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국토부-은마주민 싸움에 좌표 찍힌 현대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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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국토부-은마주민 싸움에 좌표 찍힌 현대건설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3.02.0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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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은마주민 'GTX-C 노선변경 갈등' 고조
현대건설로 불똥, 문제 본질은 정부-주민 입창 差
원희룡 국토부 "위험성 없어... 극단적 이기주의"
"폭약 발파 없는 첨단 공법... 지하 60m 굴착"
은마재건축추진위 "단지 지하 통과 결사반대"
추진위 측 '현대건설 특혜 음모론' 제기
정부-주민 갈등에 피해는 시공사 몫
2020년 8월 서울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건설사업 C노선 전략환경영향평가서(초안) 공청회에서 좌석에 주민들이 꽂아둔 손피켓이 놓여있다. 사진=연합뉴스
2020년 8월 서울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건설사업 C노선 전략환경영향평가서(초안) 공청회에서 좌석에 주민들이 꽂아둔 손피켓이 놓여있다. 사진=연합뉴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노선의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 지하 통과 여부를 두고 불거진 정부-아파트 주민간 갈등의 불똥이 엉뚱하게 시공사로 옮겨 붙으면서 사안이 더욱 꼬이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GTX-C 삼성역~양재역 구간의 노선 변경으로 정부와 관할 자치단체가 주민 의견 수렴을 전제로 협의할 사안이다. 시공사는 이 사안에 있어 갈등의 주체라기 보다 사안을 관망하는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갈등의 진앙이라 할 수 있는 아파트 주민 협의체가 집회·시위의 대상으로 찍은 좌표는 국토부나 자치단체가 아닌 시공사와 그 총수이다.

이 사업 우선협상시공사는 현대기아차 그룹 계열 현대건설이다. 주민들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거주하는 강남구 유엔빌리지 바로 앞 도로에 원색적인 문구를 적은 수십여장의 현수막을 내거는 등 시위 강도를 높이고 있다.

GTX는 국가 기간 교통망 구축이라는 국책사업의 하나로 특정 아파트 주민 반발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설계나 노선 변경을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책사업 특성상 오랜 시간을 두고 전문가 숙의를 거쳐 연구와 용역이 이뤄졌다고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은마 주민들이 국토부가 아닌 정의선 회장과 현대건설을 시위 대상으로 삼은 속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사안의 특성을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객관적이고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국토부를 상대로 설계 변경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할 때, 브랜드 이미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민간 건설사와 그 오너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여론 조성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자료사진. 사진=연합뉴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자료사진. 사진=연합뉴스

국토부는 GTX-C 노선이 은마아파트 단지를 관통하긴 하지만, 굴착 구간의 깊이와 시공 방식을 감안할 때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취재를 종합하면 GTX-C 은마아파트 구간의 굴착 깊이는 지하 60m이다. 굴착 방식도 폭약을 사용하지 않는 TBM 공법을 채택해 발파에 따른 안전 문제 발생을 차단했다. 

반면 주민들로 구성된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는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국토부가 말한 공사 안전성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선 변경을 요구하는 은마아파트재건축추진위원회는 지난달 11일 (사)한국터널환경학회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GTX-C 노선의 삼성-양재역 구간 직선 연결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기존 GTX-C 노선(은마아파트 관통) 변경의 당위성을 거듭 주장했다.

이 단체는 정부안대로 은마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는 우회 노선을 강행할 겅우 추가 공사비로 250~500억원 가량의 국가 예산이 낭비될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달 초 "GTX-C 삼성역-양재역 구간 직선 연결은 구조 안정성을 고려할 때 적절치 않다"며 삼성역에서 은마아파트를 경유해 양재역으로 이어지는 기존 우회 노선을 변경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국토부와 주민 단체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우선협상대상자 지위에 있기 때문에 실제 물적 손해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다만 시공사로 확정된 이후에도 주민 반발로 공사가 기약없이 지연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현대건설의 재정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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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마아파트 지하를 관통하는 국토부 노선안(아래)과 삼성-양재 직선연결을 주장하는 은마재건축추진위 주장안(위). 사진=은마재건축추진위

 

수도권 숙원사업 'GTX-C'... 반대 외치는 은마 주민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22일 총 4조3857억원이 투입되는 GTX-C 노선 시설사업 기본계획을 고시했다. 경기 양주 덕정부터 수원역까지 74.8km 구간을 새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지하 40m 이상 대심도에 터널을 뚫어 최고시속 200km급 고속열차를 운행, 수도권 인구의 출퇴근 불편을 덜고 서울의 주택 과밀화 현상을 해소하겠다는 데 방점이 찍혔다. 사업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인근 수도권 주민의 출되근 시간이 30분 대로 줄어든다. 

전체 노선 중 삼성-양재역 구간에서 은마아파트 지하를 지나도록 설계돼 있다. 이를 두고, 국토부와 은마재건축추진위 입장이 크게 갈린다. 국토부는 해당 구간을 최단거리로 직선연결하는 방안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가장 큰 이유는 삼성역의 구조적 안정성이다. 삼성역은 GTX-A와 C노선이 경유하는 거점이다. 두 노선이 안정적으로 상하 교차하려면 역 전후로 일정 거리가 확보돼야 하므로 직선 연결은 어렵다는 것이 국토부 입장이다.

은마재건축추진위는 (사)한국터널환경학회 등 일부 단체의 의견을 바탕으로 직선 연결이 충분히 가능한데도 국토부가 이를 수용치 않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 시장경제DB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 시장경제DB

 

난감한 현대건설... 은마 주민 '시위'에 가처분까지 

문제의 본질이 노선 변경에 있는만큼 갈등 해소를 위한 주체는 국토부와 은마 주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와 관할 구청을 광의의 이해관계자라고 볼 여지도 있다. 시공사는 이 사안에서 논의의 주체가 될 수 없으나 현실은 다르다. 

은마재건축추진위는 지난해 말부터 국토부 세종청사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 회장 자택 앞에서 벌어진 시위는 한달 여 동안 이어졌다. 보다못한 현대건설과 한남동 주민 대표 등은 '시위금지 및 현수막 설치 금지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고, 해당 재판부는 신청을 인용했다.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정 회장 자택 반경 100m 이내 확성기 사용과 250m 이내 비방 현수막 설치가 금지됐음에도, 은마추진위는 금지범위에서 약 10m 벗어난 장소로 이동해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현대건설에 이처럼 '분노의 화살'이 날아든 배경에는, 추진위 측이 제기하는 '음모론'이 존재한다.  

추진위는 “당초 계획보다 수 백억원 이상 더 소요되는 GTX-C 공사 노선은 특정 건설사의 이익 부풀리기”라며 현대건설을 겨냥했다.  그러면서 "GTX 노선은 당초 은마아파트를 관통할 공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순이 생긴 것은 국책사업을 계기로 재건축 시장에 뛰어든 특정 건설사 때문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은마재건축추진위의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음모론을 양산해 애꿎은 건설사에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공사기간이 늘어날수록 떠안아야 하는 손해 규모가 커지는 건설사의 '약점'을 이용해, 회사를 볼모로 잡으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자신의 SNS를 통해 “‘집 한 채의 만분의 일의 지분’을 가진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 관계자의 근거 없는 선동 때문에 매일 서울로 출퇴근해야 하는 30만 수도권 주민의 발을 묶어 놓을 수는 없다”면서 “단순히 아파트 지하에서 터널공사를 한다는 것만으로 위험하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 장관은 “재건축은 해야 하지만 GTX가 내 발밑으로 지나가서는 안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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