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5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장에서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진보정당의 의원이 맞는지 의문스러운 발언을 남발했다. 추 의원은 김상조 공정위원장을 상대로 질의를 하면서 “칭찬을 할까요?”라는 말로 시작해 “대기업 갑질이 법위에 있다”며 “김상조 위원장이 공정위를 개혁하면서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추켜세웠다. 김상조의 공정위 개혁이 작으나마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칭찬도 빼지 않았다.
시계추를 돌려 지난 달 15일 열린 국감장으로 가보자. 당시 국감장에서는 김 위원장이 갑질피해자 양산의 핵심인 공정위 퇴직직원의 로비를 막는 규정을 폐기하도록 지시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공정위가 사건을 무마했다는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공정위 내부회의록 작성을 규정한 지침도 폐기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이러한 처신을 두고 “산에 여우가 많아 토끼들이 살기 힘드니 가서 여우 잡으라고 보냈건만 산에 가서 여우가 되어 버렸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공정거래 조직의 수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답변도 내놨다. 공정위 직원들의 대기업 봐주기 사건에 대한 재조사 요구에 ‘대법원 판례’를 언급한 것이다. 그는 “모든 사건을 개별적으로 처리하긴 쉽지 않다. 대법원 판례 기준이 굉장히 엄격하다”고 말했다. 증거은폐 비리를 바로 잡아달라는 '재조사 요구'와 '대법원 판례'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 재벌저격수로 불리던 김 위원장이 개혁이 아닌 안정만 추구하는 공무원이 된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김 위원장이 공정위의 부조리를 알면서도 눈 감으며 야합했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제기됐다. 지난 4월 30일 공정위는 '하도급 거래 질서 확립과 연대임금 실현: 자동차 산업에서 새 길을 찾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발제자로 참석했던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공정위 전직 사무관이 공정위 내부문제를 고발하는 동영상의 녹취록을 발제문에 담았다. 김 위원장은 토론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미 4월부터 공정위 내부문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런 김 위원장을 두고 추혜선 의원은 개혁을 잘하고 있다는 엉뚱한 발언을 한 것이다.
추 의원의 발언으로 신변위협을 무릅쓰고 국감증인으로 출석해 내부 비리를 폭로했던 공정위 유선주 국장의 의기(意氣) 마저 무색해 졌다. 소수와 약자를 보호한다는 진보진영의 국회의원이 아무 명분도 없이 내부고발자를 폄훼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추 의원의 이해못할 행동은 이 뿐이 아니다. 지난 23일에는 롯데갑질 피해자와 김위원장의 간담회를 ‘비공개’로 개최했다. 롯데갑질 피해자들에 대해 롯데측이 보복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이제껏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새롭게 모습을 나타낸 롯데 피해자는 없었다. 행사 자체가 비공개로 진행 된 것도 아니다. 추 의원의 말대로 롯데의 보복이 염려되었으면 행사를 외부에 알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추 의원은 인사말에 기념촬영까지 하고 나서야 행사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추 의원의 이 같은 행동은 롯데 측으로부터 공정위 심판에 대한 불복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롯데가 재판장과 원고만이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 것에 대해 ‘기울어진 운동장’ 시비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이 문제가 법정공방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 장기송사는 피해자들을 끝없는 고통의 나락 속으로 밀어 넣는다. 신중하지 못한 비공개 간담회가 안타까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