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설립 2년 前 문건을 또 '분식회계' 근거로... 상식밖 증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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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설립 2년 前 문건을 또 '분식회계' 근거로... 상식밖 증선위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2.11.1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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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2차 제재처분 취소 소송 분석
증선위, 삼바 분식 근거로 '맥킨지 보고서' 제시
삼성바이오 설립 2년 전인 2009년 작성
회사 설립 후 업계 기술 진화 전혀 반영 안 돼
시장점유율, 매출, 판매가격 등 모두 '가정'
증선위, 설립도 안 된 에피스 기업가치 6兆 추산
'삼성경영권 공판' 檢도 증선위와 같은 시각 공유
증인 "맥킨지 보고서로 에피스 성공 예측 불가"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시장경제DB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시장경제DB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관련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처분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에서 증선위가 이미 증명력에 의문이 제기된 문건을 거듭 분식 판단의 근거로 제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증선위가 제시한 문건은 2009년 삼바 설립 전 작성된 '맥킨지 보고서'와 '바이오시밀러 사업계획서' 등 두 건이다. 이들 자료는 2009~2011년 초창기 바이오산업 동향을 분석한 문건으로, 삼성바이오 설립 후 실제 시장 상황과 간극이 상당하다. 바이오산업 초기, 1세대 복제 의약품 시장을 기초로 문건이 작성돼 삼성바이오 설립 후 시장을 장악한 2세대 바이오시밀러 현황을 전혀 반영치 못한 것이 대표적 예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위 두 문건을 토대로 한 증선위의 분식 판단은 부실 내지 졸속 의결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증선위가 이들 문건을 분식 의결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거듭 제시하자, 입증력 부재 내지 증명력 빈곤이란 허점을 노출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유환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증선위 2차 제재처분 취소청구 행정소송'에서 증선위 변호인단은 '맥킨지 보고서'와 '바이오시밀러 사업화계획 보고서'를 토대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맥킨지 보고서'는 삼성바이오 설립 전인 2009년, 삼성이 미국계 컨설팅 기업 맥킨지에 작성을 의뢰한 문건이며, '사업계획서'는 2011년 삼성전자 신규사업부서 직원이 맥킨지 보고서를 참조해 작성했다. 국내외 기업은 미래 먹거리 사업 발굴이나 신규 사업의 타당성 분석 등이 필요할 때 혹은 사업구조 개편 작업 등을 앞두고 있을 때 맥킨지와 같은 컨설팅 기업에 용역을 의뢰한다. 컨설팅 기업은 특정 사업의 시장 동향과 예측 가능한 위험요인, 변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 그 내용을 정리해 보고서를 만든다.

이들 보고서는 문건 작성 시점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 사업 개시 후 현황과는 오차가 발생한다. 기업들은 이런 점을 고려해 컨설팅 보고서를 참고용으로만 활용한다.

앞서 증선위는 2018년 11월 삼성바이오 회계 분식을 의결하면서, 주요 근거 중 하나로 이들 문건을 인용해 신뢰도 논란을 자초했다. 구체적으로 증선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기업가치를 6조원으로 평가하면서 그 근거로 위 문건을 인용했다. 상당수의 자본시장법 전문가와 회계학 전공 교수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그 자회사인 에피스가 설립되기도 전에 작성된 컨설팅 보고서를 기업가치 판단의 근거로 삼은 사실 자체가 상식 밖이란 반응을 보였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2012년부터 8년간 에피스에서 근무한 삼성 직원 A였다. 그는 2011년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에서 근무하면서 '바이오시밀러 사업화계획 보고서'를 작성했다.

 

"맥킨지 보고서, 삼바 기업가치 평가용으로 쓸 수 없어"

A는 바이오시밀러 사업 수익을 전망할 수 있는 시기를 묻는 질문에 "허가 당국의 의사가 중요하며, 제일 확실한 것은 판매허가의 획득"이라고 답했다. 특히 그는 "그 단계에 이르러야만 에피스에 대한 기업평가가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그는 "바이오시밀러 제품군은 1세대와 2세대에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한다"며 "1세대는 대체적으로 성장호르몬 같은 제품이라면, 2세대는 항체를 활용한 복제약으로 7~8배 정도 크기가 크고 DNA 구조도 복잡해 생산과 공정개발 모두 어렵다"고 진술했다.

A는 맥킨지 보고서가 안고 있는 한계도 설명했다. 그는 "보고서 작성 당시에는 2세대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며 "에피스에 대한 투자방식이나 규모, 바이오시밀러 제조방식 등도 정해진게 없었던 시기"라고 증언했다.

이어 그는 "맥킨지 보고서에 기재된 판매가격이나 시장점유율, 매출액 등은 '가정'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높다"고 말했다. A는 "2세대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아 에피스 예상 매출을 도출할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자료가 전무했다"며 "검찰 조사에서도 에피스의 중장기 사업계획서로는 성공가능성을 도출할 수 없고, 가치평가 용도로도 쓸 수 없다고 진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A의 진술은 증선위 주장과 상반된다. 증선위 측은 "바이오시밀러는 실패 확률이 매우 낮아 사업 개시 전 작성된 전망 보고서만으로도 기업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며 "바이오시밀러는 임상 1상만 통과하면 성공률이 80% 이상"이라고 했다. 증선위는 이같은 시각을 토대로 "에피스 설립시점부터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 지배력'은 현실화 됐으며, 처음부터 바이오젠과 삼바가 에피스를 공동지배하는 것으로 봤아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편집자주]

삼성바이오 분식 의혹 사건의 시작은 18년 11월 증선위의 '고의 분식' 의결 발표였다. '투자자인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 상당 부채를 누락하는 등의 방법으로 4조5000억원 규모 분식을 했다'는 것이 증선위 의결의 주요 내용이었다. 이른바 삼바 분식 의혹은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 사건과 맞물리면서 4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삼바 분식회계 의혹 핵심 쟁점은 '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의 적정성' 여부이다. 구체적으로 에피스를 '단독지배'(자회사 혹은 종속기업)하는 것으로 판단해 연결회계를 적용한 2012~2014년 재무제표와, 동 기업을 '공동지배'(관계사)하는 것으로 판단해 지분법 회계를 적용한 2015년 재무제표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반하는지 여부이다.

두 가지 의혹의 당부 판단에 있어 반드시 살펴야 하는 것이 미국계 글로벌 제약사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의 존재와 동 권리에 대한 법률적 성격이다. 바이오젠은 삼바와 에피스를 합작·설립하면서 초기 지분 15% 외에, 미래 일정시점에 에피스 보유 지분을 최대 ‘50%-1주’까지 높일 수 있는 콜옵션을 가졌다.

검찰과 증선위는 "콜옵션은 존재 자체만으로 경제적 실질을 가지므로, 에피스는 설립 당시부터 삼바의 단독지배가 아닌 삼바·바이오젠 공동지배(관계사·지분법 회계 적용)로 판단하는 것이 맞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증선위는 이같은 논리를 근거로, 삼바의 2012~2015년 재무제표 작성은 위법하다고 의결했다.

학계와 전문가그룹의 입장은 온도차가 매우 크다. 회계학 전문가와 자본시장법 전공 교수 중 증선위 견해에 동조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다수는 증선위 분식 의결의 전제가 된 위 견해에 고개를 가로젖고 있다. 무엇보다 '콜옵션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논리는 콜옵션의 법률적 성격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편견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삼바는 2015년 하반기, 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복제약) 2건이 식약처로부터 국내시판허가를 받자 에피스 지위를 종속기업에서 관계사로 변경하고, 연결회계가 아닌 지분법 회계를 적용했다.

삼바 측은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의 지배력 현실화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경제적 실질=내가격)을 충족한 이상 에피스를 더 이상 종속회사로 보는 건 적절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증선위 분식 의결에 대해 전문가들이 지적한 사항은 ▲법인 설립 직후 연구개발 실적이 전혀 없는 기업의 가치를 6조원 이상으로 평가한 행위 자체가 모순이라는 점 ▲에피스 설립 후 2015년까지 바이오젠이 에피스 증자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점 ▲증자 불참으로 바이오젠 지분율이 최초 15%에서 8.8%까지 떨어진 점 ▲에피스 대표이사는 물론이고 사내이사 5명 중 4명에 대한 선임권을 삼바 측이 행사한 점 ▲바이오젠이 매년 나스닥을 통해 에피스 경영권은 삼바 측이 갖는다는 점을 공시한 점 등이다.

증선위가 분식 의결을 하기 전까지 보인 행태 역시 석연치 않다. 일부 반기업 성향 시민단체가 분식 의혹을 제기한 시점은 2015년 5월이다. 당시 야당 일부 의원이 이같은 의혹에 동조하면서 금융감독원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차례에 걸쳐 삼바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감리를 실시했다.

1차 감리를 맡은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중요성 관점에서 위법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금감원이 실시한 2차 감리 결과는 '지분회계를 적용한 15년 재무제표 작성은 위법'으로 정리됐다. 그러면서 '12~14년 사이 연결회계 적용은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사안으로 위법이 아니'라고 했다. 금감원은 3차 감리에서 다시 입장을 번복해 '2012년부터 지분법 회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16년 말, 이 사건 의혹을 최초 제기한 참여연대 요구를 받아들여 회계학 최고 전문가들이 참여한  ‘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는 금융감독원, 한국회계기준원, 한국공인회계사회, 대형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삼바 회계담당자, 회계학 전공 교수 2명 등이 참여했다. 금감원은 회의가 끝난 뒤 참여연대에 ‘삼성바이오 회계처리는 적법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냈다.

 

증선위의 오판, 임상 1상 통과하면 사실상 개발 성공? 

'임상 1상만 통과하면 사실상 개발에 성공한 것'이란 증선위 시각은 현재 진행 중인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 공소유지를 맡고 있는 검찰의 그것과 일치한다. 검찰 역시 같은 논리를 앞세워 삼바 분식을 의결한 증선위 판단을 지지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관한 국내외 논문 초록을 검색하면 임상 1상을 통과한 바이오시밀러 후보물질 10건 중 4건은 최종적으로 개발에 실패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연구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바이오시밀러 개발 성공율은 48~62% 수준이다.

바이오시밀러는 임상2상 단계를 거치지 않지만 일반 신약과 같이 前임상-임상1상-임상3상 단계를 경유한다. 바이오시밀러 개발은 해당 국가 정부로부터 '시판허가'를 받아야 비로소 '완성' 내지 '성공'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판사 출신 변호사 "콜옵션 행사 전 바이오젠은 소수주주" 

콜옵션 지배력 현실화에 대한 증선위 판단과 다른 증언을 한 인물은 A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이 사건 증인으로 출석한 전 서울지법 판사 출신 B변호사는 "법률적 견해로는 2012~2014년 삼바가 에피스를 단독지배한 것이 맞고, 삼바 측 재무제표는 적법하게 작성됐다"고 말했다. B변호사는 "콜옵션 행사 전 바이오젠은 소수주주였다"며 "공동지배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B변호사는 에피스 설립 초기, 바이오젠이 투자에 인색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바이오젠 입장에서는 사업 리스크를 줄이고 합작법인의 사업 불확실성이 제거된 후, 콜옵션을 통해 에피스 지분 50%를 보유하는 대등주주가 됨으로서, 성공의 과실을 공유하고자 했던 것으로 안다."

그는 '에피스 이사회'를 삼바 측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증언도 했다. 에피스 이사회도 5명 중 4명을 삼바에서 선임했고, 나머지 1명에 대해서만 바이오젠이 지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했다. B변호사는 "소수주주에게 1명의 이사 지명권을 부여하는 것은 '방어권'에 해당할 뿐, 공동지배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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