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배터리 찾아라"... 전영현의 '세 번째' 도전 [줌人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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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배터리 찾아라"... 전영현의 '세 번째' 도전 [줌人CEO]
  • 최유진 기자
  • 승인 2024.01.0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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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전영현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
LG→삼성, 반도체→배터리 '이색 이력'
'D램 설계 전문가'에서 '글로벌 배터리 CEO'
17년 SDI 대표 임명 뒤 'NCA' 배터리 채택         
'프리미엄 배터리' 시장서 브랜드 인지도 확보  
SDI 재임 6년간 영업익 -9천2백억 → +1조8천억  
시장 읽는 안목 탁월... 미래 먹거리 발굴 '적임자' 
전영현 삼성전자 신임 부회장. 사진=삼성SDI
전영현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 단장 부회장.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으로부터 ‘미래 먹거리 발굴’이란 특명을 받은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 단장(부회장)은 한양대 졸업 후 KAIST에서 전자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반도체 엔지니어를 꿈꾼 그의 인생은 세 차례 큰 변곡점을 맞는다.

전 부회장의 첫 직장은 SK하이닉스의 전신 LG반도체였다. 1991년 D램 설계 연구원 입사해 약 10년간 일했다. 그는 세계 최고 속도를 구현한 ‘램버스D램’ 설계 권위자로 미국과 중국 기업의 영입 표적이었다. LG반도체를 이끌었던 구본준 사장은 그를 특별히 아꼈다.

첫 번째 변곡점은 IMF로 인한 이른바 ‘빅딜’이 계기가 됐다. 1999년 정부 주도로 대기업 사업 맞교환(빅딜) 정책이 시행되면서 그는 삼성전자 메모리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전자는 D램 설계 엔지니어 '전영현'을 글로벌 반도체 산업 최고 경영자로 성장시켰다.

그의 설계 노하우는 삼성전자에서 꽃을 피웠다. D램 설계팀장과 개발실장을 거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 팀장으로 글로벌 시장 동향을 익힌 그는 삼성전자 입사 14년 만에 메모리사업부 사장에 올랐다. 외부 인재에 개방적인 삼성이지만, 경쟁기업 엔지니어 출신의 사장 임용은 이례적이었다.

그만큼 그가 일군 성과는 눈부셨다. 그는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 진교영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 사장 등과 함께 삼성의 반도체 전성시대를 연 주역 중 한명으로 기억된다. 진교영 사장이 칩 소형화와 집적화에서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견인했다면, 전 부회장은 메모리 연산 및 정보처리 속도에 있어 삼성의 '초격차'를 실현했다.
 

반도체에서 배터리로... SDI에 ‘초격차 DNA’ 이식

'영원한 반도체 맨'으로 남을 것 같았던 그의 인생은 2017년 2월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에 발탁되면서 새로운 길로 들어선다. 두 번째 변곡점이다. 그가 삼성SDI 새 수장에 오른 시점, 현실은 암울했다.

직전해 불거진 스마트폰 배터리 화재 이슈는 회사의 대외신인도에 깊은 내상을 남겼다. 전기차용 이차전지와 ESS(에너지 저장 장치)용 배터리 사업에 초점을 맞춘 포트폴리오 전략도 발걸음이 무거웠다. 중국 당국의 해외 배터리 기업 규제 방침에 회사는 효과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글로벌 경쟁기업과의 수율 및 원가 격차는 3~5년 수준으로 벌어졌다.

삼성전자에서 건너온 임원들에 대한 조직 내 신뢰도 역시 낮았다. '전자 출신 임원들은 배터리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장기투자에 인색하다'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반도체를 운명의 업으로 삼아 보기 드문 성공을 일군 그였지만, SDI에서 받아든 도전 과제는 이전의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이제 그는 '배터리 맨'이 돼야 했다. 사람도 시장도 환경도 전혀 다른 그곳에서 6년.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거치면서 그는 '기적'을 연출했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으로 글로벌 현장을 누빈 경험이 매우 큰 자양분이 됐다. 반도체 전성시대를 열어젖힌 '초격차' 마인드와 경험을 임직원과 공유하면서 내부에 깔려 있던 열패감을 씻어냈다. 반도체에서 배터리로 종목이 바뀌었을 뿐 시장을 읽는 그의 눈은 정확했다.

그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 기술 동향과 메이저 완성차 기업들의 니즈를 꿰뚫어 봤다. 그의 결정은 파격적이었다. 회사의 주 생산품목인 이차전지 양극재 구성을 기존 'NCM'(니켈·코발트·망간)에서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로 변경한 것이다.
 

'NCA' 배터리 상용화... ‘프리미엄 시장’ 주도권 선점

양극재(Cathode)는 배터리 원가의 40%을 차지하는 핵심 소재로, 2017년만 해도 3원계 배터리 양극재는 NCM 조합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양극재 조합의 차이는 배터리 성능 5대 지표인 ▲주행거리 ▲출력 ▲수명 ▲안정성 ▲가격을 결정짓는다. 

구체적으로 ‘니켈’(N)은 에너지밀도(출력), 코발트(C)는 안정성과 배터리 수명 및 주행거리, 망간(M)은 코발트 대체재 혹은 강화재, 알루미늄(A)은 출력 보조 소재로 각각 사용된다. NCA의 두드러진 특징은 뛰어난 출력 성능에 있다. 망간 대신 알루미늄을 채택해, 3원계 배터리 가운데 가장 높은 출력을 보장한다. NCA 배터리가 전기차 중에서도 프리미엄 모델에 탑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망간을 제외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열 안정성이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삼성SDI는 차별화된 배터리 패키지 구조 설계 기술과 특수 코팅 기술을 적용, 냉각효율을 대폭 높이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해소했다. 그러면서도 제조 원가를 기존 NCM 수준으로 낮춰 가격 경쟁력을 유지했다. NCA 채택 후 삼성SDI는 후발주자 한계를 뛰어넘어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 주도권을 선점했다.

전 부회장이 대표로 재임한 5년간 삼성SDI 연매출은 5조2008억원에서 13조5532억원, 영업이익은 -9263억원에서 1조675억원으로 눈에 띄게 개선됐다. 전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있던 지난해 연매출은 20조1241억원, 영업이익은 1조808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 부회장의 대표 시절을 기억하는 삼성SDI 관계자는 "회사 내에서 ‘초격차’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사용하셨다"며 "삼성SDI 기술력의 토대를 다진 인물"이라고 회고했다.

전 부회장 대표 취임 후 5년간 회사는 꾸준히 연구개발비를 늘렸다. ▲2017년 5270억원 ▲2018년 6047억원 ▲2019년 7125억원 ▲2020년 8683억원 ▲2021년 8776억원 등이다.
 

반도체, 배터리 분야서 ‘초격차’ 달성... AI, 헬스케어 분야 주목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 단장 임명은 그의 세 번째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도전의 DNA가 이번에도 구현된다면, 그것이 AI이든 로봇이든 혹은 헬스케어이든 시장의 예상을 넘어서는 파격 내지 혁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반 박자' 빠르게 시장을 읽는 그의 안목을 고려한다면, 반도체와 배터리, 디스플레이에 이어 삼성의 미래 30년을 먹여 살릴 네 번째 주력 포트폴리오가 그의 손에서 꽃 피울 수도 있다. 어느덧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된 그의 새로운 도전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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