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강 '철근값 일원화' 강수... 막내의 반란, 판 흔들까? [시경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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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제강 '철근값 일원화' 강수... 막내의 반란, 판 흔들까? [시경pick]
  • 박진철 기자
  • 승인 2024.01.2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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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향/유통향 가격 '이원화' 미칠 영향 관심
건자회 등 건설업계, '가격 일원화' 꾸준히 요구
한국제강 생산능력 등 볼때 '찻잔 속 태풍' 의견도
건설업계 "공급가 일원화 넘어 기존 인상분 되돌려야"

'막내의 반란'이 판을 흔들 수 있을까? 국내 7대 제강사의 막내격인 한국제강이 철근 시장 관행이었던 철근 가격 '이원화' 정책에 반기를 들면서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다만, 대형 업체의 선도가 아닌 막내의 발걸음이라는 점에서 한국제강의 시도가 '찻잔 속 태풍'에 머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건설사/유통향 철근 가격 '이원화'... 코로나 거치며 상황 '반전'  

철근 제품 사진. 사진=현대제철
철근 제품 사진. 사진=현대제철

한국제강은 이달부터 철근 판매 기준 가격을 일원화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부터 '일원화' 가격 체계를 선제적으로 적용, 거래 혼선을 줄이는 적응 기간을 보냈다. 

철근을 생산하는 제강업계에서는 2021년부터 건설사향, 유통향 철근 판매 가격을 달리하는 이원화 정책을 시행했다. 철근 가격 이원화 정책은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 대형 업체 주도로 시장에 안착했다. 

한국제강은 국내 7대 제강사 가운데 생산능력이 가장 낮다. 그런 회사가 기존 관행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다보니 업계의 눈과 귀는 자연스레 한국제강에 쏠리는 분위기이다. 

한국제강은 일반형강 등을 생산하던 한국특강이 철근 품목 확대를 위한 투자를 단행하고, 2022년 말 철근 시장에 첫발을 들이기 전까지 국내 7대 제강사 중 가장 적은 생산능력으로 막내 역할을 해 왔다. 환영철강공업의 철근 생산능력이 한국제강보다 더 적기는 하지만, 지주사인 KISCO 홀딩스 아래서 한국철강과 함께 묶여있기 때문이다.

대형 제강사들이 주도하기는 했지만, 국내 철근 가격이 이원화된 것은 사실 최근의 일이다. 2011년 건설사와 제강업계 논의 끝에 '철근 기준 가격' 제도가 도입된 뒤 10년간 철근 시장에는 '일물일가' 원칙이 적용돼 왔다. 철근 기준 가격은 생산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철스크랩(고철) 매입가를 바탕으로 산정돼 왔다. 그러나 2021년 상반기 시중 유통가격이 철근 기준 가격을 크게 웃돌면서 제강사들은 가격 이원화 제도를 꺼내 들었다.

한국제강 전경. 사진=한국제강
한국제강 전경. 사진=한국제강

당시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물동량마저 줄어들면서 철근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철근을 구하지 못해 건설 현장이 멈추는 등 이른바 '철근 대란'이 벌어질 정도였다. 

철근 유통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상황에서도 제강사들은 철근 기준 가격 제도를 협의했던 10대 주요 건설사에, 기준 가격대로 철근을 넘겼다. 다만, 유통업체에는 톤당 8만원을 더 받는 정책을 시행했다.  

건설사향과 달리 유통향 판매 가격을 올려 잡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철근 대란'으로 연일 유통가격이 상승하면서 한때 톤당 140만원을 넘길 정도로 철근 가격이 뛰어오른 데다, 기존 재고의 매입 가격과 판매가격 차이로 유통업체들의 상당한 이익이 기대됐기 때문이다. 다만, 제강사와 직접 거래를 할 수 없던 중소 건설사들은 철근 구매 가격 부담도 함께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끝 안 보이는 철근價 약세... 이원화 근거 '퇴색' 주장도

코로나 팬데믹 속에 급격히 올라갔던 철근 가격은 약세로 돌아섰다. 현재 유통향 판가는 건설사 공급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말 톤당 100만원 선이 무너진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톤당 80만원 선도 위태롭다. 

국산 철근 기준 가격 추이. 사진=시장경제 DB
국산 철근 기준 가격 추이. 사진=시장경제 DB

코로나 팬데믹 기저효과가 끝난 데다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부실 우려 등으로 철근 최대 수요처인 건설 경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반짝 감소했던 수입 철근의 국내 잠식이 다시 본격화한 데다, 중국과 일본에 더해 베트남산까지 저가 경쟁을 펼치고 있어 국내 철근 가격 약세는 상당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유통향 판가가 건설사향 판가를 밑도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철근 가격 이원화 정책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건설업계 "철근 가격 일원화" 넘어 "가격 재조정" 압박 

그동안 건설업계에서는 대한건설사자재직협의회(이하 건자회)를 중심으로 철근 가격 '일원화'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지난해 11월 말 대한건설사자재직협의회(건자회)는 철근 가격 이원화 정책 철회 등의 내용이 담긴 공문을 제강사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건설업계는 이원화 정책 철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철근 공급가 자체의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제강업계는 2022년 2월(+2만9천원)과 2023년 4월(+1만5천원) 철스크랩 가격 외에 기타 원부자재 가격 인상을 이유로 철근 가격을 올렸다. 2022년 2월에는 망가니즈와 바나듐 등 합금철 가격 상승을, 2023년 4월에는 LNG 등 에너지 비용과 물류비 상승을 각각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현재는 더 이상 인상 이유가 없다는 것이 건설업계 논거이다. 실제 분기 철근 기준 가격 산정 시 30%의 비중을 차지하는 수입 철스크랩(일본산 20%, 미국산 10%)은 한동안 수입이 전무하다.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가 2022년 2월 25일 오전 11시 현대제철 양재동 사옥 앞에서 철근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건자회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가 2022년 2월 25일 오전 11시 현대제철 양재동 사옥 앞에서 철근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건자회

 

제강업계 "일종의 가격 정상화 시도"... "큰 영향 없을 것" 분석도

철근 제품. 사진=동국제강
철근 제품. 사진=동국제강

한국제강의 철근 가격 일원화 방침 선언으로, 건설향과 유통향으로 이원화된 철근 가격 정책이 시행 2년여 만에 전환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철근업계 새내기 한국특강 등 일부 제강사들도 독자적 가격 정책을 시도하는 추세지만, 해당 방침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곳은 한국제강이 처음이다.    

철근업계 한 관계자는 "이원화냐 일원화냐를 떠나 철근 유통가격이 유통향 가격뿐만 아니라 건설사향 가격에도 훨씬 못 미치는 상황에서 이번 시도는 일종의 가격 정상화라고 봐야 한다"면서 "유통가격과 기준 가격의 차이가 톤당 10~20만원에 달하는 현실이 더욱 큰 문제"라고 토로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제강업계에서 한국제강 외에도 독자 가격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형 제강사들의 영향력 속에 주도적 흐름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며 "한국제강의 시도가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쉽게 주도적 흐름을 형성할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철근 최대 생산 기업인 현대제철 관계자도 "(우리 회사의 가격 정책이 있는 만큼) 타사의 가격 정책에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지만, 한때 철근 가격 상승 속에 회사별로 가져갔던 수익을 정상화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미 유통가 자체가 기준 가격에 크게 미달하는 만큼 큰 의미가 있는 정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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