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서 중심주의' 냉소 가득... 삼성 이재용 결심 공판기 [시경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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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조서 중심주의' 냉소 가득... 삼성 이재용 결심 공판기 [시경pick]
  • 유경표 기자, 김호정 기자
  • 승인 2023.11.28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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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1심 공판 마무리
3년2개월간 106회 공판... 증인만 수백명
시세조종, 회계분식 실체 놓고 매주 공판
유죄 입증 위한 결정적 증언 끝내 안 나와
檢 핵심 논리 '합병 시점 선택설' 입증 미진
"檢 조사과정서 일부 참고인에 고함... 조서 수정 거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은 기존 제출 증거와 수사기록을 정리·요약하는데 중심을 뒀다면, 변호인은 공판에서 새롭게 발견된 증인 진술에 근거해 이 사건 공소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 전직 검찰 간부 출신 A변호사.
 
17일 끝난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 사건 1심 결심 공판을 지켜 본 전직 검찰간부 출신 변호사 A는 이날 재판을 총평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런 답을 남겼다. 그의 말처럼 이날 검찰은 수사기록 등 서면증거의 효력을 강조하는데 프레젠테이션 시간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공소사실을 쟁점 별로 나눠 검찰 증거의 증명력을 탄핵하는데 집중했다.

이를 위해 변호인단은 앞선 공판에 나온 증인 진술을 수시로 인용하면서, 검찰 공소사실이 팩트에 부합하지 않거나 혹은 막연한 추론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날 양측의 공방 중 가장 눈에 띈 장면은 변호인 최후 변론과정에서 나왔다.

“검찰은 이 사건 법정 증인들이 수사 과정에서는 진실을 말했지만 법정에서는 삼성이라는 영향력 때문에 사실대로 말을 못했다며 수사 과정에서 나온 증인 진술을 실체적 진실로 믿고 판단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사건 1심 공판은 2020년 9월 기소 이후 3년 2개월간 총 106차례 열렸다. 그만큼 많은 증인이 법정에 출석해 신문에 응했다.

흥미로운 것은 검찰이 신청한 증인 신문에서도 공소사실과 배치되는 증언이 적지 않게 나왔다는 사실이다. ‘공판중심주의’ 원칙상 재판부에 제출된 물적 증거보다는 증인 신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사실은 검찰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이 ‘삼성의 영향력’ 운운하면서 증인 신문의 증명력을 폄하하는 태도를 보인 밑바탕에는 이런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시장경제DB

 

檢 "법정 증인 삼성 영량력에 눈치 봐... 신문조서 진술 믿어야"

검찰이 공판 증인들의 법정 신문보다 수사 과정에서 작성된 신문조서를 더 신뢰하는 듯한 모습은 이날 공판에서 자주 목격됐다. 다음은 검사의 공소사실 설명 중 일부. 

“이 사건 중요 참고인들의 (검찰) 진술과 증거를 종합하면 이건희 선대회장 와병 이후인 2015년 미전실(옛 삼성 미래전략실)은 매일 매일의 주가를 미리 예측한 뒤 합병비율 산정에 있어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 합병을 추진했다. 이재용 회장은 제일모직 대주주라는 점을 이용, 삼성물산 주식을 헐값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그룹 지배권을 몰아줬다."

“미전실은 제일모직 상장 직후 합병 준비에 착수하면서 주체와 일정 등 구체적 내용을 검토했다. 미전실은 자문사들과 함께 회사가 수행해야 하는 실무 목록을 만들어 하달했다. 거래 명분, 합병비율 이슈 관련 검토보고서도 작성했다. 2015년 4월까지 합병 검토한 한OO, 최OO은 검찰 조사에서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 등에 대해서는 검토 안했다고 진술했다.”

과거 형사 재판에서의 유무죄 판단은 법정이 아닌 검사실 혹은 조사실에서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 작성 신문조서의 증명력은 법정에서 당사자가 그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능력을 상실했지만, 검찰 조서는 사정이 달랐다.

검사 작성 신문조서는 당사자의 내용 부인 혹은 번복 여부와 관계없이, ‘조서 기재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특신상태)에서 행해졌음이 증명된 때‘는 증거능력을 가졌다. ‘검찰 조서 중심주의’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고인의 재판을 받을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이 형해화되는 폐단이 커지면서 공판중심주의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1월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으로 형사 재판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검사 작성 신문조서도 법정에서 당사자나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한 때에만 증거능력을 갖는 것으로 조문이 개정된 것이다(형사소송법 312조 1항).

공판중심주의 아래서 법관은 수사기록에 따른 심증 형성 등 영향 없이 오로지 법정에서 직접 듣고 확인한 증언과 증거만을 토대로 유무죄 판단을 한다. 같은 법리에서 검사 작성 신문조서의 증명력은 상당한 제한을 받는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검찰이 증인 신문의 내용이 아니라, 피의자·참고인 신문조서에 의지해 이 사건 공소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

 

"檢, 회계사 조사 과정서 고함질러... 수정도 안 해줘" 

변호인도 이런 점을 지적하며 검찰 논리 전개의 빈틈을 공략했다. 이 부분 변호인 변론 발췌. 

“검사는 수사 과정에서 관련자가 진실을 말했으나, 법정에서는 ‘삼성’이라는 영향력 때문에 사실대로 말을 못했다. 그래서 수사 과정서 작성된 진술조서를 실체적 진실로 믿고 판단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자.

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의 법정 증언이다. ‘수사관님이 절 세워놓고 20~30분씩 소리지르는 일이 있었고, 그래서 생각한 바를 있는 그대로 진술하기 힘들었습니다’, '수사관께서 새벽 1~2시경에 (조사실로) 올라와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납니다'(이상 증인 조OO 의 증언, 제59회 공판). 

법정에서 선서한 증인이 이런 증언을 바로 검사 앞에서 했고, 당시 검사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다른 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정OO의 법정 증언도 보자. 

‘(검찰이) 조서 수정을 안 해줬다. 의도한 바는 빠지고,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진술조서가 작성돼 있었다. 그 조서 봤을 때 이게 내가 한 말이 맞나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자괴감 생겼다’.

피고인의 적절한 방어권 보장하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있다.”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사진= 시장경제신문 DB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사진= 시장경제신문 DB

 

"이 회장에 유리한 시점 선택해 합병"... "주가 예측 불가능" 

검찰은 이날도 '이 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추진했다'는 이른바 ''합병 시점 선택설'을 전개했다. '미래전략실 주도로 매일 매일의 주가를 미리 예측한 뒤 합병비율 산정에 있어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 합병을 추진했다'는 것이 위 가설의 요지이다.

자본시장법상 합병비율 산정의 '기준 시점'은 합병안을 의결한 '이사회 개최일'이다. 합병비율 산정에 있어 이 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추진했다는 말은 곧, '이사회 개최일'을 예정보다 앞당기거나 혹은 뒤로 미루는 등 일정을 임의로 변경한 사실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이 있었음을 검찰은 입증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되는 증언만 나왔다. 

21년 8월 26일 1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 삼성 미래전략실 파견직원 A(전 삼성증권 IB팀 직원)는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 도모를 위해 이사회 (개최)일자를 앞당긴 사실이 없고, 이를 검토한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 

특히 그는 "장내 주가는 예측 불가능할 뿐더러 그걸 염두에 두고 (이사회) 일정을 만들수도 없다"고 답했다. 

A를 상대로 한 변호인 반대신문 내용은 이렇다.

변호인 : 증인이 보낸 이메일을 보면 '(합병 의결) 이사회 일자'를 고정시켜 놨습니다. 이거 보면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도모하기 위해 이사회 (개최)일자를 앞당겼다는 검찰 주장은 맞지 않는 듯 보이는데.

증인 : 네. 그렇게 검토한 적 없습니다.

변호인 : 증인은 2015년 3월 23일 이같이 이사회 일정 고정해 놓고 주총 일정 앞당기는걸 논의했죠. 이런 사정 보면 장내 주가를 미리 알고 특정인에게 이익을 줄 목적으로 (합병)이사회 일정 조정하려는 의도 없던 걸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증인 : 장내 주가는 예측 불가능할 뿐더러 그걸 염두에 두고 (이사회) 일정을 만들수도 없을 거 같고, 그런 취지에서 (합병 의결 이사회 일자 변경을) 검토한 적 없습니다.

변호인 : 지금 증인이 말한 내용도 그렇고 이메일을 봐도 증인이 스스로 회사별 주가 향방 알 수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장차 삼성물산, 제일모직 주가가 어떻게 될지 미리 알고, 제일모직 (대주주인 이 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만들 목적으로 이사회 일자를 조정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증인 :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검찰, 공소에 유리한 사실만 조사... 불리한 사실은 누락"  

검찰 수사가 ‘답정너’식으로 진행됐다는 반박도 있었다. 변호인단의 최후 변론 중 일부이다. 

“그 외에도 수사과정에서 어떤 일 있었는지 말하겠다. 2015년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서 공시기준 국내 기관투자자 50곳 중 49곳이 찬성표를 던졌다. 삼성물산 주총 참여한 국내 기관 41곳은 전원 찬성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왜 수사과정에서 물어보지 않았나.

해외주주 중 싱가포르투자청 등은 합병에 찬성했는데 검찰은 블랙록, 네덜란드연기금 등 합병 반대 기관만 조사했다. 무엇보다 이 사건 수사기록에는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의견이 없다.

검사님들은 마치 수사과정에서 여러 다양한 의견을 개관적으로 듣고 수사하고 기소했다고 그런 취지로 말했지만, 검사 수사기록을 보면 한쪽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작성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검사는 공판 심리 내용을 외면하고 있다.”

2020년 9월 1일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현직 경영진 11명을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 형법상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건희 선대회장 와병 직후인 2014년 말부터 이재용 회장의 그룹 경영권 조기 승계를 목적으로 옛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추진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 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 산정을 위해 시세를 조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합병의 사후 정당성 확보를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재무제표를 조작, 4조5000억원 규모 회계분식을 행했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삼성은 공짜 경영권 승계를 시도했고, 이를 성공시켰다”며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함께 재판을 받은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에게는 각각 징역 4년6월에 벌금 5억원을,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는 징역 3년에 벌금 1억원을 구형했다. 선고기일은 내년 1월 2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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