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人] "국제 NGO가 성장 밑거름... 사회연대 힘 보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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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人] "국제 NGO가 성장 밑거름... 사회연대 힘 보탤 것"
  • 박주연 NGO저널 기자
  • 승인 2023.01.11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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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화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 선임 간사

<편집자註> 수많은 사람(人)과 쉴새없이 소통하며 시민 세상의 이슈를 건져내는게 NGO저널 기자의 일입니다. 시민사회는 시대의 창(窓)일뿐 아니라 가장 강력한 여론 형성의 장(場)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선 미래를 꿈꿀 수 없습니다. [스토리人] 코너를 통해 시민단체들의 각양각색 사연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익은 인간의 본성이다. 대표적인 것이 재산권이다. 이런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이 역사 발전의 주된 동력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동시에 인간은 공익을 추구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공존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익을 추구해가야 한다. 사익과 공익의 충돌지점에서 타협점을 찾아내야 하는 것도 NGO의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안정된 대기업 직장생활을 던지고 참여연대에 터를 잡았다는 신동화 참여연대 간사를 NGO저널이 만났다. 

풍요로운 삶보다 가치 있는 삶을 찾아 NGO 일을 시작했다는 신동화 간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느끼면서 사회가 어떻게 하면 변화할 수 있는지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풍요로운 삶보다 가치 있는 삶을 찾아 NGO 일을 시작했다는 신동화 간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느끼면서 사회가 어떻게 하면 변화할 수 있는지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반갑습니다. NGO저널 독자들을 위해 자기 소개부터 해주시죠.

“참여연대에서 일하고 있는 신동화라고 합니다. 2015년도 참여연대에 합류했고 지금까지 계속 활동해오고 있어요. 권력 감시 파트에서 관료들의 부정부패, 청렴성과 관련된 활동들을 해왔었고 최근에는 경제금융센터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와 같은 문제들 또는 가계부채 문제, 그리고 대중소기업의 갑을 관계 문제 등에 주력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 참여연대에 합류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참여연대 이전에는 불교계의 한 구호단체에서 모금 일을 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저에게도 스토리가 좀 있어요. 대학에 입학하기 전 먼저 직장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도 이쪽과는 상관없는 다른 일반 회사를 다녔어요. 그러면서도 머릿속 한 편에서는 늘 의미있고 보람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라고요. 그런 생각으로 어찌어찌하여 비영리 기관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죠. 2015년쯤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소요사태가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국제적으로도 큰 이슈가 됐던 일인데, 봉제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서 들고 일어난 소요사태가 있었던 거예요. 당시 제가 일하던 구호단체에서 캄보디아에 학교를 짓고 있었는데 그 비용 등을 위해 모금 일을 하던 제 입장에서 ‘돈을 모아 교육이나 복지사업을 한들 제도적으로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인 상태에서는 수혜 받아야 하는 이들이 착취당하는 그런 구조에 기여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마침 참여연대 채용공고가 떴고 구호나 사회복지 영역보다는 애드보커시(advocacy : 정책제언 또는 다른 이들의 행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행위를 뜻하는 용어) 쪽 일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하게 됐습니다. 그동안은 국제협력 NGO 단체 일을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국내의 제도개선이나 불공정 문제, 권력의 문제들을 좀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 구호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군요. 대학에 진학하기 전 사회생활을 먼저 했다고 했는데, 그런 경험이 바탕이 된 건가요?

“그렇다기보다 자연스럽게 든 생각이에요. 저는 공업계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때가 되자 진학을 할지 취업을 할지 고민하다 스스로 돈을 벌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먼저 취업을 한 거죠. 그때는 내가 번 돈으로 대학도 가고 생계도 빨리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고졸로 사람들이 선망하는 모 대기업에 입사하게 됐고 가전 제조업 생산기술 쪽에서 일을 했습니다. 사무실에는 저처럼 고졸도 있었고 고학력자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을 보니 행복해 보이지 않더군요. 처우도 좋고 생활도 윤택했지만 업무 성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더라고요.

어느 날 사내 방송에서 CEO가 상·하반기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는 발표를 하고 전체 직원에게도 메일을 보냈는데,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에서 초일류 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 계속 채찍질을 당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피곤함을 많이 느끼는 모습이었어요. 한국도 이제 선진 경제가 되었고 어느 정도 부를 축적했으니 여유를 갖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분배도 하는, 그런 가치를 표방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그 시절 방황 비슷한 걸 겪으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소년의 미소가 남아 있는 신 간사는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 사회학 전공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소년의 미소가 남아 있는 신 간사는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 사회학 전공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 2015년에 참여연대에 들어왔으니 7년 정도 활동하신 것 같은데, 처음 가졌던 기대처럼 만족스러운가요?

“참여연대 활동을 하면서 지치고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고 그 와중에 어떻게든 보람을 찾으려고 하는 분들도 보게 돼요. 조직에는 다양한 분들이 있고 또 생활이 늘 즐거울 수만은 없잖아요. 저희 일이란 게 외부를 공격적으로 비판할 때도 있고 또 세부적으로 가끔은 정무적 판단을 하기도 하고, 또 아무래도 아름다운 말보다 비판의 말을 많이 하는 단체이다 보니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많고요. 하지만 저는 참여연대 채용공고를 보고 들어왔을 처음부터 사람 사는 곳은 어차피 똑같으니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사람이든 단체이든 의사결정 과정은 민주적이어야 하지만 설령 결과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실망하지 말고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그런 마음가짐 덕분인지 활동하면서도 많이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예전 직장생활 할 때 그 조직 문화보다 더 민주적이고 저와 성향도 맞기 때문에 다른 분들과도 잘 통하고요.”

아쉬움이 남는 조국사태...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

- 처음부터 큰 기대는 없었다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잖아요. 예전 대기업 시절은 풍요로웠을 텐데, 아무래도 비교가 되지 않겠어요? 아쉬운 점은 전혀 없어요?

“당연히 전혀 없진 않았죠. 하하. 하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부분이 있어요. 일단 기본적으로 단체에는 상근자가 몇십 명 되니까 제각각 생각도 다르고 또 추구하는 가치도 다르고 특히 다른 조직보다는 더 가치 지향적인 조직이다 보니 민주주의라는 큰 차원에선 같더라도 개별 이슈에 대한 의견이 달라 곤란할 때가 있어요. 특히 참여연대 내부에서는 좀 민감한 주제이긴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이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이런 분들과 관련해서 그랬죠.

저 개인적으로는 그분들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세대가 아니었지만, 오래 활동하면서 그분들과 인간적인 친밀감이 있는 분들이나 한편으로 성평등, 여성, 젠더가치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에 있어선 내부 문제 제기를 했던 분들도 있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어쨌든 조직에서 한 목소리로 모아지지 않은 경우 힘겨운 부분이 좀 있었습니다.”

- 그랬군요. 그래도 그동안 보람된 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보람된 일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2017년 탄핵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가 비상식적인 국정 운영을 했을 때 시민이 힘을 발휘해 정치적 이슈로 만들어냈던 것은 잊을 수 없어요.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어 헌법재판소를 통해 탄핵안이 통과됐지만, 밖에 있던 시민이 제도 안에 있는 엘리트 정치인, 법률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잖아요. 엘리트 정치인이 아닌 일반 시민의 정치가 그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에 굉장히 고무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그때 거리에 있었고요. 한편으로는 그 이전 저희가 계속 활동했을 때는 안 됐던 것들이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이루어지니까 대체 시민단체나 활동가의 존재 이유는 뭘까 하는 고민도 들더라고요. 어쨌든 그 당시 거리에 나가 주장했던 여러 내용들, 집회 시위의 자유나 헌법 가치와 같은 것들이었는데 참여연대 내부에서 주장했던 그것들이 일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 안전하고 민주적인 집회가 이루어지는데 역할을 한 것 같아 보람을 느꼈습니다.

반대로 조국 사태 때는 이 조직에 소속돼 있는 것 자체가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당시 집행위원장이었던 김경률 회계사가 참여연대를 탈퇴하고 나가기도 했고요. 저는 그분 의견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그때 학력 불평등 관련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보수 엘리트든 진보 엘리트이든 엘리트들이 자기들 계급 재생산, 계층 재생산 논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실망을 했죠. 사실 참여연대에도 워낙 다양한 분들이 있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는 부의 세습, 지위의 세습과 같은 이슈에 대해 소외된 사람들 입장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비판 목소리를 내는 데 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부 토론 과정에서 저 역시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연대와 고통 분담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신동화 간사
연대와 고통 분담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신동화 간사

 

연대와 고통 분담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 부의 불평등 문제라는 대목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할만한 반론이 있을 것 같습니다. 부의 불평등 문제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존재한 문제이고 역사적으로 오히려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아니냐,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개선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면요? 계급 사회의 부의 절대적 불평등에서 벗어나 계급이 타파되고 민주사회가 되면서 어쨌든 진보하고 있잖아요.

“음... 객관적 수치로 이야기할 부분은 아닌 것 같고요. 절대적 빈곤 시절을 제가 경험한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상대적 빈곤 문제를 말하고 싶어요.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까요. 과거에는 소수 엘리트가 부를 다 가지고 있었고 거의 절대다수의 빈곤층이 있었던 반면 현대 사회에 올수록 층위가 다양화되면서 상대적 빈곤 문제가 크게 부각이 되고 있어요. 저와 같은 세대, 같은 학교, 같은 고향 친구만 봐도 그렇거든요. 어떤 상대적 박탈감이 있는데, 아무래도 사회가 너무 불안정해서 그렇겠죠.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자산을 축적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이 있고, 교육도 마찬가지고요.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가 어느 정도 가능해서 열심히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있었던 반면 지금은 그 부분이 희박하죠. 한겨레신문으로 기억하는데, 인상 깊은 기사를 봤어요. 조국 사태 이후 여러 불공정 이슈에 대해 대학생들이 집회를 열었다는 뉴스를 읽었는데, 그 집회 주체들도 마찬가지로 명문대 학생들이더라고요. 공정한 경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만 되면 어쨌든 자기들이 유리한 직업을 갖고 있으니 어떤 지위나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 사람들인 것이고 그 사람들이 계속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이슈에 계속 목소리를 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반면에 정말로 공정한 룰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경제, 학력 자본 등 사적으로 자원이 부족해서 감히 꿈도 못 꾸는 사람도 굉장히 많아요. 그 부분에 대한 목소리를 과연 시민사회가 잘 내고 있느냐 하는 점에서 고민이 좀 있습니다. 공정한 시험을 통한 채용 아니면 입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런 자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아닌가 싶은 거죠.

사실 안정적인 삶의 조건은 빈부 격차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인권이므로 처절하게 가난한 사람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부의 분배나 사회적인 인정과 같은 그런 부분들을 강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 대한 목소리를 시민사회가 좀 더 냈으면 좋겠는데, 그 당시에는 아쉬운 면이 있지 않았나 하는 거죠. 아무래도 진영논리가 첨예하게 날이 서 있어서였겠지만, 그 이면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약간의 자책이 좀 있습니다.”

- 그랬군요. 조국 사태 때 참여연대 내부에서도 갈등과 고민이 깊었겠습니다. 화제를 돌려볼까요? 그나저나 참여연대라고 하면 상대적으로 좀 부유하다는 이미지가 있어요. 시민사회란 게 굉장히 보통 열악하기 짝이 없는데, 참여연대는 번듯한 건물도 있고 말이죠. 형편 좋은 단체들도 상근자들의 임금 같은 경우 최저임금 수준이거나 살짝 높다고 하던데, 참여연대는 어떻습니까?

“저희는 급여 체계가 호봉제인데, 올해 가을 임금을 좀 올렸습니다. 정확히 몇 퍼센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인상 이유가 신입 간사가 들어오면 최저임금 미만이 되어서 가장 낮은 연차의 간사 임금을 최저임금에 맞춰야 하다 보니 자동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어요. 최저 임금이 디폴트가 되어 있는 셈이죠. 하하. 저희는 노동조합과도 연대하는데, 어떤 노조가 파업하는데 연대해줄 수 있느냐고 제안이 왔을 때 임금 인상 내용이 들어가 있으면 좀 묘한 생각이 들긴 합니다.”

- 충분히 그런 기분이 들긴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아무리 공익 활동이 좋다 해도 개인의 성취도 중요한 것 아닙니까? 2023년에 뭔가 이루고 싶다는 개인적인 목표가 있나요?

“참여연대의 일원으로서 목표와 일신상의 목표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갈수록 협의와 합의, 토론을 통한 문제 해결로 가기보다 첨예하게 갈등을 빚다 곧바로 사법의 영역으로 가져가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참여연대도 그런 조류에서 법률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정의롭지 못한 문제를 고발하고 법을 바꿔 해결해야 할 부분도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또 목소리를 만들어가면서 마중물을 던지는 그런 활동이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법률적인 제도 개혁이라는 고차원적 운동뿐 아니라 시민과 좀 더 소통하고 같이 호흡하고 참여연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소외된 다양한 권리 주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아젠다를 고민하고 싶어요. 그 부분에서 제 역할을 하고 싶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새해에 논문을 꼭 쓰고 싶어요. 사회 현상들을 종합적이고 구조적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사회학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이 공부를 통해 어떤 문제에 접근하는데 있어 창의적이고 포괄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참여연대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참여연대

 

- 다른 단체들의 경우 코로나 이후 후원자가 많이 줄었다고 하던데, 참여연대 형편은 어떤가요?

“시민단체가 어렵다는 말들이 많아요. 참여연대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회원수가 일정 정도 준 것도 있었고요.”

- 코로나가 영향을 끼쳤군요?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회원이 많아지다 보니 생계를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지출보다는 우선 기부금부터 줄이게 되니까요. 그건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어서 코로나가 풀린 이후에는 사정이 좀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시민단체 후원 회원 가입 부분은 경제 상황을 말해주는 바로미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우리 사회 경제 여건이 워낙 안 좋긴 하지만 사정이 좀 나아져서 연대 심리가 좀 회복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고요, 저희도 사회적 연대나 고통 분담과 같은 가치들이 시민들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어떤 방식으로 활동해나갈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해야 할 과제들이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참여연대 대변인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참여연대 걱정만 하시는 것 아닙니까? 개인 욕심은 없어요?

“하하. 너무 모범답안 같았나요? 하지만 그게 솔직한 생각인데요. 개인적으로는 논문 쓰는 것 말고 클라이밍(암벽등반) 취미가 있는데 이걸 좀 잘해보고 싶어요. 예전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을 하셨던 변호사님이 승소해 받은 돈을 감사하게도 참여연대 활동가들 건강 챙기라고 기부해주셨는데 전 뭘 할까 하다 암벽 타기를 시작했어요. 새해엔 레벨업 해서 잘해보고 싶습니다. 또 여행도 좀 다니고 싶어요.”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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