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선위도 아니라는데... 檢, "이재용 위해 합병비율 조작" 또 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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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선위도 아니라는데... 檢, "이재용 위해 합병비율 조작" 또 무리수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2.03.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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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삼성은 '합병비율 보고서' 조작했나
檢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시점 선택해 합병"
"합병비율 산정 자체가 위법... 회계사 압박도"
"보고서 조작해 국민연금 찬성 표결 유도"
합병비율 기준시점 '이사회 개최일' 변동 없어
'유리한 시점 선택' 검찰 주장 무력화
보고서 '비공식 내부 참고용'... 금융위도 인정
비공식 문건 조작했다는 檢 논리, 납득 어려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편집자주] 삼성전자 전현직 임원 등 11명에 대한 자본시장법 위반 의혹 공판에서 검찰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시세조종 혐의 입증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검찰 시각에서 본다면 모직-물산 합병은 모든 의혹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은 20년 9월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현직 임원과 삼성전자 법인을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 위반,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중앙지법이 심리 중인 이 사건 공판은 앞선 국정농단 사건과 기초사실관계가 같다. 검찰 적용 혐의는 상이하지만 의혹의 출발점을 모직-물산 합병으로 본 검찰의 기본 시각은 동일하다. 다만 '합병비율 산정'에 관한 검찰의 태도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지난 국정농단 사건에서 검찰은 '합병비율 산정' 만큼은 법률이 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됐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 재판부도 불필요한 의혹 제기는 자제하라는 취지의 당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본시장법 등 위반 의혹 공판에서 검찰의 행태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합병비율 자체가 위법하게 산정됐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모직-물산 합병의 사후 정당성 확보를 위해 주가조작과 삼성바이오 분식에 나섰다는 앞선 논리 전개와 비교할 때 다분히 공세적이다. <시장경제>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현재까지 진행된 이 사건 증인신문 분석을 통해, 검찰의 '합병비율 산정 위법성' 관련 논리의 당부를 살폈다.
 

검찰, 합병비율 산정 위법성 입증에 올인
입증 실패 시 공소유지 어려울 수도  

검찰의 전략 변화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이 작명한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 사건 밑그림에는 치명적 허점이 있다. 의혹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 산정이 위법했음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사후 정당성 확보를 위해 주가조작, 분식회계를 범했다는 검찰 논리는 설득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합병비율이 적법하게 산정된 이상, 사후 정당성 확보를 위해 범죄행위에 나섰다는 법리 전개는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국정농단 사건 재판부가 검찰의 관련 주장-합병비율 산정 위법성·주가조작 및 분식 의혹-을 모두 배척한 사실은 이 부분 검찰 논리의 맹점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이 사건 공판에서 검찰은 합병비율 산정의 위법성을 입증하는데 모든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사건 증인신문은 몇 달째 같은 질문과 답변이 반복되는 지루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검찰의 증인신문 질의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표현만 다를 뿐 질문의 초점은 '삼성 측이 의도한대로 합병비율이 산정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검찰은 의혹 입증을 위해 전직 삼성증권 직원들이 주고 받은 이메일, 삼성 측 의뢰를 받아 보고서를 작성한 회계사 등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을 계속하고 있다. 검찰이 이 사건 증인신문을 통해 새로 제시한 논리는 다음의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합병비율 산정 한달여 전부터 삼성 측이 매일 일자별 합병비율을 시큘레이션 한 뒤, 원하는 합병비율을 도출했다.'

②'합병비율 산정과 비슷한 시기, 대형 회계법인 두 곳에 합병비율 적정성 검토 보고서 작성을 의뢰했다.' 

③'위 보고서 작성을 의뢰받은 한 곳(안진회계법인)이 원하는 결과 값을 내놓지 못하자, 삼성 측 담당자가 데이터 조작과 보고서 내용 변경을 종용했다.' 

검찰은 위와 같은 추가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 부회장이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비율 산정이 이뤄졌다'는 결론을 내고, 증인들의 답변을 유도하고 있다. 

검찰의 이같은 전략은 아직 '미완'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법정에 출석한 증인 가운데 검찰이 만족할만한 답변을 내놓은 이는 없다.
 

합병비율 산정 기준시점, '이사회 개최일'
검찰 논리 뒷받침할 '일정 변경' 없어 

위 ①번 의혹은 합병비율 산정 기준 시점인 '이사회 결의일'을 변경한 사실이 없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사실상 무력화됐다. 이 사건 감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한 전 삼성증권 IB팀 직원은“일자별 합병비율을 체크한 것은 시뮬레이션 결과가 바뀌는지 보는 차원에서 일반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합병자문서의 통상업무”라며 검찰 측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주가를 어떻게 바꾸고, 날짜를 어떻게 정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부연했다. 또다른 검찰 측 증인은 동일한 질문에 "미래 특정 시점의 주가를 예측해 조작한다는 건 신의 영역"이라고 답했다.

자본시장법상 상장기업의 합병비율은 최근의 종가, 최근 1주일 주가 평균, 최근 1개월 주가 평균을 각각 계산해 산정하도록 돼 있다. 통설과 판례상 이때 '기준 시점'은 합병비율을 결정하는 '이사회 개최일'이다. 검찰 시각처럼 합병비율을 삼성 측 입맛에 맞게 조작했다면 기준일인 이사회 개최일을 변경한 사정이 존재해야 한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상장법인 합병의 절차와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상장법인의 경우 합병가액은 최근 주가에 의해서만 산정하도록 돼 있다.

'기준 주가'는 최근 거래기간 내 거래 종가를 가중평균해 산정한다. 구체적으로는 최근 일의 종가, 최근 1주일간 평균 종가, 최근 1개월간 가중평균 종가를 산술평균한 값이다(동 시행령 176조의5 제1항 제1호).

지난해 8월 26일 열린 이 사건 1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 삼성증권 IB팀 직원 A는 합병비율 산정을 위한 이사회 개최일은 변경한 사실이 없으며, 동 일자는 변동이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A는 모직-물산 합병가액, 합병비율 산정 과정을 모두 기재한 증권신고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했으며, 동 위원회의 신고서를 검증한 뒤 양사 합병을 허가한 사실도 확인했다. 

합병비율 산정을 위한 기준시점 변동이 없었고, 당시 금융위원회가 모직-물산 합병비율 산정을 검증 후 양사 합병을 허가한 사실을 고려할 때, '이재용 부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추진했다', '물산 주가는 낮추고 모직 주가는 높이는 방식으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검찰 측 논리 전개는 설득력을 인정하기 어렵다.
 

국민연금 합병 찬성 위해
'비공식 참고용 보고서' 조작했다?

위 ②, ③번 의혹 제기가 신뢰도를 인정받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나는 동 보고서가 일반인도 열람이 가능한 공개된 문건이어야 하며, 두 번째는 동 보고서가 공식 문서로서 법적인 효력 내지 공신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이 합병비율 적정성 검토 보고서를 문제삼는 이유는 간단하다. 동 문건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 측의 합병 찬반 표결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으며, 국민연금 측의 합병 찬성 표결을 이끌어 내기 위해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증인신문 결과를 종합하면 삼성 측이 회계법인으로부터 합병비율 적정성 검토 보고서를 전달받은 시점은 2015년 5월 25일 늦은 저녁 무렵이다. 양사 합병비율 산정을 위한 이사회는 이튿날인 26일 열렸으며, 자본시장법 시행령상 '최근일의 종가'는 5월 25일 종가가 된다. 즉 검찰이 문제삼은 회계법인 작성 보고서는 기준 시점을 넘겨 삼성 측에 전달됐다. 동 보고서가 합병비율 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검찰도 이런 사정을 인식한 듯, 동 보고서로 인해 합병비율이 왜곡됐다는 주장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국민연금 측의 합병 찬성 결정에 동 보고서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취지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펴고 있다. 

검찰이 문제 삼은 문건은 안진회계법인이 삼성으로부터 의뢰받아 작성한 ‘비공식’ 보고서이다. 삼성은 내부 참고용으로 삼정·안진회계법인에 각각 비공식 보고서 작성을 요청했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도 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국민연금 표심에 영향을 주기 위해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비공식 보고서 주요 내용을 조작했다는 검찰 논리는 부자연스럽다. 목적이 국민연금 합병 찬성 표결에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보고서를 언론에 흘리는 것이 논리상 매끄럽다. 그러나 동 보고서의 존재와 내용은 2018년 11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금융위원회 분식의결 전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동 보고서의 내용을 폭로한 주체도 삼성이 아니라 반기업 성향 시민단체였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모직-물산 합병비율, 의결권 행사기관도 '타당' 

검찰은 안진회계법인 작성 보고서 내용이 변경된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 과정에 삼성 측의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검찰은 안진 소속 회계사와 삼성증권 직원 사이 주고받은 이메일 등 내용을 근거로 물산, 모직에 대한 기업가치 판단이 불과 며칠 사이 크게 달라졌다며, 그 배경에 강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15년 5월 21일에는 삼성물산 기업가치를 14.3조원, 제일모직 가치를 16.8조원으로 각각 평가했으나, 25일 작성 보고서에서는 삼성물산 가치가 4.9조원 감소하고 제일모직 가치는 4.5조원 증가했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다. 검찰은 이런 사정을 이유로 삼성 측이 안진 측 회계사에게 압력을 행사해, 두 기업의 가치를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분 검찰 논리에 대해서는 15년 5월 당시 증권시장의 현실을 망각한 오판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양사 합병 이전 삼성물산 경영상황은 악화일로였고, 이는 주가에도 반영됐다. 의도적으로 기업가치를 평가절하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삼성물산은 2010년 이후 공격적인 경영으로 해외 수주에 나서는 과정에서 수익성이 악화됐다. 국내 건설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실적 부진은 더 심화됐다. 

반면, 제일모직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미래 성장성이 시장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상승 랠리를 이어갔다. 그해 초 제일모직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MSCI) 지수에 편입된 사실도 호재로 작용했다. 

의결권 자문기관인 대신경제연구소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비율은 타당하다는 취지의 분석을 내놓았다. 합병과정에 법규 위반 사항이 없고, 합병시점 및 밸류에이션 문제가 크지 않다는 것이 연구소 측 견해였다. 특히 연구소는 합병시점을 달리 정했어도 삼성물산 주식가치에는 큰 변동이 없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같은 사실은 '이 부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추진했으며, 삼성물산 주가를 고의로 낮추기 위한 시세조종이 있었다'는 검찰 판단을 무색케 한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증선위도 고개 저은 '합병비율 검토 보고서'...
檢의 명백한 무리수

삼성 측 의뢰로 삼정·안진회계법인이 각각 작성한 합병비율 적정성 검토 보고서는 2018년 11월에도 한 차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해 11월 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을 의결했다.

당시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의결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위 보고서 관련 질문이 나왔다. 보고서의 내용이 증선위의 삼성바이오 분식 의결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는 질문에 김 부위원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2015년 5월 삼정·안진회계법인이 수행한 가치 평가는 '기업이 내부적으로 참고하려는 목적'으로 증선위의 감리나 감독 대상이 아니"라며 "자본시장법이나 외부감사법 규제 밖의 것으로 증선위가 자료 제출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특정기업에 대한 가치평가는 ▲재무제표 작성 ▲합병 적정성 검토 ▲기업 내부 참고 등 3가지 목적으로 실시되는데, 위 보고서는 ‘내부 참고 목적’에 해당된다는 것이 김 부위원장의 설명의 요지이다.  

삼바 분식을 의결한 증선위조차 '내부 참고 목적의 보고서'라는 사실을 인정한 문건을, 시세조종의 유력한 증거로 앞세우는 검찰 행태는 억지스럽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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