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변협發 촌극... 로톡 생사, 시장(市場)에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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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변협發 촌극... 로톡 생사, 시장(市場)에 맡겨라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3.07.28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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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로톡' 심의, 시급히 결론 내야
官의 무관심 속 고사 직전 몰린 '로톡'
리걸테크, 해외선 '승승장구' 한국선 '찬밥'
시대적 요구 부응해야... 소비자 권리 우선

#. 어느 시장 한 켠에 어렵게 가게를 마련한 노 씨. 그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물건을 합리적으로 판매하는 전략을 내세워 나날이 매출을 키워갔다. 가게를 확장하고 손님도 크게 늘어났을 때쯤, 시장 상인회장 변 씨가 찾아와 대뜸 시비를 걸었다. “여기는 여기만의 규칙이 있어. 당신 나중에 우리 시장을 다 집어삼킬 셈이지? 오늘부로 가게 빼.”

노 씨는 기가 찼다. 내가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불과 얼마 전에 고친 상인회 규칙이라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아니, 제가 법을 어긴 건 아니잖습니까. 제 가게가 잘 되면 시장 전체에도 손님이 늘고, 서로 상생할 수 있을 겁니다.” 노 씨는 변 씨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허사였다. 

변 씨는 노 씨와 거래하는 동료 상인들에게 상인회 규칙을 앞세워 불이익을 주는 방법까지 동원했다. 결국 버티지 못한 노 씨는 가게를 내놓았다. 이후, 수많은 인파로 붐비던 시장은 점점 손님의 발길이 줄어들었고, 끝내 황량해진 시장은 외국계 대형마트가 차지하고 말았다.
 

정재기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이 20일 오후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 가입 징계 변호사 이의신청 관련 심의가 열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재기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이 20일 오후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 가입 징계 변호사 이의신청 관련 심의가 열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위의 사례는 우리나라 법조계의 한 복판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촌극을 가상으로 풍자한 글이다. 노씨는 로톡, 변 씨는 변협을 각각 의인화했다. 

로톡은 ‘리걸테크’ 플랫폼으로 분류된다. '법률'과 '기술'의 융합을 의미하는 리걸테크는 법률시장의 높은 문턱을 낮출 수 있는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변협은 시대적 변화인 '리걸테크'를 반기지 않았다. 급기야 로톡 가입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를 강행하며 태동단계에 있는 리걸테크를 유산(流産)시키는데 전력을 쏟고 있다.

앞서 이달 20일 법무부는 정부과천청사에서, 변협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로톡 가입 변호사 123명이 제기한 이의신청을 심의하는 ‘변호사징계위원회’를 열었다. 지난해 12월 해당 변호사들의 이의신청이 있은 지 7개월만이었다. 

같은 날 오후 3시부터 4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심의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변협과 로톡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해석이 많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과거에 머물 것인가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양자택일의 물음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법률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주체는 변협이 아닌 '소비자'라는 사실이다. 
 

해외에선 각광받는 리걸테크... 국내는 '찬밥 신세'

리걸테크는 해외에선 이미 보편적 서비스로 자리잡고 있다. 해외 법률 선진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일본은 ‘벤고시닷컴’, 미국은 리걸줌(Legalzoom)과 로직컬(Logikcull)이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며 법조계와 상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세계적 흐름을 따라 2014년 로톡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다만 그 이후 흐름은 다른 나라와 판이하게 달랐다. 변협으로부터 집요한 견제를 받으면서 거의 10년째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변협은 2021년 5월 '변호사 광고업무 규정'과 '변호사 윤리장전'을 개정하면서 소속 변호사들이 로톡에 가입할 수 없도록 강제했다. 로톡을 포함한 ‘리걸테크’ 업계 고사(枯死)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변협의 전방위적 압박과 달리 정부와 법원은 잇따라 로톡의 손을 들어줬다. 변협은 로톡을 세 차례에 걸쳐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였다. 변협 측이 신설한 '변호사 로톡 가입 금지 규정'에 대해 헌재는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변협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로톡이 성장하면 법률시장을 독점체제로 만들 것이고, 변호사들로부터 거둬들이는 ‘광고비’도 치솟을 것이란 ‘예단(豫斷)’에 매몰돼 리걸테크 업계 전체를 핍박하고 있다. 

법무부의 변호사징계위원회 심의 대상은 대한변협 소속 변호사 123명이다. 이들은 로톡 이용자들에게 다양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했다. 변협은 이들이 정해진 기한 안에 로톡을 탈퇴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1500만원에 이르는 과태료 부과 처분을 내렸다.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로톡은 법무부의 판단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한때 4000명에 달했던 로톡 가입 변호사 수는 절반인 20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투자유치와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로톡의 운영사 로앤컴퍼니는 고육지책으로 직원의 50%를 감원하고, 사옥도 입주 1년여만에 쫓겨나듯 내놓은 상태다.
 

코너 몰리는 변협... '리걸테크'와 상생은 불가능한가

변협의 주장대로 로톡이 없어지면 법률시장에 평화가 찾아올까? 그 대답은 당연하게도 ‘NO’이다. 불특정 다수의 일반 국민들이 로톡을 이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서비스가 시장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의뢰하고자 하는 법률문제에 최적화된 변호사를 가장 쉽고 빠르게 검색할 수 있고, 원스톱으로 해당 변호사와 접촉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 국민과 시장으로부터 호응을 얻는건 당연하다. 되레 그것을 인위적으로 막는 변협의 행태가 반시장적이다. 

로톡 서비스의 품질이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면, 변협이 나서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즉 법률서비스 시장의 주체는 법조인이 아니라 국민이 돼야 한다. 

시대를 역행하는 변협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좁아지는 형국이다. 리걸테크를 신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 국회 스타트업연구모임 ‘유니콘팜’은 변호사 광고의 유형과 금지 여부를 법률로 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변협이 남용하고 있는 광고 관련 변호사 징계권을 사실상 뺏겠다는 의미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변협의 행태에 제동을 걸었다. 올해 2월 공정위는 대한변협과 서울변회에 각각 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변협 등이 그 소속 변호사에게 ‘로톡’ 탈퇴를 요구하고, 따르지 않는 소속 변호사를 징계한 행위는 잘못이라는 판단이다. 중소벤처기업부도 변협에 대한 ‘의무고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법무부는 조만간 변호사징계위원회를 다시 열고 심의를 재개할 예정이다. 국회와 법원, 검찰과 공정위, 헌법재판소까지 모든 국가기관이 리걸테크 산업을 우호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시대 흐름을 거부하고 있는 곳은 변협뿐이다. 소모적 갈등을 내려놓고, 리걸테크 업계와의 ‘상생’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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