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입', 이재용 위한 시세조종 증거라는 檢의 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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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매입', 이재용 위한 시세조종 증거라는 檢의 패착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2.10.06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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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하면 등장하는 검찰 자사주 매입 의혹
17차 공판 이어 65차 공판서도 되풀이
檢 "자사주 매입, 물산 주가 부양 위한 시세조종 해당"
공판 증인들 "자사주 매입, 시세조종으로 본 사례 없어"
"모직 자사주 매입은 공매도 방어 위한 합법적 대응"
'모직 대차 트렌드' 문건 등 檢 주장과 상반된 증거 존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 10명에 대한 자본시장법 등 위반 의혹 사건이 심리 개시 만 2년을 넘긴 가운데, 옛 제일모직이 4400억원 상당의 자사주를 매입, 합병 대상 기업이었던 삼성물산 주가의 인위적 부양을 시도했다는 검찰 추론과 다른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이 적용한 이 사건 혐의는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외부감사법상 분식회계, 형법상 업무상 횡령 등이다. 이 중 핵심 혐의는 시세조종이다. 이건희 전 회장 와병 이후 이재용 부회장 그룹 경영권 조기 승계를 목적으로 제일모직-삼성물산간 합병이 추진됐으며, 이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 산정을 위해 범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 시세조종이 이뤄진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이같은 추론과 상반되는 정황이 발견된다면 검찰 기소에 대한 신뢰도는 훼손이 불가피하다.

검찰은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서 양사 합병안이 통과된 직후 제일모직이 자사주를 매입한 사실을 언급하며, 동 행위를 시세조종 혐의를 입증할 증거 중 하나로 꼽았다. 검찰은 모직의 자사주 매입은 양사 합병비율(모직 1 : 물산 0.35)에 연동돼 물산 주가에도 호재로 작용했으며, 물산 주가가 상승 추세를 지속하면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봤다.

모직과 물산 합병계약상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액이 1조5000억원을 넘으면 합병 자체가 무산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물산 주가 상승에 호재로 작용한 모직의 자사주 매입은 시세조종에 해당한다는 것이 검찰 논리이다.

그러나 15년 7월 양사 주주총회가 합병안을 통과한 직후 쏟아진 증권가 기사는 전혀 다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증권시장 취재기자들은 양사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도 그 금액 합계가 1조5000억원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자본시장법상 상장기업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려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했다. 하나는 합병안 표결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주총 개최 전 반대 의사를 서면으로 제출해야 하며, 두 번째는 실제 주총장에 참석해 반대표를 행사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한 주주만 주총 후 3주 안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같은 사실에 비춰볼 때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주주와 그 주식규모는 사전 파악이 가능하다.

당시 사안을 취재한 증권 담당 기자 대부분은 합병 반대 주주들이 행사할 주식매추청구권 규모가 양사 계약상 합병 취소 요건인 1조 5000억원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분석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임시주총 후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주주가 늘어날 것을 우려해, 물산 주가의 인위적 부양을 시도했다는 검찰 논리는 부자연스럽다.

사진=홍페이지 캡처.
사진=홍페이지 캡처.
사진=홈페이지 캡처.
사진=홈페이지 캡처.

 

檢 ‘단계별 시세조종’... “모직 자사주 매입도 증거 중 하나”

검찰은 ‘모직-물산 합병’을 이재용 부회장 그룹 경영권 조기 승계를 목적으로 한 핵심 이벤트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등 그룹 주요 계열사에 대한 이 부회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합병을 기획했다는 것이 검찰의 일관된 판단이다. 흥미로운 점은 검찰이 그리는 시세조종의 방법이다.

검찰은 모직-물산 합병을 위한 양사 임시주총 전, 주총 후 반대 주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일까지 두 단계로 나눠 상반된 방식의 시세조종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첫 번째는 양사 임시주주총회가 합병을 의결한 15년 7월17일 이전 시점, 두 번째는 임시주총 의결 직후부터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료 시점까지이다. 

양사 임시주총 전까지는 이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모직 추가는 높이고 물산 추가는 낮추는데 목적이 있었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반대로 물산 주가를 높이는 시세조종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양사 이사회가 정한 모직-물산 합병비율은 1:0.35로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산정됐다. 동 비율에 대해서는 합병에 반대한 엘리엇 등 해외 해지펀드를 중심으로 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주장이 불거졌다.

검찰은 양사 이사회의 합병 의결 이후 국민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주총에서 ‘합병 반대표’를 던지지 않도록, 물산 주가 부양에 초점을 맞춘 시세조종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추가적으로 검찰은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진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그 이후에도 시세조종이 있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모직-물산 합병과 관련된 타임라인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2015년 5월 26일 : 양사 합병비율 산정(1:0.35) 및 이사회 의결 
▶15년 6월 11일 : 양사 주주총회 개최 전, 주주명부 확정  
*기관투자자 중 최대주주 국민연금, 같은 일자 기준 제일모직 주식 4.84%, 삼성물산 주식 11.21% 각각 보유
▶15년 7월 10일 :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 두 회사 합병안건에 ‘찬성’ 방침 결정 
▶15년 7월 17일 : 모직, 물산 양사 주주총회 합병안 통과

검찰이 단계별 시세조종의 유력한 증거라며 제시한 사안이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 이슈이다. 양사는 합병 계약을 체결하면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액 합계가 1조5000억원 이상이면 합병이 취소될 수 있다는 규정을 뒀다.

검찰은 양사 주총 의결 후 물산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가액 아래서 저공비행을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주주가 늘어날 수 있고, 청구권 행사액 규모가 위 금액을 초과하면 합병이 취소될 수 있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이같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모직 자사주 매입' 등 물산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하기 위한 시세조종에 나섰다는 것이 검찰 주장 요지이다.
 

주식매수청구 막자고 시세조종? 檢 논리 어색    

모직의 자사주 매입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관한 검찰 추론에는 몇 가지 허점이 있다. 첫째는 시점의 불일치이다. 물산과 모직 최대주주로서, 기관은 물론 개인투자자들에게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큰손은 국민연금이었다.

양사 합병은 국민연금의 찬반 입장 여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모직-물산 합병안에 대해 입장을 최종 정리한 것은 그해 7월 10일. 시세조종 효과를 극대화할 생각이었다면 주총이 끝난 후가 아니라 국민연금 측이 찬반 입장을 정하기 전, 실행에 옮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연금의 찬반 입장 결정 전 시세를 조종해 합병 반대 여론을 잠재운다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잠재적 권리자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총안 통과 후 주주들의 주식매수충구권 행사를 막기 위해 시세조종에 나섰다는 검찰 논리는 어색하다.
 

상장사 자사주 매입, 시세조종으로 본 사례 없어 

상장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법령이 정한 요건과 절차,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특히 자사주 매입은 '공매도 세력'에 의한 투매, 해지펀드의 적대적 주식 매입 등으로 주가 급락이 예견될 때, 법률이 기업에 부여한 최소한의 방어권이자 대표적인 주주친화 정책이다. 

자사주 매매는 일반적인 매매와 달리 가격이나 범위가 제한된다. 인위적인 주가 상승 등 이른바 주가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자사주 매입은 사전 금융당국 신고가 필수적이며, 그 내역도 전부 공개해야 한다. ‘자사주 매입’을 시세조종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검찰 추론은 증권시장 현실을 무시한 상식 밖의 주장이란 비판이 거세다.

지난달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박사랑·박정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사건 65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삼성증권 직원 A도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을 시세조종의 증거로 보고 있는 검찰 시각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2015년 7월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 업무를 직접 담당한 인물이다.

A는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을 ’주가를 의도적으로 올리려는 거래‘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검찰 질문에 “주식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므로, 어떤 매도나 공급이 있을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직접적으로 검찰 질문을 반박하지는 않았으나 함의를 살피면 그의 증언은 ‘모직 자사주 매입은 시세조종으로 볼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A는 ‘규정과 절차를 준수한 자사주 매입을 시세조종이라고 제재하거나 형사 처벌한 사례를 본 적 있느냐’는 변호인단 반대신문에 “없다”고 답했다.

그의 답변은 지난해 9월 30일 이 사건 17차 공판 증인으로 출석했던 삼성증권 직원 B씨의 진술과 맥락이 같다. B는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 물량이 주가를 변동시킬 수준은 아니었고, '주가 부양'에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일모직이나 삼성물산은 대형 종목이고, 공매도 등 여러 상황에 의해 주가 흐름을 임의로 움직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의심하는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규모는 4400억원 수준이었다. 반면 제일모직 시가총액은 20조원에 달했다. 시가총액과 매입규모를 고려할 때, 물산 주가 부양에 일정 부분 효과가 있었다고 해도 그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檢 시세조종 추론과 상반된 '제일모직 대차트렌드' 문건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을 시세조종으로 볼 수 없는 탄핵증거는 더 있다. 위 B가 2015년 6월 작성한 ‘제일모직 대차트렌드’ 문건이 그것이다. 문건을 보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대차잔고'는 꾸준히 늘고 있었다. 대차잔고는 개인이 공매도 투자를 위해 금융투자사 등으로부터 빌린 주식의 총 물량을 말한다. 대차잔고 증가는 향후 주가의 하락을 예고하는 핵심 지표 중 하나이다.

B는 “엘리엇의 이슈 제기로 제일모직에 대한 대차잔고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에서 '주가 안정'을 위해서는 제일모직 주가 부양 전략이 필요했다”며 “일반적인 주가 부양 전략으로는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상향, 적극적인 기업 IR 등이 있다”고 했다.

검찰은 앞선 65차 공판에서 “고가매수, 단주매매 등은 시세조종에 해당된다”며 증인을 압박했으나 원하는 답변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A는 “매도호가 물량을 소진시켜 주가를 단시간에 끌어올리는 것을 시세조종·물량소진성 거래라고 할 수 있는데, 자사주 매입 당시 제일모직에서 그러한 주문을 낸 적은 없다”고 밝혔다.

‘단주매매’를 둘러싼 검찰 공세에 대해서도 A는 “자사주 주문은 시장가로 낼 수 없고, 호가창이 빠르게 움직인 경우도 없었다”며 “10주나 100주, 또는 5주씩 200번 나눠 주문하는 것도 가능하나, 시세조종으로 문제 삼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삼성물산 사옥 전경. 사진=시장경제DB
삼성물산 사옥 전경.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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