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심문하랴, 증선위 변론하랴... 삼바수사 검사들 '황당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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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심문하랴, 증선위 변론하랴... 삼바수사 검사들 '황당 행보'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2.01.1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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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삼바행정소송에 檢투입, 공정성 논란
법무부, 이재용 수사검사 3명 '소송수행자' 지정
수사검사들, 12일 재판부터 증선위 측 변론 합류
삼성바이오 변호인단 "재판 공정성 훼손" 반발
재판부 "검사합류 허용... 제도 악용 우려엔 공감"
천재민 변호사 "검찰 스스로 원칙, 관행 파괴"
"변호사 생활하면서 이런 경우 처음 봐"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 10명에 대한 자본시장법 위반 등 의혹 수사와 관련 공판에 참여한 검사 중 일부가, 동 사건 유무죄 판단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증선위 시정요구 취소 청구 사건' 소송수행자로 참여해, 검찰 스스로 절차적 공정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유환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증선위 시정요구 취소청구 소송'에서는 현직 검사 3인이 출석해 증선위측 법률대리인과 같이 피고석에 앉았다. 앞서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해당 검사들을 위 사건 소송수행자로 지정했다. 

삼바 측 법률대리인은 "재판의 적법절차와 공정성을 해치고, 향후 재판 과정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부당함을 강조했다. 검사의 소송수행자 지정과 관련, 법무부에 사실조회 신청을 내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어 “각급 검찰청 검사를 소송수행자로 지정할 수 없음은 현행 법령 취지상 명백하다”며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된 개정 국가소송법 시행령은 '탈 검찰화'의 일환으로 일체의 행정소송 업무에서 검사의 관여를 배제했다”고 덧붙였다.   

삼바 측 변호인단은 “본안사건 수사와 공소유지를 담당한 검사들이 행정소송에 관여해 증인을 신문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행정소송은 고유의 기능과 목적에 맞게 이뤄져야 하는 만큼, 관련 형사사건 공소유지를 위해 (행정소송을) 편법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삼바 측 변호인단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국가소송법을 검토한 결과, 법무부장관의 소송수행자 지정을 제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검사들의 증선위 측 변론 합류를 허용했다. 

이 부회장 등 사건 수사·공판 검사들의 소송수행자 참여가 동 사건 공소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재판부도 공감을 표했다. 재판부는 이런 점을 감안해 증선위 합류 검사들이 제시하는 증거에 대해서는 삼바 측 변호인단에게 충분한 탄핵기회를 부여하고, 증인신문 과정에서 소송지휘권을 적절히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수사' 검사의 소송수행자 참여... 적법성·공정성 의무 위반 논란 

삼성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자본시장법 위반 등 공판 수사·공판 검사들의 증선위 측 변론 참여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같은 행위에 내재된 '위헌성' 때문이다. 

형사 공판은 관련 행정소송이나 민사소송의 결과에 구속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기초사실관계가 동일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행정소송 혹은 민사소송의 판단은 관련 형사사건의 참고자료가 될 뿐이다. 그러나 이는 강학상의 설명이며 현실은 다르다.

기초사실관계가 동일한 행정사건의 심리 결과는 관련 형사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 심증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행정청 처분의 당부가 형사 공판의 핵심 쟁점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 경우 당해 행정사건 재판부의 심리 결과는 피고인의 유무죄를 가르는 유력한 판단 근거가 된다.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 10명에 대한 자본시장법 위반 등 의혹 사건의 출발점은 2018년 11월 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분식회계 의결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바이오 측이 미국 측 투자자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 보유 사실을 은폐, 동 사실을 공시에서 누락하고 그 내용을 재무제표에 부채로 계상하지 않는 방법으로 회계를 분식했다는 것이 증선위 의결의 요지이다. 증선위는 이런 방법으로 삼성바이오 측이 고의 분식을 시도했으며, 분식규모는 4조5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증선위는 재무제표 재작성, 대표이사 등 해임 권고 등의 제재처분과 함께 동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다. 삼성바이오는 같은 달 27일, 증선위 분식 의결에 불복해 ‘시정요구 등 처분 취소 청구소송’과 집행정지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서울중앙지검은 그해 12월 13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삼바 관계사), 삼성물산, 국내 4대 회계법인에 대한 대규모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듬해 2월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를 ‘삼성 수사 전담팀’으로 지정하고 전국 일선 지검과 지청에서 17명의 특수부 검사를 차출, 수사팀을 확대했다. 이후 검찰은 2020년 9월 1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 형법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를 적용, 이 부회장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그해 6월 '10대 3'의 압도적 표 차이로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 중단을 권고했으나 수사팀은 이를 거부했다.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공판과 증선위 분식 의결 취소 청구 사건은 기초사실관계가 같다. 동 행정소송의 객체인 '증선위 분식회계 의결의 당부'는,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을 피고인으로 하는 형사사건의 흐름을 좌우하는 핵심 쟁점이다.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기소는 '삼성바이오가 고의로 대규모 분식을 범했다'는 증선위 의결을 전제로 한다. 검찰의 기소는 여기에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삼성 측이 시세를 조종했다'는 가설을 엮어 완성됐다.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을 의결한 증선위 판단이 위법·부당하다는 행정법원 판단이 나온다면,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검찰 기소는 기초가 무너진다. 즉, 증선위 의결의 당부는 검찰의 공소유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 변수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형사사건 수사와 공소유지에 참여한 검사들이 '증선위 의결 취소 소송'의 소송수행자로 나선 행위는 정당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증선위 의결 취소 청구 사건 재판부가 검사의 소송수행자 참여를 허용하면서도, 국가소송법상의 소송수행자 제도를 공소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 내지 그 위험성에 공감을 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가소송법상 위법 여부에 대한 판단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엄격한 절차적 공정을 요구하는 형사사법절차의 정신을 고려한다면 수사·공판 검사들 스스로 소송수행자 참여를 거부하는 것이 타당하다.

 

"증선위 의결 당부 다투는 소송에 검사 투입, 지나쳐"

지난해 법무부는 국가소송에 대한 통일적 지휘체계 구축을 명목으로, 검찰에 위임한 행정소송 관련 권한을 법무부로 이관하는 내용의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소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했다.

개정 시행령은 그해 8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12월 28일부터 시행 중이다. 기존에는 국가가 당사자 또는 참가인인 행정소송 송무업무를 법무부 장관의 위임을 받은 검찰총장 및 일선 검찰청의 검사장이 수행했다. 반면 개정 시행령은 법무부 장관이 행정소송 전권을 갖도록 내용을 손질했다.  

개정 시행령 6조는 '행정소송사건'의 소송수행 혹은 그 지휘는 원칙적으로 법무부의 직원이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소송수행자 지정권은 법무부장관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 

국가소송법 시행령 개정의 목적이 '탈(脫) 검찰화'에 있는만큼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사건의 소송수행자는 원칙적으로 검사가 아닌 법무부 직원으로 좁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동조 1항 4호, 4항).

문제는 동법 시행령 7조이다. 동조는 '각급 검찰청의 장은 검사 또는 공익법무관을 소송수행자로 지정할 때'라고 표기해, 검사의 소송수행 가능성을 열어놨다. '증선위 의결 취소 청구 사건' 재판부는 동법 시행령의 해석상, 법무부장관이 검사를 소송수행자로 지정하는 행위를 제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삼바 측 변호인단은 '법무부장관의 검사 소송수행자 임명은 시행령 개정의 취지에 역행한다'는 법리를 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업형사사건을 다수 변론한 천재민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국가소송법 시행령 6조에서 규정하는 각 호의 범위를 감안하면, 해석상으로 삼바 분식회계 의혹 사건에는 7조가 적용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법무부가 재량으로 가져가지 않는 이상 기본적으로 검찰청이 관할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증선위 의결의 당부를 다투는 행정소송에서 검사들이 참여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촌평했다.

특히 천 변호사는 "고등검찰청 내부에 행정소송, 국가소송 등 두 가지 영역을 담당하는 검사와 공익법무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삼바 행정소송에 (이 부회장 사건) 수사검사를 내보낸 것은 지나치다"며 "이 사건에 대해서만 기존 업무관행과 원칙을 파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이 같은 경우는 처음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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