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수첩] 홍장표도 외면한 완성차 '약정(約定)CR'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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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수첩] 홍장표도 외면한 완성차 '약정(約定)CR' 갑질
  • 김흥수 기자
  • 승인 2018.08.2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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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1차협력사 대표 "차부품 업체들 3년안에 줄도산 위기"
홍장표, 경제수석 당시 '약정CR 적폐' 알고도 침묵으로 일관
지난달 벡스코에서 열린 2018부산국제모터쇼(BIMOS 2018)의 한 장면. ⓒ시장경제 DB

“완성차업체의 약정(約定)CR을 포함한 갑질 때문에 버티기가 어렵다. 이대로 가다가는 3년안에 이 나라의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줄도산할 수 밖에 없다” 현대차 1차협력사 대표의 하소연이다.

“아수라장같은 자동차 부품업계를 탈출한 것이 너무 부럽다.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었는가”, “생지옥과 같은 하청업체의 길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한다” 완성차 회사의 2차 협력사로 30여년 간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다가 사업을 접은 L씨를 두고 다른 협력사의 대표들이 던진 덕담이다.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대부분의 2차 협력업체들은 당장 회사문을 닫기조차 어려운 실정에 놓여 있다. 그들은 원청업체(1차 협력사)의 갑질로 인해 사업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지만 사업도중 생긴 빚 때문에 당장 문을 닫을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1,2차 협력업체보다 열악한 3차 협력업체의 대부분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은 입장이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하도급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완성차 업체의 갑질 때문이다. 하도급 갑질의 중심에 원청업체의 '약정CR(Cost Reduction, 납품단가 강제인하)'이 자리잡고 있다. 약정(約定)CR이란 특정 부품에 대한 최저가 경쟁입찰을 시키고 하청업체와 계약한 뒤에도 일정 기간에 걸쳐 단가를 후려치는 약정 조건을 뜻한다. 약정CR은 매년 평균 3% 단가인하가 주를 이룬다. 최근에는 납품단가를 5% 인하하는 '하드 CR'(강제로 진행하는 납품단가 인하 행사)까지 등장했다. 원청업체의 이익독과점 체제가 더욱 견고하게 완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1997년 외환위기 이 후 완성차업체의 소유지배구조가 달라지면서 주가중심의 경영관리체제로 운영됐다. 장기적 관점의 투자확대보다는 단기적인 효율과 수익성을 중시하게 됐다. 완성차 업체들은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하청업체들을 쥐어짜기 시작했고 가장 손 쉬운 방법으로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약정CR을 이용했다. 그리고 정권의 묵인하에 지금까지 15년이 넘도록 행해지며 관행으로 굳었다. 물론 불법하도급행위이지만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은 적은 아직 단 한 번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동반성장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돼 공정위의 직권조사를 매년 면제받고 있는 실정이다.

“상생이니 동반성장이니 하는 헛소리를 들을 때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 영남지역에서 1차 부품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의 하소연이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정부의 지원속에 완성차업체가 만들어지고 부품업체가 나중에 형성되었다. 완성차업체가 자본과 기술면에서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부품업체들을 육성해왔다고 봐야 한다. 국내 자동차 산업이 이러한 발전경로를 거치다 보니 원청과 하청의 관계가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수직적인 갑을관계가 형성됐다. 그리고 수직적인 갑을관계는 하청업체를 원청업체의 노예화시켜 버렸다. 하청업체의 노예화는 원청업체의 부담을 흡수하는 외부자로만 활용되며 산업의 경쟁력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의 실상이다.

홍장표 前 경제수석. 사진=YTN 캡처

2005년 부경대의 홍장표 교수는 ‘자동차산업 하도급 구조의 특징과 문제점’이라는 실태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보고서 말미에 이렇게 기술했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일반화 되어 있는 계약상에 명기되지 않은 일방적인 단가인하와 부당 감액은 하도급법에 위반되는 대표적인 불공정행위이다. 또 경쟁입찰에서 업체가 선정된 이후 재협상하여 가격을 인하하는 행위 또한 기업간 신뢰관계를 손상시키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하도급법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조치를 대폭 강화함으로써 단기적 이익 추구행위를 억제하고 장기적 협력이익을 도모하는 동반성장체제 확립의 촉진자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보고서가 발표되고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완성차업체의 약정CR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기업→1차→2차→3차로 이어지는 먹이사슬 악습은 되레 가중되는 형국이다. 보고서를 통해 자동차업계의 불법하도급 문제를 비판했던 홍장표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소임을 맡은 1년여 동안 약정CR 적폐에 대해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가 발표한 보고서는 ‘세상물정 모르는 치기어린 교수의 낙서’에 불과했을 뿐일까. 중병에 걸린 대한민국 자동차 생태계는 점점 더 치유불능 상태로 빠져들며 오늘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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