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놀자 '면책약관' 갑질 논란에... "입증책임 전환" 요구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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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놀자 '면책약관' 갑질 논란에... "입증책임 전환" 요구 목소리
  • 최유진 기자
  • 승인 2022.09.1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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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관 면책조항 통해 책임 회피" 지적
시스템 장애 등 의심사례 발생해도 배상 어려워
회사 고의·중과실, 이용자가 입증해야
전문가 아니면 사실상 입증 불가
미국·유럽 입증책임전환제 도입
기업이 책임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사진=야놀자 홈페이지 캡처
사진=야놀자 홈페이지 캡처

#.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 일정을 꼼꼼히 계획한 A씨. 숙박업소를 예약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야놀자’ 앱을 켰다. 주변에서 듣자하니, 숙박 예약 플랫폼으로는 야놀자가 국내 점유율 1위라고 한다. 미국 나스닥 상장을 준비한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언젠가 TV에서 봤던 야놀자 광고가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이 정도 회사라면 숙소 예약이 꼬일 걱정은 없겠지.” 그러나 야놀자에 대한 A씨의 신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배신감으로 바뀌어 돌아왔다. 

앱에서 ‘예약불가’로 표시된 숙소가 실제로는 예약이 되었던 것. A씨는 이미 정상적으로 예약을 완료했던 다른 숙소가 있었기에, 동시에 2곳에 숙박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부랴부랴 야놀자측에 전화해 환불을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황당한 답변에 말문이 막혔다. “환불은 어려우시구요. 우리 회사 서버 오류가 원인이라는 증거 보내주시면 고려해 보겠습니다 고객님.”   

위 사례는 숙박 플랫폼 야놀자 이용자의 경험담을 재구성한 것이다. 야놀자가 자사에 유리한 면책약관을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환불 관련 입증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야놀자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 운영사와 고객 사이에 시스템 오류 등을 원인으로 한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그 입증책임을 이용자에게 부담시키는 행태는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비스 접속 장애 등의 사유로 고객과 회사 사이 분쟁이 발생할 때 야놀자 측 기본 입장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책임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배상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때 회사의 고의 내지 중대한 과실 책임 여부는 이를 주장하는 고객이 입증해야 한다. 

야놀자는 이용약관 제26조를 통해 광범위한 ‘면책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회사는 ▲서비스 접속 및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발생한 개인적 손해 ▲전송된 데이터의 오류·누락·파괴 등으로 발생한 손해와 관련돼, 회사나 회사의 임직원, 회사 대리인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인정되는 경우가 아니면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약관을 기준으로 하면 시스템 장애 등의 이유로 다수 고객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 벌어지고, 회사 측 귀책이 인정되더라도 그것이 고의 혹은 ‘중과실’이 아니면 야놀자는 배상 책임이 없다. 법률상 ‘중과실’은 주의의무 위반이 현저한 과실, 즉 약간의 주의만 기울였어도 결과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부주의로 이를 예견하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앞선 사례에서 ‘회사 서버 오류가 원인이라는 증거를 보내 달라’는 고객센터 직원의 안내도 위 약관을 보면 수긍이 간다.
 

전문 프로그래머 아니면 시스템 장애 증명 不可  

야놀자 프로그램 설계에 참여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해당 알고리즘이나 로직을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시스템 장애 등이 추정되는 상황에서 고객이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더라도, 야놀자로부터 배상을 받아내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야놀자 면책약관이 고객 혹은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공정위는 불공정한 약관으로 발생하는 소비자 분쟁과 관련돼 경종을 울리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7월 가상자산 거래소 8곳의 이용약관을 심사하면서 약관법 제7조 2항을 적용, 시정조치 등 처분을 내렸다. 공정위는 ‘거래소 시스템 및 네트워크 오류 등’을 회사가 책임져야 하는 귀책사유로 판단했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7조 2항은 ‘상당한 이유 없이 사업자의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거나 사업자가 부담하여야 할 위험을 고객에게 떠넘기는 조항은 무효’로 본다.
 

소비자단체 '입증책임전환제' 도입 촉구  

기업이 약관을 책임 회피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국내에서도 ‘입증책임전환제도’의 적용 확대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기업이 스스로 책임 없음을 증명케 한다는 점에서 입증책임전환제는 소비자를 한층 두텁게 보호하는 순기능이 있다.

소비자단체들은 광범위하고 모호한 면책조항에 기대, 일반 시민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선 입증책임전환제 적용 확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수년 전부터 ▲집단소송제 ▲징벌적손해배상제 ▲입증책임전환제 등을 포함한 ‘소비자 권익 3법’ 도입을 주장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미 오래전부터 ‘입증책임전환제’를 도입·시행 중이다.

숙박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아직 소비자 권익 3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환불 입증책임이 이용자에게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서도 “기업이라면 법의 테두리만 맞출게 아니라 소비자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놀자가 미국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소비자 보호 정책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소비자 권익 보호에 대한 의식이 훨씬 더 높은 미국에서 야놀자의 현재 약관은 자칫 후진적으로 비춰질 수 있고, IPO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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