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초격차' 패키징 기술의 진수... 삼성전기 세종사업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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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초격차' 패키징 기술의 진수... 삼성전기 세종사업장을 가다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3.11.0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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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격차' 패키지 기술, 미세공정 벽 넘는다
내년 5월 신공장 완공... 차세대 기술 대거 적용
머리카락 보다 얇은 '비아 홀'... 오차 없이 뚫어
반도체 패키지 시장, 20조 규모 성장 전망
사진=삼성전기
사진=삼성전기

단 하나의 티끌도 용납하지 않는 초정밀 미세 공정의 세계.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클린룸’ 한쪽에선 로봇팔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옆 사람의 말조차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웅웅’ 거리는 기계음이 공장 안을 가득 메웠지만, 로봇팔은 아랑곳 않고 반도체 패키지 기판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2일 삼성전기가 기판사업 태동지인 세종사업장 내부를 언론에 공개했다. 1991년부터 구(舊) 대전사업장으로 문을 연 이래, 32년 만에 처음이다. 최근 반도체 미세 공정이 1나노대로 접어들면서 반도체 패키지 솔루션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초격차’ 기술을 향한 삼성전기만의 자신감이 한껏 묻어나온다. 

세종사업장은 세종시 연동면 명학산업단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 패키지 기판 제작 과정에는 물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이 지역은 왼쪽으로는 미호강, 아래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있어 공업용수 확보에 큰 이점을 지니고 있다. 세종종합청사와는 직선거리 약 7km 안팎으로 매우 가까워 행정 및 각종 인프라 접근성도 좋다. 첨단 산업단지가 자리한 충북 청주시 오송과도 비교적 인접해있다. 

이 곳은 삼성전기 국내 사업장 중 유일하게 반도체 패키지기판 단일 제품을 생산하는 기판 핵심 기지로 꼽힌다. 총 면적은 5만3000평으로 축구장 24개에 맞먹는 거대한 규모다. 여기에 패키지 기판을 생산하는 1·2·3·4 공장과 함께, 직원들을 위한 복지동과 유틸리티동 등 12개동이 배치돼 있다. 근무 인력은 1855명으로 제조 인력이 전체의 53%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개발 및 기술 인력으로 36%를 이룬다.  

현재는 신공장인 5공장이 건설 중으로 내년 5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차세대 초미세화 패키징 공정 및 생산에 최적화된 설계를 적용했다. 차세대 CPU로 ARM 기반 프로세스가 주목받으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반도체 적층 방식인 2.5D 패키징 기술이 각광받는 추세다. 신공장은 이러한 패키징 기술에 대응할 수 있는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기판을 생산할 예정이다.
 
특히, 신공장에는 세종사업장 처음으로 원료부터 최종 제품까지 통합 생산이 가능한 설비·인프라, 물류 자동화 생산체제가 적용된다. 제품 생산 속도를 끌어올리고, 최고 수준의 청정 환경 구축으로 우수한 품질의 기판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브리핑에서 심규현 삼성전기 상무는 “신공장의 모든 공정은 이물질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클린룸’으로 지어지게 된다"며 “자동화 시스템을 적용한 스마트 팩토리로 구축해, 제품 생산 과정에서 각 유닛 단위까지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년에는 1층에서 일부 공정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2~3층은 현재 개발되는 프로세스에 따라 2025년까지 가동 준비에 나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삼성전기
사진=삼성전기

 

'클린룸'... 첨단 패키지 기판의 산실

세종사업장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마주한 것은 삼엄한 보안 절차였다. 국가 첨단 산업 시설인 만큼, 기술 유출을 대비한 보안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이는 기자들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챙겨간 노트북과 스마트폰의 카메라에는 특수 테이프가 붙었다. 이 테이프는 한번 떼면 다시 붙이더라도 표시가 남기 때문에 무단 촬영 여부를 적발할 수 있다. 

철저한 보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먼지와 같은 이물질의 차단이다. 패키지 기판을 생산하기 위해선 일반적으로 8~10㎛(마이크로미터)수준의 얇은 회로 선폭을 구현해야 한다. 머리카락 지름인 70㎛의 1/7에 불과한 수준이다. 따라서 기판 회로 형성 과정에 먼지가 유입될 경우, 제품 수율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공장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 우선, 방진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화장은 물론이고, 귀걸이나 반지 등도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특수 신발을 신고서도 별도로 신발창을 세척하는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 약 30초간의 에어샤워까지 마쳐야만 비로소 공장 내부로 들어설 수 있다. 바늘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촘촘한 나일론 소재의 방진복을 입으니, 날씨가 선선한 11월임에도 등허리에 땀이 물씬 맺혔다. 

반도체 패키지 기판은 반도체와 메인 기판 간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고, 반도체를 외부의 충격 등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반도체 칩을 두뇌에 비유한다면, 패키지기판은 뇌를 보호하는 뼈와 뇌에서 전달하는 정보를 각 기관에 연결해 전달하는 신경과 혈관에 비유할 수 있다.

반도체 칩은 메인 기판과 서로 연결돼야 하는데 메인 기판의 회로는 반도체보다 미세하게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반도체 칩의 단자 사이 간격은 100㎛(마이크로미터)로 A4 두께 수준인 것에 비해, 메인 기판의 단자 사이 간격은 약 350㎛로 4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이러한 반도체 칩과 메인 기판 사이를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반도체 패키지 기판이다.

공장을 둘러본 순서는 1·2 공장과 4공장 등 총 세 곳이었다. 1·2공장은 ‘전공정’, 3·4공장은 ‘후공정’으로 나뉜다. 전공정에서 회로 배선을 구현하면, 후공정에서 표면처리를 맡는다. 전공정의 대표 공정으로는 회로 형성, 적층, 도금 공정이 있으며, 후공정은 SR 공정이 있다.

회로 형성 공정은 반도체 제조 공정과 유사하다. 고객사로부터 제공받은 설계를 바탕으로 회로를 형성하는 공정이다. 기판 위에 빛에 반응하는 감광성 고분자 물질인 포토레지스트(Photo Resist)를 얇게 바른 후 원하는 패턴의 마스크를 올려놓고 자외선 빛을 가해 회로를 새긴다. 

과거에는 필름이나 유리 소재의 마스크를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레이저를 통해 회로 이미지를 그린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직접 노광이 가능해 다양한 회로 디자인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적층 공정은 회로 형성이 완료된 내층 기판과 층과 층 사이에 절연층을 겹쳐 쌓은 후 일정한 온도와 압력을 가해 여러 층의 기판을 반복적으로 쌓는 공정이다. 도금 공정은 적층된 층과 층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드릴(Drill)로 구멍(Via)을 내고 표면에 도금을 해 각 층간 전기적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연결하는 공정이다. 

후공정인 SR(Solder Resist) 공정은 회로 형성 후 기판에 형성된 회로의 손상 및 성능 저하 방지를 위해 도포되는 절연물질로, SR 잉크의 성분에 따라 기판 외부 색깔이 결정된다. 삼성전기에서는 일반적인 기판 색깔과 동일한 초록색 잉크를 사용하고 있다.  
 

반도체 패키지 기판 제품사진. 사진=삼성전기
반도체 패키지 기판 제품 이미지. 사진=삼성전기

 

국내 유일 '임베딩 공법' 보유... 4세대 기술 개발 박차

세종사업장은 주요 공정으로 FC-CSP(Flip Chip Chip Scale Package), UT-CSP(Ultra-Thin Chip Scale Package), RF-SIP(System in Package) 등을 적용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의 모바일 AP, 메모리 반도체, 5G 안테나와 같은 통신모듈 및 전장용 반도체에 들어가는 패키지기판을 생산 중이다. 특히 플래그십 모바일 AP용 기판은 글로벌 1위를 점유한다.

먼저, FC-CSP는 고집적 반도체 칩과 기판을 플립칩 범프로 연결해 전기 및 열적 특성을 높인 반도체 패키지기판이다. FC-CSP는 반도체 칩의 크기와 거의 동일한 크기의 기판으로 반도체와 기판 사이에 전기적 신호 이동 경로가 짧아 높은 성능과 낮은 전력 소모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 주로 스마트폰 AP용 반도체 칩에 사용된다

UT-CSP는 반도체 칩과 패키지 기판을 얇은 금선으로 연결(Wire bonding)하는 기판으로 반도체 칩이 차지하는 면적이 전체의 80% 이상인 기판이다. 주로 모바일용 메모리 반도체나 다수의 반도체 칩을 쌓아 올리는 멀티칩 패키지(MCP: Multi Chip Package)에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RF-SiP(System in Package) 기판은 하나의 기판에 여러 개의 칩과 수동소자를 실장하는 모듈형태의 기판이다. 5G 모듈 같은 통신용 모듈에 주로 사용된다 

고성능 반도체 패키지기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핵심 기술은 ′미세 가공 기술′ 과 ′미세 회로 구현′이다. 전자기기의 기능이 많아질수록 필요한 부품도 많아지고, 회로도 복잡해진다. 한정된 기판 면적 안에 많은 회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4층, 6층, 8층, 10층 등 여러 층으로 만들어진다.

기판의 층간에도 회로를 연결하기 위해 구멍을 뚫어 전기적으로 연결한다. 각 층들을 연결해주는 구멍을 비아(Via)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80㎛(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면적 안에 50㎛의 구멍을 오차 없이 정확히 뚫어야 해 정교한 가공 기술력이 필요하다. 삼성전기는 A4용지 두께의 1/10 수준인 10㎛ 수준의 비아를 구현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다.

특히, 세종사업장이 국내 기판 업체 중 유일하게 보유한 기술로는 ′임베딩(Embedding)′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공법은 기존 기판 위에 실장하던 캐패시터와 같은 수동부품을 기판 내부에 내장시키는 기술이다. 임베딩 공법을 통해 신호 경로 길이를 줄여 전력 손실을 50% 이상 줄일 수 있고, 고속 신호 전달에도 유리하다. 

심규현 삼성전기 상무는 브리핑에서 “임베딩 기술은 세종사업장의 차별화된 강점으로,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했다”며 “향후에는 4세대 기술을 준비 중인데, 미세 회로의 I/O(입출력)수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고집적 회로를 형성할 수 있는 고해상도 노광 설비와 DRF(감광성 필름, Dry Film Registration) 소재 등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승용 삼성전기 세종사업장 제조팀장·단지장(부사장)은 “시장 전망을 볼 때, 규모가 점점 커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에 당사에서도 차세대 신제품에 대한 준비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패키지 사업부 매출 전체가 약 2조원 수준인데, 이 중 1조원이 세종사업장에서 나온 성과”라며 “5공장 완공을 기점으로 기판의 고다층화 및 미세화, 임베딩 등 기술 차별화에 대응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임 부사장의 언급대로 반도체 패키지기판 시장은 올해 106억 달러(약 14조원)에서 2027년 152억 달러(약 20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연평균 10% 수준의 성장세다. 특히, 5G 안테나, ARM CPU, 서버·전장·네트워크와 같은 산업·전장 분야를 주축으로 시장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기 세종사업장의 미래가 밝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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