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길의 역사 올레길> 한국 쓰레기 몰려가는 '이즈모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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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길의 역사 올레길> 한국 쓰레기 몰려가는 '이즈모 왕국'
  • 인보길 이승만연구소 공동대표
  • 승인 2016.06.2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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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마의 날’ 소동을 보며

‘해수욕장에 밀려온 주사바늘- 한국 쓰레기’---동경에 머물던 80년대 그 여름, 호텔방으로 배달된 일본 조간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회면 머리기사로 대서특필된 내용은, 일본해(동해) 연안 시마네(島根) 돗토리(鳥取) 일대의 해수욕장에 한국 쪽에서 주사바늘 쓰레기가 밀려드니 해수욕객은 조심하라는 고발기사였다.
대형사진속에는 일회용 주사바늘과 함께  ‘울산 XX병원’ 글자가 찍힌 환자복, ‘XX라면’ 봉지도 보였다. 틀림없이 어느 청소업체가 바다에 버린 쓰레기 더미, 해류를 타고 흘러흘러 일본 해안에 표착한 것들이다.
대한해협을 북상하는 해류가 야마구찌(山口)해안을 핥으면서 시마네현 이나사노하마(稻佐浜)에 출렁이며, 울산만이 아니라 부산, 포항 쓰레기까지 실어 나른다.

▲ 800만 신들의 총회 열리는 이즈모대사. 이즈모왕국 최대의 명소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 국보 본전건물이 야간조명에 빛난다.800만명이나 된다는 일본 전국의 신들은 음력 10월이면 이곳에 집합하여 총회를 연다고 한다. 따라서 전국 신사에는 10월이 '신이 없는 달'(神無月: 간나쓰끼)이 된다고. 왜 음력10월일까. 단군왕검이 조선을 개국한 것도 음력10월 상달, 우리는 개천절로 기념한다.

한국 쓰레기의 항로, 그 물길은 오랜 옛날부터 뗏목이나 배를 탄 사람도 흘러간 바닷길.
그 지역에 ‘이즈모국(出雲國)’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4세기경, 주로 경상도 사람, 신라와 가야 사람들의 나라다.
시마네현에서 돗토리현, 나라지방으로 이어지는 내륙까지 광활한 영역을 개척한 이즈모 왕국의 조상신(神) 세 아들 이름이 신라이름이다. 고사기-일본서기에 나오는 가라가미(韓神), 소부리가미(曾富里神), 시라히신(白日神)이 그들이다. 가라는 한국, 소부리는 서라벌, 시라히는 신라를 부르는 일본 고어, 특히 소부리신은 경주 출신이다.
일본 황실의 최고신 천조대신(天照大神:아마데라스)은 신라신 스사노오노미꼬도(須佐之男命)의 누나, 일명 ‘세오리쯔히메‘ 설화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延烏郞)의 처 세오녀(細烏女) 이야기다.
『경주에 살던 연오랑-세오녀는 바위배로 바다를 건너 이즈모국을 세우고 왕과 왕비가 되었다. 이들이 떠나자 해가 사라져 서라벌이 암흑천지가 되자 세오녀를 데려오려 했으나, 그녀가 손수 일광단(日光緞) 비단을 짜서 보내니 해가 솟아 올랐다.』
일본서기 건국신화에는 신라와 얼킨 얘기가 수없이 나온다. 스사노는 원래 신라땅 ‘소시모리’에 살았다는데 그곳은 지금 춘천, 또는 철원(鐵原)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사란 이름이 우리말 ‘쇠’(鐵)를 뜻하고 소시모리는 ‘쇠머리’, 이즈모 역시 쇠와 관련된 이름이라고 한다. 이 지역엔 철이 많고 철기문화에 능했던 신라와 가야인들이 풍부한 철을 찾아 이곳에 몰려들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강대한 철의 왕국은 언제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일본서기 신대기(神代記) ‘천손강림단’에는 가라신이 천황의 땅을 구하려 장군을 보내 “나라 땅을 내놓으라”고 이즈모 왕과 담판했다고 한다. 열도의 원조 춘추전국시대의 시작이다. 가야-백제 연합군과 신라국 이즈모의 담판! 이른바 <가라시마 담판>, 그 역사적 협상이 이뤄진 곳이 이즈모국의 이소사다(五十狹田) 해변 앞바다에 떠있는 섬 ‘가라시마(韓島)’였다. 이즈모 측은 백제 측에 나라지역을 떼주었고, 그후 서서히 흡수되어 갔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신라가 백제를 정복한 것과는 반대의 역사가 일찍이 열도에서 전개된 것이다.

제1대왕 신무(神武)의 동정기(東征記)로 불리는 열도 정복코스를 보면, 한국의 가야→현해탄→북구주→히무까국(日向國:미야자끼)→히로시마→오까야마→오오사까(大阪)나니와→구마노(熊野)상륙→야마토 시기촌(倭國磯城邑)→나라(奈良) 평정으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이것이 소위 천황족의 야마토(倭=和=大倭=大和) 왕조 건국투쟁사이다.
나라 분지를 장악한 신무는 가시하라궁(葦原宮)에서 최초의 ‘천황’으로 즉위하는데, 그 날짜가 BC 660년 1월1일이었다고 기록해 놓았다.
왜 하필 660년? 참 낯익은 년도, 바로 본국 백제가 멸망한 해가 AD 660년 아닌가.

기발한 착상이다. 망국의 해(AD)를 천황 탄생의 해(BC)로 바꿔친 역사 창작! 역사의 길이를 1300여년이나 곱절로 늘리고 망국사도 기념하면서 신라에 우위를 점하는 일석삼조(一石三鳥)! 조국을 잃고 열도로 피난 가서 신생 일본 건국사를 만들어야했던 백제 역사가들, 이런식으로라도 복수하고 싶었던 그들의 통분한 심정을 헤아려줘야 할까. 이 역사조작에도 한가지 진실은 숨어있다. 일본 천황가의 시작은 백제의 멸망부터라는 것, 본국 백제 '천왕'이 식민지 왜열도의 '천황'이 되었다는 간접적인 증언이기 때문이다.

남의 역사 도둑질 분탕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즈모왕국의 옛땅 시마네현은 지금 ‘다케시마의 날(2월22일)’을 정해, 이웃 돗토리현-야마구찌현과 합동으로 “독도는 일본땅”을 외치고 있다.
구한말 일본 제국주의를 겁낸 고종황제는 1900년 독도 영유권을 확인하는 조칙을 내렸다. 5년후  1905년 러일전쟁서 승리한 일본은 독도를 일방적으로 시마네현에 ‘편입’시킨다. 그날이 2월22일.
패전 67년이 지나도 일본은 강탈했던 한반도의 일부를 제것이라고 내놓지 않으려는 심뽀다.
일본의 식민주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을 핑계로 마침내 핵개발도 몰래 합법화했다 하니, 북-중-일의 핵위협에 3면 포위된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

[2012.07.04 14:14:02]

인보길 이승만연구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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