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뱅크런' 보다 무서운 '뱅크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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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뱅크런' 보다 무서운 '뱅크탭'
  • 정규호 기자
  • 승인 2023.03.16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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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스마트폰 사용률 세계 1위
SVB 하루만에 55조... 우린 몇분내 가능

세계 최고 수준의 모바일 뱅킹시스템을 보유한 대한민국. 클릭 몇번으로 수십조의 ‘머니 무브’를 보여줄 정도로 디지털금융 파워를 자랑한다. 역설적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뱅크런(Bank Run,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로 한국의 모바일뱅크 시스템이 재조명 받고 있다. 뛰지 않고, 클릭 몇번으로 대규모 예금 인출사태를 발생시킬 수 있는 뱅크탭(Bank Tap)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SVB 파산사태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그중 ‘유동성 위기’는 사실 이견이 없다. ‘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심리가 금융소비자를 조급하게 만들었고 하루만에 55조원이라는 돈이 빠져나가 SVB가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SVB는 부채보다 자산이 더 많다. 자산을 팔아 현금을 마련하는 속도보다 인출 속도가 더 빨랐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다.

한국은 뱅크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SVB의 뱅크런 금액 55조원이 단 하루만에 발생했다면 한국은 디지털금융 덕분에 역설적이게도 몇 시간내 가능하다. SVB와 비슷한 업태일수록 좋은 디지털금융을 보유한 은행은 대규모 인출사태에 취약하게 된다.

현재 국내 5대 은행의 개인‧법인 하루 인출 한도는 5천만원이다. 심사를 통해 최대 5억원으로 늘릴 수 있다. 100만명이 5천만원씩 인출한다고 가정하면 단 몇시간, 빠르면 수십분내에 50조가 빠져나갈 수 있다. 은행으로선 치명적이다.

물론 하루 인출 한도 5천만원을 한계치까지 채우고 있는 금융소비자는 많지 않다. 문제는 공포를 먹고 사는 불신은 어느때보다 금융소비자 마음을 빠르게 삼킬 수 있다는 점이다. SVB사태 역시 그랬다. 불안이 모여 불신을 가져왔다. 한국역시 기업과 개인이 은행으로 뛰어가 1일 인출 한도를 조정하고 이체를 진행하면 뱅크런과 뱅크탭이 동시 발생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과점을 해소하기 위해 올 상반기안으로 추진하겠다는 대환대출플랫폼 역시 뱅크런, 뱅크탭을 폭발시키는 심지가 될 수 있다. 대환대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이 결합됐을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는 것이다. 

SVB사태에서 우리가 주목하지 않은 점이 있다. SVB사태가 일어난 장소가 바로 세계 기술의 결집소인 ‘실리콘밸리’라는 것이다. 금융은 기술을 만나 더 안전하고, 더 간편하게 돈을 움직인다. 이것이 ‘디지털 금융’의 핵심이다. 발전의 열매는 달지만 뒤탈은 몇십, 몇백배로 온다는 점을 충분히 고민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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