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업 정서만 키운 '한화 김동관 RSU' 보도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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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업 정서만 키운 '한화 김동관 RSU' 보도 [기자수첩]
  • 최유진 기자
  • 승인 2024.03.1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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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U 의혹 보도, 스모킹건 없이 '정황'에 무게
'승계 효용성' 검증 미흡... 양도시점, 10년 뒤
김동관, RSU로 얻는 주식 2040년 돼야 '1%'
'배당가능이익' 발생해야 자사주 지급... 비현실적
전문가들 "RSU로 편법 승계? 급여로 주식 사도 의심"
위 이미지는 '기자, 기자수첩, 언론, 신문, 취재' 등의 키워드와 특정매체의 제호를 생성형AI 'POE.COM'에 입력한 뒤 도출된 결과물입니다. 사진=인공지능(AI) 생성.
위 이미지는 '기자, 기자수첩, 언론, 신문, 취재' 등의 키워드와 특정매체의 제호를 생성형AI 'POE.COM'에 입력한 뒤 도출된 결과물입니다. 사진=인공지능(AI) 생성.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 할 때 사람들은 이미 선동돼있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나치즘 맹신자이자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의 말이다. 그는 대중 선동을 위해 언론을 적극 이용했다.

괴벨스의 사례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언론이 되레 여론을 왜곡하거나 심지어 선동하는 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결정적 증거 없이 의혹에 의혹을 덧대는 식의 보도를 쏟아내는가 하면, 의혹을 마치 사실처럼 과대 포장하기도 한다. 일방의 주장 혹은 기자 개인의 주관을 사실로 단정해 '답정너'식 기사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의혹 보도에 걸려든 기업 혹은 기업인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거센 비난을 한몸에 받는다. '사실 무근'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두고두고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며 깊은 내상을 입는다. 

올해들어 재계의 관심은 한화그룹에 쏠렸다. 국내 한 유력 매체의 ‘한화 RSU’ 관련 보도가 발단이 됐다. 

RSU는 회사가 일정 기간 재직하거나, 목표를 달성한 임직원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보상제도이다.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해 이를 임직원에게 제공하거나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주로 쓰인다. 전자의 경우 회사가 정한 기간까지 양도를 제한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화는 2020년 국내 상장사 최초로 RSU 제도를 도입했다.

이 매체는 올해 1월 16일 <한화 장남에 'RSU 389억'… 경영권 승계수단 악용 우려>, <김동관 입사 한달, 성과내기도 전에 주식 보상>이라는 제목의 단독기사 2건을 내보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을 정조준,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후 비슷한 논조의 후속 기사를 10건 넘게 게재했다. 

‘경영권 편법 승계’라는 한 문장은 반기업 정서를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김동관 부회장의 신분은, 속칭 '재벌'에 대한 부정 여론까지 불러냈다.

문제는 이렇게 판을 키울 만한 근거가 있느냐다. 언뜻 보면 합리적 의혹 제기로 비치지만, 실체적 진실을 따져보면 'RSU를 받은 만큼 김동관 부회장 보유 주식이 늘었으니 동 제도를 승계에 이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RSU가 승계 수단으로 적절한지에 대한 검증은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김 부회장은 RSU 제도를 통해 2020년부터 4년간 그룹 지주사인 (주)한화 주식을 0.3% 확보했다. 다만 이 주식은 바로 부여되지 않는다. RSU를 받은 시점부터 10년간 회사가 쥐고 있다가, 김 부회장에게 지급하는 조건이 걸려있다. 김 부회장은 2020년 처음 RSU를 받았지만, 실제 주식이 그에게 양도되는 시점은 2030년이라는 의미다. 2034년은 돼야 그동안 받은 0.3% 주식을 모두 회수하는 셈이다.

이런 속도로 RSU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김 부회장은 2040년이나 돼야 한화 주식 1%를 얻을 수 있다. 한화그룹의 경영권 승계 절차가 끝나고도 남을 시간이다. 의혹 제기가 현실성이 없다는 점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그나마도 모든 변수를 차단한 가정이다. 회사 실적이 부진해 '배당가능이익'이 발생치 않는다면, RSU를 통한 자사주 지급은 할 수 없다. '배당가능이익'은 RSU를 통한 자사주 지급의 전제요건이다. 

다른 편법과 엮기도 어렵다. RSU를 특정인에게 몰래 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사회 동의 절차를 거쳐야만 지급이 가능하다. 지난해 말부터는 RSU 지급 현황이 의무 공시 대상에 포함됐다. RSU로 벌어들인 수익의 절반 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점에서, 경영권 승계 도구로서의 효용 가치도 의문이다. 

일반적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 해당 이슈를 오랜기간 연구하거나 관련 직역에 상당기간 몸담은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치곤 한다. 이번 취재에서 기자는 전문가들로부터 적잖은 핀잔을 들었다. 표현은 정중했지만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왜 물어보냐”는 쓴소리가 여러 곳에서 나왔다. “악용 가능성이 아예 없는 제도가 어디 있겠냐”며 기자의 질문을 일차원적이라고 몰아세우는 취재원도 있었다.

“RSU가 아닌 급여로 회사 주식을 매입해도 비슷한 의혹이 나왔을 것”이라며 언론이 기업과 기업인을 지나치게 색안경 끼고 바라본다는 우려도 나왔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우문에 현답이었다.

명함 한 장으로 기자라는 신분을 얻는 시대가 됐다. 동시에 대기업 통솔자에게 질문할 정당한 권한도 주어진다. 그렇기에 언론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져야만 한다. 한 편에 치우친 기사는 비록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고 해도 선동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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