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마다 변신을 꿈꾼다"..충무로의 '대세남'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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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마다 변신을 꿈꾼다"..충무로의 '대세남' 하정우
  • 조광형 기자
  • 승인 2016.06.20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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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거나 혹은 무섭거나.." 카멜레온 뺨치는 연기
출연작마다 '대박'…'러브픽션·범죄와' 흥행쌍끌이
어투는 90년대 조폭 스타일 "가슴엔 따스한 정이"

지금껏 살면서 남자를 만나러 갈 때 이렇게 떨리는 건 처음이다.

처음 하정우가 기자들을 상대로 '호프데이'를 연다고 했을 때부터 가슴은 쿵쾅 거렸다.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러브픽션'의 주월처럼 귀여운 스타일일까? 아니면 '범죄와의 전쟁'에 나오는 깡패두목처럼 '마초남'에 가까운 인물일까?

영화 제작발표회 등 다수의 공개석상을 통해 본 적은 있지만 지근거리에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묘한 긴장감을 갖고 들어선 신사동 577 주점. 그곳엔 이미 하정우를 기다리는 수많은 기자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실내 인테리어가 묘하다. 얼핏보기에도 난해한 그림과 사진들‥. 모던함과 투박함이 어우러진, 말 그대로 퓨전 주점이다.

사실 이곳은 하정우의 비밀(?) 아지트다. 절친 세 명이 운영하는 이 주점은 하정우가 무명시절에 살던 집 주소를 아예 가게 이름으로 지었을 정도로 그의 손때가 여기저기 묻어있다.

벽에 걸린 사진들만 쭉 둘러봐도 하정우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특유의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진 속' 하정우를 바라보다 문득 '진짜' 하정우가 걸어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적당한 키에 다부진 몸매, 그리고 앙칼진 눈빛이 영락없는 조폭 두목 최형배다. 아직까지는 영화 속 이미지 그대로다. '인간' 하정우의 모습을 캐기 위해 몇 마디 질문을 던졌다.

"하정우씨를 좋아하는 여성팬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비결이 뭔가요?"

내가 생각해도 유치한 질문이지만 정말 궁금했다. 평범한 외모의 그가 왜 이렇게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에이‥제가요? 아닐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허허"

겸손을 떠는 건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가?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대답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하지만 잠시 시간이 흐른 뒤 그 대답이 진짜 그의 속내였음을 알게 됐다.

여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난데없이 "집이 어디냐?" "직장에서 멀지는 않냐?"고 물으며 남의 출퇴근을 대신 걱정하는 모습. 기자들에게 맥주를 권하면서 '못 마시면 억지로 마실 필요 없다'고 말하는 모습에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이 남자, 진짜 착하다. 어투는 90년대 조폭 스타일이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또한 연기에 대한 '자만'도 없고 자기만의 날선 '고집'도 없다. 해외에서도 진가를 알아주는 요즘, 조금은 목이 뻣뻣해질 법도 하건만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대학에 들어갔는데 이미 '김용건의 아들'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더라구요. 전 잘 생기지도 않았고 특출난 재능도 없어요. 타의적으로 주어진 편견을 깨기 위해선 연습 밖에 없었어요. 제 스스로 표현 방식을 연구하고 끊임없이 연출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저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왔죠. 그밖의 것들은 생각에 본 적도 없어요."

그랬다. 데뷔 이후 이름(본명 김성훈)까지 바꿔가며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했

던 그는 연기가 아니면 이 세상에서 할 게 없는 사람처럼 절박하게 매달렸다.

어머니의 사업 실패로 급격히 기운 '가세'도 그가 연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됐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보면서 막연히 배우의 꿈을 품었던 한 소년은 머리가 굵어짐에 따라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감정의 소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마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영화 필름에 자신의 혼을 하나하나 새기기 시작한 그는 10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처음 시작은 미미했다.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로 얼굴을 알릴 당시만 해도, 충무로에 널린 끼 많은 신예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2008년 영화 '추격자'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희대의 살인마 지영민 역을 맡아 섬뜩하리만큼 광기어린 연기를 선보인 그는 대번에 '국민 살인마'라는 애칭(?)을 얻었다.

하정우는 이후 '국가대표', '황해', '의뢰인' 등 선 굵은 캐릭터를 차례차례 선보이며 어느덧 충무로의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 잡았다.

평단으로부터 '연기력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보기 드문 배우'라는 호평을 받고 있는 그는 출연작의 스펙트럼이 넓고 쉴 틈 없이 촬영을 이어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데뷔 9년 차에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그는 아직도 신인 배우 같은 열정으로 도전과 모험을 즐긴다.

하지만 무턱대고 아무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역할과, 잘 할 수 있는 배역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대규모 상업영화와 저예산 독립영화 등 장르와 규모를 넘나들면서도 하정우는 반드시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는 "하정우는 좋은 작품을 선택할 줄 아는 안목을 지닌 배우"라며 "그의 출연작들을 보면 하정우가 얼마나 영리한 배우인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철저히 계산된 연기로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하정우는 올해에도 새로운 이정표를 써 내려가고 있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두 영화(러브픽션·범죄와의 전쟁)가 개봉 첫 날 관객수 1,2위에 오르는 진기록을 남긴 것. 극과 극의 캐릭터를 오가면서도 자신만의 기조를 잃지 않는 하정우를 두고 영화 관계자들은 "안성기와 같은 국민배우 반열에 오를 날도 머지않았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제 능력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운이 좋게 좋은 감독님과 좋은 작품들을 만났고‥, 여배우로서 힘든 배역을 군말 없이 해 낸 공효진씨, 그리고 모든 신에 100% 전력투구하는 최민식 선배가 없었다면 아마도 다른 결과가 나왔을 거예요."

하정우는 ‘범죄와의 전쟁’에선 최민식의 뒤에서, ‘러브픽션’에선 공효진의 앞에서 영화를 이끌며 철저히 작품 속에 자신을 녹여내는 과정을 거쳤다.

“저에게 있어 배역의 비중이나 분량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 배역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내가 도전할 가치가 있는 역할인지가 중요할 뿐이죠.”

두 영화에서 완전히 다른 매력으로 관객을 쌍끌이 하고 있는 하정우는 각각 누적 관객수 400만(범죄와의 전쟁)과 100만(러브픽션) 고지를 넘어섬으로써 ‘하정우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하정우의 흥행질주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총 100억원이 투입되는 초특급 프로젝트 '베를린'에 캐스팅 된 그는 3월 말부터 크랭크 인에 들어간다.

"요즘 구주월과 최형배를 너무 많이 사랑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배역과 멋진 모습으로 관객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계속 지켜봐 주세요.

[2012.03.06 11: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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