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방 우수씨' 신인배우 정민아] "나누지 않으면 함께 할 사람도 없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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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방 우수씨' 신인배우 정민아] "나누지 않으면 함께 할 사람도 없어져요"
  • 조광형 기자
  • 승인 2016.06.2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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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내 운명... 멈춰있으면 가슴앓이"
98년 시트콤 '나 어때'서 조여정과 호흡

'연기神' 씌인 구두 디자이너 정민아

'나만이라도 살아보겠다'며 생존경쟁에 몸부림치는 사회. 매일 치열한 인생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이 곳에서, '남을 위해 살겠다'며 몸부림치다 유명을 달리한 이가 있다.  

철가방 우수씨. 지난해 9월 배달 중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김우수씨는 생전 '철가방 기부천사'로 통했다. 그는 중국집 배달부로 월 70만원의 급여를 받으면서도 5명의 결손아동을 7년간 후원해온 '바보 같은 삶'을 살았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하며 그들에게 희망을 전해줬던 故 김우수씨를 기리기 위해, 작고 소중한 영화 한 편이 만들어졌다. 

'철가방 우수씨(감독 윤학렬)'는 그의 삶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연기자 최수종, 김수미, 그룹 부활의 김태원, 디자이너 이상봉, 소설가 이외수 등 다양한 문화계 인사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만한 장면은 '고시원'이라는 곳을 '사회적 약자'의 상징으로 간주, 우수씨가 그들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 신에서 암울한 현실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밝게 살아가려 애쓰는 '길자'를 만날 수 있다. 그녀의 웃음 속에 감추어진 고통이 더욱 절절한 이유는, 우리가 누리는 기쁨이 이들의 아픔을 딛고 자라난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길자' 역을 맡은 정민아는 이 장면을 위해 긴머리를 짧게 자르고, 고시원에서 실제로 한 달간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직접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다. 체험 속에 묻어나는 그녀의 연기는 가공이 아닌, 마치 실재한 현실처럼 다가온다.

"우수씨의 삶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누는 삶은 어렵지만 누구나 꼭 몸에 밴 습관처럼 해야하는 일이라는 걸 느꼈어요. 요즘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삶이란 말을 많이 쓰잖아요. 기업들이 사회적 공헌에 나서는 것도 이젠 자선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도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살지 않으면 나중에 같이 밥 먹어줄 사람도 없어질지 모르잖아요?(웃음)"

정민아는 나눔과 기부의 정신이 양극화 시대의 세계적인 대세요, 우리 삶의 현장에 가까이 있는 현실임을 잘 알고 있었다. 연기 공부만 하러 쫓아다닌 아가씨같지가 않다.   

"연기는 제 운명인 것 같아요. 신내림을 받은 것처럼 연기를 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아파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이 없으면 시름시름 앓는다는 그녀. '철가방 우수씨'에서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명연기를 펼친 그녀는 사실 98년에 데뷔한 중고 신인이다. 한동안 구두 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던 정민아는 자신에게 빙의된 '연기神'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어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운이 좋아 고등학교 때 유명 시트콤에 출연하게 되면서 그 꿈이 실현되는가 싶었죠. 하지만 그 작품이 조기 종영됐어요. 상대적으로 주목 받을 기회가 없었어요. 주연을 맡았던 최창민과 송혜교는 하이틴 스타의 상징인 교복CF도 찍었는데…."

▲ 윤학렬 감독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민아.

머리 자르고 열연... 늦깎이 스크린 데뷔
구두 디자이너로 쇼핑몰 jmin00.com 운영

그랬다. 98년 방영된 SBS 청춘시트콤 '나어때'에서 조여정 등과 함께 연기 호흡을 맞췄던 정민아는 한때 '가능성 있는 신인'으로 주목받았던 유망주였다. 짧은 연기자 생활이었지만 시트콤을 통해 '연기의 맛'을 알게 된 정민아는 대학도 연기전공으로 진학,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현장에서 느꼈던 생동감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어요. 그런데 부단히 노력해도 저에게는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배우가 되고 싶어 리포터, 아나운서 등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일단 방송국에서 하는 일이라도 잡아보자는 심산이었죠. 그러면서 드라마에 단역으로 몇 번 출연한 경험도 있어요."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와 비고정적인 수입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현실'이라는 높은 벽을 실감하던 그때, 아버지가 건넨 한 마디가 정민아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구두 디자이너가 돼 보는 건 어떻겠니?"

사실 정민아는 고등학생 때, 배우를 시작하기 전부터 아버지로부터 '구두 디자인'을 배웠었다. 특이한 조기교육을 받은 셈.

"제 아버지는 구두 디자이너이세요. 어머니는 아버지 사업을 돕는 공장장이셨죠. 어릴 때부터 구두를 디자인하고 만들어 백화점에 납품하는 일을 부모님께서 해오셨어요. 제가 구두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정민아의 부모님은 지금은 부도가 난 회사지만 당시 잘 나가던 구두 브랜드를 운영했다. 딸이 디자인에 소질이 있는 것을 발견한 아버지는 스케치부터 디자인까지 직접 가르쳤다. 그리고 공장에서 구두를 만들고 유통하는 과정은 어깨 너머로 늘 봐왔던 풍경이었다. 돈을 벌기로 마음을 먹은 순간, 가장 먼저 구두가 떠오른 것은 어찌보면 당연지사였다.

"배우가 너무 하고 싶었지만 걱정이 앞섰서요.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 변변한 수입조차 없다는 현실은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웠어요. 꿈도 좋지만 자립하는 것이 더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구두를 하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물론 아버지의 노하우 덕분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죠."

노력 끝에 정민아는 성공적인 구두 디자이너가 됐다. 현재 jmin00.com이라는 수제 구두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며 여엿한 CEO로 자리매김했다. 주로 아기 엄마 등 편안한 신발을 선호하는 젊은 여성층을 타깃으로 플랫슈즈가 전문이다. 물론 구두 디자인 대부분은 그녀의 작품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재능을 십분 활용, 성공적인 구두 디자이너가 된 정민아는 이제 다시 '예전의 꿈'을 꺼내들고 날개짓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신내림을 받은 점쟁이가 반드시 최고의 무당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선가 점을 보고 있겠죠. 저도 최고의 배우가 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어디에선가 내 감정을 표출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어요. 그게 제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그녀의 삶에 아로 새겨진 '굴곡' 때문일까? 낮은 곳에서도 꽃을 피우는 연기가 심상치 않다. 오랜 만에 핀 꽃일지언정 그녀가 내뿜는 '연기의 향기'는 아련하고도 달콤하다. 

'철가방 우수씨'의 '길자'로 돌아온 정민아가 어떤 배우로 진화해 나갈지, 그녀의 늦깎이 연기 인생에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2012.11.28 17: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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