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이재용 공판 7개월... 검찰, '목적'도 '수단'도 입증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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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이재용 공판 7개월... 검찰, '목적'도 '수단'도 입증 못했다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11.12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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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회계·삼성합병 의혹' 공판 중간점검
4월 22일 첫 공판... 춘분(春分) 거쳐 입동(立冬)
檢 "합병 목적은 경영권 조기 승계, 지배력 강화"
"주가 미리 예측해 합병 추진, 조직적 시세조종"
증인들 "합병목적, 시너지 극대화-지배구조 개편"
"주가 예측은 신의 영역... 시스템상 불가능"
증언 대부분, 검찰 공소사실과 상반돼... 혐의 입증 난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올해 봄 시작된 이재용 부회장 등 전·현직 삼성 경영진 10명에 대한 ‘삼성바이오 회계·삼성 합병 의혹’ 공판이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올해 4월 22일 첫 공판이 열렸던 이 사건은 춘분(春分)을 거쳐 입동(立冬)을 지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 재판장 박정제·주심 박사랑) 심리로 매주 열리고 있는 이 사건 핵심 혐의는 크게 나눠 두 가지이다.

하나는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조직적인 시세조종이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 기업 합병의 사후 정당성 확보를 위해 제일모직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재무제표를 조작(분식회계)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 내지 경영권 조기 승계를 위해 옛 삼성 미래전략실 주도로 조직적인 시세조종과 분식회계가 벌어졌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 사건 공소장은 이런 시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검찰이 그린 밑그림에서 경영권 부당 승계는 '목적',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방법', 시세조종과 분식회계는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검찰은 이 사건 공판 시작과 함께 종전의 '시세조종 가설(假說)'에 일부 변화를 줬다.

기존에는 '물산 주가는 낮추고, 모직 주가는 올리는 방식의 시세조종이 이뤄졌다'는 원론적 주장을 폈으나, 이번 공판 들어서는 그 논리구조를 일부 변경했다. '미래전략실 주도로 매일 매일의 주가를 미리 예측한 뒤 합병비율 산정에 있어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 합병을 추진했다'는 것이 수정된 가설의 요지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전경. 사진=시장경제DB
삼성바이오로직스 전경. 사진=시장경제DB

 

증인들 "주가 예측은 신의 영역"... 檢, '시세조종' 입증 사실상 실패 

검찰이 제시한 가설에는 치명적 허점이 있다.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이 정한 방식에 따라 증권시장의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삼성 측이 모직과 물산의 일자별 주가를 예측, 이 부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추진했다'는 가설이 성립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주가 예측은 가능하다'는 명제의 증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법정에 출석한 증인들은 일관되게 "주가의 사전 예측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일부 증인은 "주가를 예측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고 증언해 신문에 나선 검찰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검찰은 '자사주 매입을 통해 시세를 조종했다'는 또다른 가설도 제기했으나 이 또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합병 과정에 참여한 증인들은 한결같이 "우리 금융당국 시스템상 자사주 매입은 관련 법령과 당국의 엄격한 통제를 받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의 시세조종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시세조종 혐의 입증이 난항을 겪으면서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증인신문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목적'에 대한 입증도 사정은 비슷하다. 모직과 물산의 합병이 이 부회장 그룹 지배력 강화 내지 경영권 조기 승계를 목적으로 했다는 검찰 논리에 수긍하는 증언은 찾아보기 어렵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들이 꼽은 합병의 주된 목적은 '양사 사업의 시너지 극대화' 내지 '경쟁력 강화'였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檢 "이재용, 주가부양 위해 골드만삭스 면담"
골드만삭스 관계자 "해지펀드 위협 대응 논의"   

합병의 목적을 ‘이 부회장 경영권 조기 승계’ 내지 ‘그룹 지배력 강화’라고 본 검찰은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삼성 최고 경영진 사이의 면담 사실을 증거로 제시했다. 삼성 측이 골드만삭스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주가 부양 방안’을 논의했으며, 논의의 실제 목적은 이 부회장 그룹 지배력 강화에 있었다는 것이 검찰 추론이다.

삼성 경영진과 골드만삭스 전문가그룹의 면담은 2011년 11월, 2015년 6월 등 적어도 두 차례 이상 열렸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면담 후 이 부회장 경영권 조기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프로젝트G’라고 이름 붙은 문건을 작성, 시세조종과 분식회계 등 범행에 나선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증인신문을 통해 이같은 추론이 사실임을 입증하고자 했으나 이달 4일 이 사건 21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골드만삭스 서울지점 대표 정모씨는 전혀 다른 진술을 했다. 그는 삼성 경영진과의 면담 목적을 묻는 검찰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펀드를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 자문했다. 합병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다.”

특히 그는 삼성그룹이 당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 중에 있었으며 그 목적은 엘리엇 등 글로벌 해지펀드의 위협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있었다고 증언했다. 증인은 엘리엇이 국내 언론에 홍보자료를 배포하면서 여론을 호도하자 삼성 측이 이를 바로잡으려 했다는 진술도 곁들였다.

엘리엇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이전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으로 공시 없이 삼성물산 지분 4.95%를 몰래 매입하고, 합병 발표 이후 2.17%를 추가로 취득해 보유 지분 비율을 7.12%까지 늘렸다. 엘리엇은 계열 펀드를 동원해 물산 주식을 추가 매입하기도 했다. 

그의 증언은 ‘이 부회장 경영권 조기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합병을 추진했다’는 검찰 인식과 상반된다.
 

前 팀장 "해지펀드, 삼성 경영권 위협...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 

삼성의 경영권이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상당히 취약했다는 점은 과거 언론 보도 등 인터넷 자료 검색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합병 이전 이 부회장 등 총수일가의 보유지분은 10.8% 수준에 불과해 경영권 위협 우려가 높았다. 해외 자본이 삼성의 경영권을 직접 위협한  사례도 있다.

2004년 영국계 해지펀드 헤르메스는 삼성물산 지분 5%를 매입, 최대주주의 지위에 올랐다. 삼성SDI가 삼성물산 보유 지분을 기존 4.5에서 7.2%까지 늘리면서 급한 불을 껐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경영권이 해외 해지펀드로 넘어갈 수도 있음을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삼성 경영진이 골드막삭스로부터 자문을 구한 목적도 외부 위협으로부터의 경영권 방어에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여기에 더해 금산분리, 순환출자 제한 등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서 삼성의 경영권 위협은 더욱 가중됐다. 다음은 지난 5차 공판 증인으로 출석한 전 삼성증권 팀장 A의 진술.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분쟁이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기적 시세차익을 얻으려 하거나 경영권을 위협하는 펀드들이 해외에 많아서 최악의 경우 경영권이 넘어가는 위험이 상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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