 형태는 리걸테크 규제가 복잡하게 얽힌 대한민국에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보수적인 일본에서도 리걸테크 산업이 꽃피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일본 변호사법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변호사가 아닌 자의 법률사무 취급 및 알선을 금지(제72조)'하고 있다. 다만 일본변호사연합회는 '광고형 플랫폼'에 문호를 개방, 리걸테크 업계와 '상생'의 길을 걸었다. 대한변협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2005년 설립된 일본의 리걸테크 서비스 '벤고시 닷컴'이 대표적이다. 이 서비스에는 현지 변호사 4만 3000명 중 절반에 가까운 2만여명이 가입돼 있다. 시가총액 2조원이 넘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우리나라 변협에서 우려하는 문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일본 변호사단체의 광고형 플랫폼 허용 방침은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혼란에 빠진 법률시장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했다. 

반면, 우리나라 리걸테크 업계는 올해도 혹한기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신임 대한변협 회장으로 당선된 김영훈 변호사는 민간 법률 플랫폼 퇴출을 공언하고 있다. 시대적 변화 앞에 언제까지 눈을 감을 순 없다. 대한변협의 전향적 인식 변화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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