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한장 없이 나랏돈 230억을?... '옵티머스 권력 배후설'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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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한장 없이 나랏돈 230억을?... '옵티머스 권력 배후설' 증폭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0.07.23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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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 이사 부인은 전 청와대 행정관
전 대표는 여권 실세들과 두터운 친분 과시
전파진흥원, 2페이지 설명서에 700억 투자
전문가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

옵티머스 환매 중단 사태가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 청와대 행정관이 운용사 핵심 관계자의 인척임을 들어 야권에선 이미 '청와대 배후설'을 제기한 상태다. 부실한 상품 설명서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이 7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강행한 정황도 드러났다.

업계 관계자들은 권력 배후설을 속단하기 이르지만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옵티머스 자산운용(이하 옵티머스) 측은 6월 18일 설정원본 384억 원에 해당하는 3개 펀드의 환매를 중단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10일까지 설정원본 2,042억 원에 달하는 21개 펀드의 환매를 중단했다. 금융당국은 현재 잔여 설정원본 3,109억 원 역시 환매중단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펀드에서 환매란 투자자가 일정 금액을 펀드에 투자했다는 증빙서류인 '수익증권'을 운용사가 다시 구입해 돈을 되돌려준다는 의미다. 따라서 고객이 일정기간 투자금을 예치한 뒤 원금과 이자를 회수하는 펀드에서 '환매중단'은 일종의 부도를 의미한다. 

옵티머스는 3년 간 약 2조 원을 유치해 약 1조5,000억 원은 후발 투자자들의 돈으로 '돌려막기'식 상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이번 환매중단 사태로 투자자들의 피해 규모는 5,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앞서 4월 28일부터 옵티머스를 포함해 환매연기 규모가 크거나 비시장성 자산비중이 높은 5개사에 대해 한 달 간 서면검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옵티머스가 공공기관이 발주한 건설사 매출채권에 투자하기로 약속하고 실제로는 다른 곳에 투자한 정황이 포착됐다. 

금융당국의 검사결과 46개 옵티머스 펀드에 편입된 자산은 주로 비상장기업이 발행한 사모사채(5,109억 원), 기타 예금(83억2,000만 원), 비상장주식(42억4,000만 원) 등으로 구성됐다. 주된 편입자산인 사모사채는 씨피엔에스(2,052억 원), 아트리파라다이스(2,031억 원), 라피크(402억 원), 대부디케이에이엠씨(279억 원) 등 도관체로 추정되는 비상장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였다. 

이른바 '도관체'는 법인 또는 단체가 하나의 경제적 실체가 아니라 단순히 수익을 배분하기 위한 수단 또는 도관(conduit)에 불과한 것으로 과세상의 실체로 인정되지 않는다. 옵티머스는 투자자들에게 편입자산의 95% 이상을 안정적인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약속한 뒤 실체도 없는 사모사채에 투자한 것이다. 실제로 약속한 공공기관 매출채권 투자는 전무했다.

금융당국은 검사 과정에서 이러한 불법행위 혐의를 확인하고 이를 6월 19일 수사기관에 통보했다. 이후 7일 최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김재현 대표 등에 대한 구속수사 필요성을 심리했다. 그리고 김재현 대표와 2대 주주 D대부업체 이모 대표, 옵티머스 이사 H법무법인 대표 윤모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특히 윤 변호사 측이 "서류위조 사실은 인정하지만 김재현 대표의 지시였고, 그가 정관계 인맥이 있다면서 겁박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권력형 게이트를 둘러싼 의혹이 증폭했다.

사진=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 블로그
사진=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 블로그

옵티머스는 이혁진 전 대표가 지난 2009년 설립한 에스크베리타스라는 자산운용사를 모태로 한다. 설립 당시 배우 이서진을 상무로 영입해 화제가 됐다. 2015년 AV자산운용으로 사명을 변경한 뒤 2017년 6월 이혁진 당시 대표의 횡령 혐의가 불거지면서 김재현 현 대표이사로 교체됐고 사명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됐다. 

업계 안팎에선 회사 성장 과정에서 이혁진 전 대표 역할이 컸다고 입을 모은다. 이 전 대표는 CJ자산운용의 임원으로 있다가 2006년 3월 정기총회에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상임이사로 선출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전신) 후보로 서울 서초갑에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해 낙선했다.

당시 이 전 대표는 2010년 전 부인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 등으로 기소돼 총선 출마 두 달 전 벌금 500만 원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 공천자격과 관련해 논란이 일었다. 이후 그는 2012년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금융정책특보를 맡기도 했다.

야권에서는 당시 공천 실무를 총괄했던 임종석 사무총장(현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과 이 전 대표가 같은 한양대 출신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86학번 경제학과, 사내이사 윤 변호사 역시 같은 학교 법대 98학번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가 2006년 경문협 이사로 선출될 당시 협회 이사장은 임종석 특보였다. 

이 전 대표는 이후 70억대 횡령과 조세 포탈, 상해, 성범죄 혐의 등 5개 사건에 연루돼 피의자로 수사받다가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을 따라 출국해 잠적했다. 그는 최근 샌프란시스코에 체류 중이며 자신은 도피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선 횡령 혐의가 인터폴 적색수배에 해당함에도 당시 이 전 대표의 출국이 금지되지 않았던 것을 두고 권력의 비호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실제로 이 전 대표는 평소 여권 유력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블로그에 문재인 대통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한명숙 전 국무총리, 민주당 이해찬 대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 '나꼼수'의 김어준씨, 정동영·천정배 의원 등과 함께 촬영한 사진을 올린 바 있다. 

최근 옵티머스의 권력 배후설은 단순 의혹 차원을 넘어서는 모양새다. 2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환매가 중단된 옵티머스의 투자금 대부분이 유입된 4개 업체의 감사는 옵티머스 이사 윤모 변호사이며, 그의 부인은 청와대 행정관으로 최근까지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옵티머스의 펀드 자금을 활용해 '해덕 파워웨이'를 무자본 인수합병(M&A)한 의혹을 받고 있는 '셉틸리언'의 최대 주주(50%)가 바로 전 민정수석실 행정관이자 윤 변호사의 부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권력배후설에 한층 힘이 실리고 있다. 

21일엔 이혁진 전 대표 재직 당시 옵티머스(당시 애스크베리타스 자산운용)가 부실한 상품설명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으로부터 총 700억 원 대의 투자를 유치했음이 알려졌다. 2017년 6월 5일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은 옵티머스와 '레포펀드 1호' 계약을 체결해 72억5,000만 원을, 23일엔 333억 원의 기금을 투자했다. 2018년 3월까지 투자금액은 모두 748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특히 진흥원 측은 2018년 3월 22일 투자한 옵티머스의 '실적형 배당상품'에 대해 230억 원을 집행하면서 운용방식과 기대수익률을 따져보지도 않고 심지어 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옵티머스가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제시한 상품설명서는 총 10페이지 분량의 파워포인트(PPT) 문서로, 형식적 내용을 제외한 상품 설명은 2페이지에 그쳤다.

사진=베리타스 레포연계 BIG&SAFE 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제안서
사진=베리타스 레포연계 BIG&SAFE 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제안서

취재진이 국회 관계자로부터 해당 문서를 입수해 검토한 결과 사용된 폰트(글씨체)는 <파워포인트>에서 기본 제공되는 '바탕', '바탕체', '맑은고딕' 3가지였고 통상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애니메이션' 효과도 없는 평이한 수준의 문서였다.

문서 첫 페이지에는 "본 자료는 판매자의 상품이해를 돕기 위하여 작성된 것"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투자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소재의 증빙자료로 사용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투자자 스스로) 적합한 상품인지 검토한 후 투자 결정을 하라는 의미심장한 안내문구가 적혀 있었다.

당시 진흥원과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이 적극적으로 구매에 나선 것은 옵티머스가 약진하는 발판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업계 안팎에선 의도와 관계 없이 공공기관이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는데 일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이번 옵티머스 사태의 경우 개인 투자자들이 주로 50대 이상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당국이 16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설정액 기준으로 20대 이하는 60억 원, 30대가 98억 원, 40대는 301억 원을 투자했다. 50대부터 70대 이상의 총합은 1,945억 원으로 전체의 80%를 상회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주로 퇴직금 등 목돈을 굴릴 곳을 찾던 고령층이 다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금융감독원, 그래프=시장경제신문
자료=금융감독원, 그래프=시장경제신문

22일 금융권 관계자는 "투자나 업무 협조를 받으러 찾아오는 업체 관계자들은 예외 없이 세련된 PPT와 홍보 자료를 들고 오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저런 허술한 상품설명서는 보통 뒤에서 거래하기로 이야기가 끝난 뒤 형식적으로 설명회를 할 때 흔히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펀드 사고는 결국 잘못된 신호체계로 비롯된 대형 교통사고와 비슷하다"고 총평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허술한 펀드 관리 규정을 만든 금융 당국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 재계 중진 인사는 "최근 펀드 사기 피해자들 가운데 '실세'가 배후에 있으면 돈이 된다는 것을 아는 '선수'들이 많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이 펀드"라고 덧붙였다.

자신을 옵티머스 피해자 모임의 운영진이라고 밝힌 A씨는 "이번 사태의 1차적 책임은 운용사, 그 다음은 판매사에 있다"고 전제하면서 "정부와 금융당국은 권력 배후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사태 수습에 성의를 보여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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